그에게서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임종 환자를 돌보는 게 업이니 그럴 만도 했다. 오갈 데 없는 이들의 마지막 천국, '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 신상현 야고보 수사를 만났다. 내과 전문의를 취득하자 마자 30년간 봉사에만 전념해온 그에게 제33회 보령의료봉사상 대상이 돌아갔다.

시인을 꿈꿨던 소년이 왜 의사가 됐는지, 아버지의 너무 이른 죽음이 그를 어떻게 꽃동네로 이끌었는지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않겠다. 다만 분명한 것은,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

 

 

▲ ⓒ의협신문 김선경
그의 수사명 '야고보'는 예수의 사촌형제로서, 열두 제자 중 한 명이자 임종자의 주보성이다. "임종하는 이들에게 영적 축복을 내리는 성인입니다. 제가 매일 돌보는 환자가 임종자 아닙니까. 이 이름을 받았을 때 너무나 기뻤습니다."

행동 없는 믿음은 곧 죽음. 성서 야고보서 내용처럼 30년을 살아왔다. 신 수사는 "육체적 치료로 한정하는 건 아쉽다. 버림받은 환자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 버림받고 상처받아 세상을 원망하고 저주하며 증오에 사로잡혀 죽어가던 사람들이 그 마음을 바꿔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한 마디로 영혼이 구원받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이어 "이를 이루지 못한다면 헛일이다. 더 이상 버림받지 않았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세상과 화해해 기쁨을 노래하며 죽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사명"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이번 수상은 큰 의미가 없다. 상이란 세상에 주는 것. 수도자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므로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청빈과 정결, 순명하겠다는 종신서원을 했기에 개인계좌도, 사유재산도 없다.

▲ ⓒ의협신문 김선경
다만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알리고 싶다"며 "봉사는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이자 의무라는 걸 전하고 싶다. 이분들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세상이 알게 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상금은 꽃동네 운영을 위한 공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네까짓 게 봉사하는 척 하다가 나 또 버릴 거지?" 그는 매일매일 몸과 마음이 성치 않은 환자들을 만난다. 형제는 늙고 병든 부모를 서로에게 미루다 꽃동네에 갖다버렸다. 바람난 어미를 기다리던 딸은 술집을 전전하다 창녀로 전락했고 성병을 앓다 시한부가 됐다. 지체장애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아비는 어린 자식을 먼지구덩이 길바닥에 버렸다. 사연의 크고작음은 있어도 서럽지 않은 이는 없다.

"처음 오는 노인들은 '빨리 죽는 약 좀 달라'고 합니다. 사람이 상처를 받는 게 세 가지입니다. 거부와 배반, 버림받는 것. 상처가 너무 크니 살 맛이 안 나는 겁니다. 밥을 주면 뱉어버리고 식사를 안 합니다. '자신을 또 버릴 것'이라며 마음을 안 열어요. 유일한 방법이 오늘 안 되면 내일, 일주일, 한 달 계속해서 한결같이 사랑해주는 겁니다. 그러면 상처에서 해방이 됩니다. 빈 잔에 물을 계속 부으면 넘치듯 사랑의 결핍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사랑을 주면 언젠가는 넘쳐흘러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풀게 됩니다."

그런 신 수사도 '사람'이다. "30년을 봉사해왔지만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다.

"임종의사들은 번아웃 되기 쉽습니다. 치료해봤자 환자는 죽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바치는 첫 기도가 '주님, 제게 고통을 주십시오'입니다. 맹목적인 고통이 아니라, 이 세상에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힘 없고 굶어죽고 얼어죽어가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대신 받게 해주시고 그들의 죄와 죽음도 대신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실제로 고통이 와요. 괴롭습니다. 더 큰 고통을 달라고, 아예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신기하게도 번아웃이 사라집니다. 이열치열처럼요."

의사가 보란 듯이 잘나갈 수 있었던 시절에 내과 전문의가 되자마자 음성 촌구석으로 들어왔다. 아무리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있었다 한들 욕심이 있었다면 월급 한 푼 받지 않은 채 30년을 봉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 한가족처럼 지내는 꽃동네 인곡자애병원 간호사·수녀 선생님들과 함께 한 신상현 야고보 수사.ⓒ의협신문 김선경
신 수사는 "의료인이 돈만 버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 의사는 천직이고 선택받은 직업"이라며 "월급을 받냐 아니냐로 봉사를 구분하면 안 된다. 정당한 보수를 받아도 가족과 환자들을 섬기고 사랑을 베풀면 봉사다. 월급을 안 받더라도 사랑 없이 의술을 베푼다면 그는 봉사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그가 삶의 지침으로 꼽은 고린도 전서 12장 26절이다. 수사로서 첫 서원하던 1993년 받은 말씀이기도 하다.

"발이 썩어들어가는데 손이 나몰라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꽃동네에 사는 것, 이는 썩어들어가는 내 지체를 위해 투신하는 나의 길입니다. 저는 자식도, 재산도 없습니다. 자유를 반납했더니 진짜 자유로운 사람이 됐습니다. 완전한 자유란 완전한 얽매임입니다."

오늘도 그는 밤 12시까지 밀린 일을 하고 다음날 새벽 4시 반에 일어날 것이다. 하느님께 '더 큰 고통을 달라'고 기도를 드리고는 자신의 '지체'들을 돌보러 갈 것이다.

 ⓒ의협신문 김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