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주일억 의협 고문
선생님께서 노환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설마 이렇게 빨리 저희 곁을 떠나시리라고는 생각을 못해 비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49년 서울여자의과대학(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시고 동 부속병원 내과에서 조교직을 수행하시다가 6·25동란으로 인해 중단됐던 수련을 1954∼1955년 적십자병원 산부인과에서 받으셨습니다.

이후 1955년 도미하시어 펜실바니아주 에리시 헤못 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하고, 1956∼1957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시 닥터스 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이수했습니다. 1957∼1959년 뉴욕주 브룩클린 와이콥 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귀국하신 후 바로 수도의대(현 고려의대) 산부인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하셨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최신 의술을 익히시고 오신 젊고 아름다운 여교수님은 엄청난 인기였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1961년 체부동에 '주일억 산부인과'를 개원하신 후 2000년대 초까지 노령에도 불구하시고 오랜 기간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를 계속하셨습니다. 그동안 한국여자의사회 제11대 회장, 대한산부인과학회장, 국제존타 한국지역연합회장 등을 역임하셨고, 최근까지 대한의사협회 고문직과 한국여자의사회 고문직을 수행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가장 괄목할 만한 업적은 세계여자의사회에 관한 것으로 일찍이 해외여행이 제한됐던 시절, 열심히 세계여자의사회 총회에 참석하셔서 드디어 1987년 이태리 쏘렌토에서 개최된 제 20차 총회 회장선거에서 당당히 당선되셨습니다. 이후 1989년 서울에서 회장에 취임하시며 제 21차 세계여자의사회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셨습니다.

저는 한국여자의사회 활동을 시작하며 바로 세계여자의사회 활동을 시작해 선생님을 모시고 수많은 세계여자의사회 총회 및 지역회의들을 참석해 보석과 같은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1998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개최됐던 제 24차 세계여자의사회 총회는 케냐의 테러사건으로 취소됐다가 갑자기 장소를 바꾸어 브라질에서 개최된 관계로 주 회장님을 모시고 박귀원 전회장님, 김봉옥 현회장님과 김지희 회원 그리고 저, 달랑 5명이 다녀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때 주회장님께서 젊은이들이 빠릿빠릿하게 모든 일을 척척 해결하고 다니는 것을 보시고 "이젠 내가 나이가 들어 뒤에 물러나도 되겠구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인상에 남습니다.

세계여자의사회의 많은 회원들도 Dr. 주의 타계소식에 애도를 보내며 슬퍼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동안의 업적을 기려 2009년에는 의협에서 '화이자 국제협력상'을 수상하셨고, 2013년에는 '서재필 의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한국여성의료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께서 저희들 곁을 떠나심은 큰 슬픔이지만, 선생님의 업적은 언제까지나 저희 후학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

후배 박경아 호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