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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깝고도 먼 'CE 인증'…핵심은 '지금 준비'
기획 가깝고도 먼 'CE 인증'…핵심은 '지금 준비'
  • 고수진 기자 sj9270@doctorsnews.co.kr
  • 승인 2017.03.0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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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서 제품 안전사고 발생 후 CE 인증 기준 강화
컨설팅 의존 문제…기업 자체 대응 시스

과거에는 의료기기 유럽시장 진출을 위한 유럽CE 인증을 최소 3개월이면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1년이 지나도 받기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CE 인증기준이 강화돼 국내 의료기기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의료기기 사고 발생…CE 인증기관 전면 재검토

CE는 유럽연합 시장이 하나가 되면서 기술 장벽을 없애기 위해 1998년 만들어진 제도다. CE 마크를 부착한 의료기기만이 유럽내에 유통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의료기기 수출입 관리는 유럽연합 각 국가의 행정당국에서 담당하고 있으며, 서류 심사와 공장 심사를 통한 인증업무는 각 국가별로 지정된 인증기관에서 담당했다.

그러다 인증기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2010년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 드퓨이에서 만든 엉덩이 인조관절 제품에서 잔해물에 의한 연조직 괴사 사건이 일어났다. 금속재질 고관절치환술 후 제품간 마찰로 인해 잔해물이 연조직을 손상시킨 것이다.

2011년에는 프랑스 인공유방 보형물 업체 PIP가 불법 공업용 실리콘 젤을 사용해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보형물을 삽입한 여성 중 7500명은 보형물이 가슴 안에서 터진것으로 확인됐으며, 이외 수십명은 이로 인해 유방암에 걸린 것으로 파악됐다<표 1>.

 

이런 문제가 발생하자, EU의회는 기존 CE 인증서 발급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인증기관을 전면 재검토하기 이르렀다. 인증기관 감사를 통해 수준미달의 인증기관에 업무정지를 내렸다. 이로 인해 2013년 85개에 달하던 인증기관이 현재 66개로 감소했으며, 2018년까지 40여개로 축소될 예정이다<표 2>.

 

CE 인증기준 강화…인증기간 1년 이상 소요

안전한 의료기기를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2014년부터 인증기준이 강화됐다. 단순히 문서작성 보완 문제가 아니라, 제품 개발기획 단계에서부터 인증에 필요한 요구사항을 적용해야만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인증기간은 1년 이상으로 길어졌다. 이렇다보니 인정기준을 맞추지 못해 신규 인증이나 갱신이 무기한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또 업무가 정지된 인증기관에서 인증을 받은 기업은 인증 자체가 취소돼 인증을 다시 받아야하는 어려움에 처했다.

국내 중소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최근 CE 인증은 짧게는 일년 길게는 2년 넘게 걸릴 정도"라며 "인증을 받는데 필요한 서류만 수천 페이지에 달하고, 안전성 등을 증명해야 할 시험 기준도 매우 깐깐해졌다"고 토로했다.

결국 국내서 CE인증을 지원하는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도 인증 대행업무를 포기했다. 현지에서 KTR과 연계된 민간업체가 해당 사업을 중단하면서, KTR 역시 지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KRT는 14개 국내 의료기기회사의 CE 인증 획득을 지원했으나, 인증 대행 수수료를 전액 환급하고 사업을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 수출액 중 절반가량이 CE 인증을 통해 이뤄졌다"며 "앞으로 신제품을 개발해도 CE 인증을 받기 위해 2년을 기다려야 하고, KTR 지원도 어려워 영세한 업체 상당수가 사업포기를 고려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 이재화 의료기기조합 이사장은 제품 개발단계부터 인증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 인증은 외부컨설팅으로 해결…대응 어려워

그동안 유럽을 포함해 동남아·아프리카 등에서는 CE 인증이 있다면 수출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CE인증 강화로 국내 의료기기의 해외 수출에 타격을 주고 있다.

이재화 한국의료기기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몇년 전만해도 의료기기 CE인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며 "제품개발 이후에 시험검사와 외부 컨설팅을 통한 문서작성만 어느정도 돼도 늦어도 6개월 이내에는 인증 받을 수 있었다. 인증기관에서 쉽게 인증서를 발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이사장은 "국내 의료기기 업체 대부분은 인허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연구개발이나 생산·판매 중심으로 운영해왔다"며 "외부 컨설팅업체를 통해서 쉽고 빠르게 인증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인허가를 받아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표 3>.

▲ 표 3) 개발기획단계에서 부터 CE인증 요구 사항 적용 과정 흐름도

조합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기의 수출기업의 50%만 제품 개발전에 해외규격인증획득을 인지하고 있었다. CE 등 인허가 기준이 세계적으로 강화되고 있지만, 국내 의료기기 업체는 준비에 여전히 미흡한 상황인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의 경우에는 인허가 관련 업무를 전담해온 인력이 있어서 빠르게 변화를 대비할 수 있지만, 중소 업체가 대부분인 국내 의료기기업계는 인허가 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컨설팅에 의존해야만 하는 악순환만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컨설팅이 아닌 자체적으로 규제 대응을 하고 경쟁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받게 될 위기에 처했다<표 4>.

▲ 표 4) 수출규모별 인증 인지 시점

조합, 일대일 코칭 사업 제시…자체 대응 능력 길러야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기기조합은 제조기업의 '일대일 코칭'사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코칭사업은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국제 규격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현재 정부에서 규격인허가 비용을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지만, 이를 통해 기업의 내부 역량을 키우기 보다는 인증서를 위해 컨설팅에 의존하는 부작용만 일으키고 있다"며 "기업 내부적으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제품 개발 프로세스 시스템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의료기기조합은 코칭사업을 통해 물고기를 잡아주던 기존 컨설팅에서 벗어나 제품개발 프로세스 시스템을 구축해 물고기 잡는법을 알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표 5>.

▲ 5) CE인증 코칭사업 추진 절차

코칭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 의료기기조합은 코칭사업으로 기업의 인증 대응 역량을 점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기기조합은 현장점검으로 기업의 현재 인증 대응 수준을 평가하고 결과를 바탕으로 업체 맞춤 코칭 전략을 수립하도록 지원해준다. 또 기업 맞춤형 제품개발 프로세스 시스템을 구축해 기업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규격 전문가 풀을 통해 기업 맞춤형 체질개선 코칭이 이뤄지며, 제품 기획 단계부터 인허가를 획득하기까지의 절차를 포함한 연구기획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해준다. 코칭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기업이 국제 규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업의 수출 역량이 강화되고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해 8월 전문위원회를 통해 6개 기업을 코칭사업 대상으로 선정했으며, 전문가 현장점검을 통해 각 기업의 인증 대응 역량을 점검했다.

이 이사장은 "기업의 인증 대응역량 점검 결과, 의료기기 기업의 프로세스가 생각보다 미비했다"며 "현재는 각 선정기업과 코칭기관 간의 매칭을 통해 기업 맞춤형 제품개발 프로세스를 구축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세스 구축으로 참여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지속적인 프로세스 유지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국내 업체, 개발단계부터 인증 준비해야"

▲ 이재화 이사장은 기업자체 대응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화된 CE 인증 기준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업체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CE인증은 MDD(Medical Device Directives)에서 MDR(Medical Device Regulation)로 강화되면서 비통보 심사 횟수가 증가했으며 기술문서의 심사가 강화됐다.

이를 위해 의료기기 전문가들은 'ISO13485'를 만족하는 품질경영시스템 구축을 선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전기·기계적 안전에 관한 공통규격(IEC60601-1 3판)을 적용해야 한다. 이밖에 필수 요구사항과의 부합성을 입증하기 위해 위험관리·소프트웨어밸리데이션·임상평가·사용적합성·사후시장조사·사후임상추이관찰 등을 제품에 적용하고 문서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기존처럼 제품을 미리 만들고 일부 서류만으로 기준을 맞추기 어렵다"며 "요구사항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개발 기획단계에서부터 품질 규격의 절차를 맞추고 제품개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품질규격이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각 업무 단계별 체크리스트를 작성해 누락되는 항목이 없도록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또 다른 전문가는 "CE인증 문제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의료기기 인허가가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에 따라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는 일"이라며 "앞으로 규제 대응을 위한 자체 전문인력을 확보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CE 인증을 받은 국내업체는 인증을 위한 내부 인력양성을 조언했다.

국내 업체인 대성마리프 관계자는 "CE인증이 강화돼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며 "기존의 대응방법으로는 통과하기 어렵다. 규격을 정확히 이해해야만 적용 할 수 있고, 문서화까지 가능했다"고 말했다.

대성마리프는 CE가 요구하는 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부서에서 직접 내외부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또 연관된 부서와의 수많은 회의를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대성마리프 관계자는 "개발자부터 인증 담당자까지 해당 규격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작해야만 CE 인증을 위한 시간·인력·돈을 절약할 수 있고 인증을 유지할 수 있다"며 "자체적으로 인증획득을 위한 내부 인력양성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의 CE 인증은 다른회사의 문서를 가져다가 바꾸는 수준으로 이뤄졌는데, 앞으로는 그런방식이면 인증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되고, 결국 CE 갱신 과정도 어렵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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