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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정신보건법 개정안, 인권보호법인가 인권침해법인가?
[기고] 정신보건법 개정안, 인권보호법인가 인권침해법인가?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7.02.14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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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신보건법 대책 TFT 위원장
8만명 입원환자 중 4만명이 개정안 기준 충족하지 못해 퇴원 대혼란

▲ 권준수 서울의대 교수
올해 5월 30일부터 시행되는 정신보건법이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 큰 논란이 되고 있다. 1995년 처음으로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체계화시킨 정신보건법 이후 20여년 만에 환자의 인권보호, 비자의 입원 요건강화, 정신건강증진을 위한 국가의 투자 등을 골자로 전면개정된 것이다.

하지만 개정된 정신보건법은 19대 국회 회기 말의 짧은 기간 동안 '여야 합의에 의한 민생법안 처리'라는 이름 하에 신중한 검토 없이 졸속 개정됐다. 그 취지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의 혼란과 심각한 사회안전망 위험이 예상되는 것이다. 

개정법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강제입원(비자의 입원) 기준과 과정에 대한 조항이다. 강제입원은 '치료를 필요로 할 정도의 정신질환이 있으며',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이 있는 심각한 경우'의 2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가능하다.

법 개정 시 참고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비자의 입원의 기준을 보면, 위에서 제시한 2가지 기준 중 하나만 충족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이 있는 경우'는 본인이 거부하더라도 신속히 입원해 치료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입원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비록 자해나 타해의 위험성은 없지만 병적 증상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 오는 경우, 중독으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병적행동에 집착하는 경우 등이다.

예를 들어 양극성장애의 조증이 심해 과대망상으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써버리거나 수억대의 잘못된 투자를 해 가정파탄을 일으킨 경우들이다. 이런 경우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 이후에는 입원치료를 하지 못하게 된다.

이번 정신보건법 개정과정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제시한 'serious likelihood of immediate or imminent danger and/or need for treatment'의 and/or를 잘못 해석한 것임이 분명하다. 두 가지 다 해당되거나(and) 혹은 하나만 있더라도(or) 입원 가능한 것을 의미하는 and/or를 and나 or 중 하나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and로만 한정한 법안을 마련하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환자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오히려 적절한 치료를 어렵게 해 궁극적으로 환자들의 기본적인 생존에 피해를 입히는 법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입원하고 있는 8만여 명의 환자 중 약 절반 정도인 4만명 이상이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퇴원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어 대혼란이 예상된다.

두 번째 문제는 강제입원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입원 3일내로 입원환자의 정보를 국립정신건강증진센터에 보고하고, 2주내로 타 병원(국공립병원 혹은 지정병원)에 근무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2차 진단전문의)가 입원의 타당성을 평가하며, 그 평가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 환자를 즉시 퇴원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시행이 불가능하며 환자 인권을 보장하기에도 충분하지 않다. 강제입원에 대한 외국의 전반적인 추세는 초기 강제입원에 대해서는 전문의의 입원결정을 존중하고, 필요하다면 72 시간 내로 다른 전문의가 평가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후에는 나라에 따라 2주에서 6개월까지 치료가 가능하다. 대신 불필요한 강제입원을 막기 위한 준사법적 독립기구를 두고 강제입원의 적합성을 평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순수한 의학적 측면에서 적절한 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에서는 이런 준사법적 기구에서 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을 고스란히 2차 진단전문의에게 전가하고 있다. 연간 25만건 정도 발생하는 강제입원 평가를 국·공립기관의 의사만으로 시행하기에는 불가능하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민간의료기관을 모집해 2차 진단 전문의로 활용하겠다고 함으로써 원래의 법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심사를 받아야 할 민간의사가 다시 심사를 하는 이상한 모양이 된 것이다.

법 시행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복지부는 또 다시 공보의를 동원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공보의가 경험이 많은 정신병원 전문의로서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인권보호를 주장하면서 개정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부에서 진정으로 환자, 또는 보호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고민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개정법의 철학이나 원칙은 도외시 하고,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법을 일절 수정 없이 원안 그대로 시행하는 데에 문제만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강제입원은 환자 자신의 의지에 반해 신체적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다. 때문에 신중해야 하며 이를 모니터링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하지만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적시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돼 그 생존권마저 위협받는다면, 그것이 과연 환자를 위한 진정한 인권보호일까?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하고, 만성화로 가게 된다면 이는 한 개인에게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사회안전망을 위협하는 상황으로도 커질 수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가끔 언론에 나오는 정신질환에 의한 피해 등이 그것이다.

한 예를 들면, 20대 남자 환자가 '사방에서 나를 감시한다'는 피해망상과 환청에 시달리면서 층간 소음을 본인을 해치려는 시도로 오해, 윗층 사람들을 칼로 위협하다가 보호병동에 입원한다고 가정해보자. 하지만 2주가 경과하도록 2번째 의사의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아 퇴원 조치되는데, 증상이 일부 약화될 뿐 망상과 환청이 여전하고 타해의 위험성 또한 그대로여서 가족들이 환자를 24시간 감시하면서 환자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는 형편이 된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현 상태대로 강행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선의로 시작됐지만 신중하고 실질적인 세부 사항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현실적인 준비 없이 시행되었다가 오히려 현장에서 혼란만 야기하는 일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법안 자체의 문제점과 더불어 법안 시행을 위한 준비의 부족으로 오작동할 경우, 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적시에 치료받지 못한 결과 재정파탄, 자해 등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정신질환자가 대거 노숙자 혹은 교정인구로 편입되는 파국적인 상황으로 이어질 것도 우려된다. 정신보건법 개정안에 의한 일대 혼란을 막을 길은 5월 30일 이전의 신속한 재개정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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