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개원 초의 일이다. 40대 중반의 건장해 보이는 신사가 진료실에 들어왔다. 그는 요즘 들어 눈이 침침하고 가까운 글씨가 흐리게 보인다고 했다. 검사와 진찰을 한 뒤 내 딴엔 상냥하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눈에 큰 이상은 없구요. 노안이 오신 것 같군요. 환자분 연세에는 그럴 수가 있거든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거 참! 되게 기분 나쁘네. 내 나이에 무슨 노안이야 노안이. 내가 눈이 얼마나 좋았는데 말이야. 그리고 나이면 나이지 연세는 또 뭐야…"하며 불쾌해 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진료실에서 노안이나 연세 등의 단어를 말해야 할 때면 무척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일처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결국 내게도 노안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긴 나라고 어찌 비껴갈 수 있겠는가. 작년부터는 부쩍 눈이 침침한 기분이 자주 들곤 하더니 핸드폰이나 문서의 작은 글자가 흐릿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아들의 손톱을 깎아주는 일도 예전 같지 않다.

약품 설명서의 작은 글씨를 보기도 힘들다. 최근엔 환자가 자신이 쓰던 안약을 내밀며 어떤 성분이냐고 묻는데 병 표면의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아 등에 식은땀이 난 적이 있다.

안경을 쓰는 나는 이제 때로는 안경을 벗어야 작은 글씨나 스마트폰 활용하기가 더 편하다. 수술실에서도 시야가 어른거려 불편한 경우가 많아졌다. 얼마 전에는 수술 도중 차트를 보여 달라 하자 눈치 빠른 간호사가 일부러 평소보다 멀리 들어 보여줬다.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환자들이 그간 호소했던 증세들이 하나하나 똑같이 내게 나타날 때마다 쓴웃음을 짓게 된다. 다초점안경을 해야 할 때가 왔지만 왠지 그게 하기 싫어서 아직 만들지 않고 버티고 있다.

안과 영역에서 가장 흔한 질환은 소아에서는 근시, 성인에서는 노안(presbyopia)이 아닌가 싶다. 노안은 40대 이후에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보고자 하는 대상은 제각기 다양한 거리만큼 눈으로부터 떨어져 있다. 그런데 거리의 변화에 따른 초점의 이동에는 어떤 힘이 필요하다.

먼 곳을 보다가 가까운 곳의 물체나 글씨를 볼 때면 눈 속에서는 미세한 근육과 인대 및 다른 연조직의 빠르고 기민한 협조가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이와 동시에 수정체라 불리는 눈 속의 렌즈는 납작한 모양에서 볼록한 모양이 되고, 초점을 가까이 맺을 수 있는 힘(조절력)을 얻게 된다. 다시 원거리를 보게 되면 이 반대의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수정체의 경화나 안조직의 노화에 의해 이런 조절 능력이 서서히 감소하게 된다. 다양한 거리의 대상을 봐야하는 생활은 비슷한데 그만큼 민첩하게 반응하는 능력은 점차 줄어드니 자꾸 흐릿하게 보일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니 눈의 피로도 쉬이 느끼게 된다. 근거리에서는 돋보기가 필요해지거나 쓰던 안경을 벗어야 잘 보이게 된다. 바로 노안이다.

문득 '시간'이라는 거대하고 절대적인 힘 앞에 무력하고 초라한 나를 본다. 꽃이 시들듯, 풀이 마르듯, 생명의 푸름과 윤기 또한 언제고 지속될 수는 없으리라. 이 당연하고도 엄연한 진리가 나를 겸손하게 한다. 나약함과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지금의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어린 왕자가 아저씨에게 말했던 걸 기억한다. 노안이라는 불청객을 만난 중년의 나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잘 보이던 것이 흐려 보이는 일을 겪어도, 어쩌면 그보다 더 슬프고 고통스런 일이 삶의 문을 두드려도, 나를 얼어붙게 하는 문서 하나를 받아든 날이나 가슴을 무너뜨리는 갑작스런 소식을 들었을 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