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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10:33 (금)
[신간] 의당 김기홍
[신간] 의당 김기홍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7.02.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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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혁 지음/도서출판 더숲 펴냄/1만 7000원

 
국내 진단검사의학의 초석을 다진 의학자이자 교육자·헌혈운동의 선구자·탁월한 병원경영자로 한국의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고 의당 김기홍 박사의 평전 <의당 김기홍>이 출간됐다.

의당 선생은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진단 검사의학 분야를 개척하고 당시에는 드물었던 의료서비스의 개념을 도입해 병원경영을 쇄신하며 진료시스템을 세분화, 전문화하는 개혁을 이뤄냈다.

또 후학양성과 의료계의 개혁,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헌신한 의학교육자였으며,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절대로 행하지 않는 냉철함과 의연함을 바탕으로 병원의 공익성에 대한 일관성 있는 신념과 철학을 펼쳐나갔다.

그의 많은 업적 중 특히 단시간 내에 매혈풍토를 헌혈로 전환시킨 시민운동가 차원의 적극적인 헌혈운동은 지금까지도 실천되고 있을 만큼 우리 사회를 혁신시키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데 지대하게 공헌했다.

박두혁 시사메디인 대표(전 연세대의료원 홍보책임자)가 쓴 이 책은 한 인물의 개인적 삶의 궤적을 뒤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적 고난 속에서도 역동적으로 자신의 분야를 일궈온 한 의학자의 삶을 통해 치열했던 한국의학의 역사와 현재를 반추하고 있다. 또 사랑과 헌신을 몸소 실천하고 변화와 도전에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의 삶이 오롯이 옮겨졌다.

의당은 경기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히메지고등학교를 거쳐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편입한 후 1947년 7월 서울의대 제1회 졸업생이 됐다. 그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군의관으로 입대해 미군의 선진화된 의료기술과 병원시스템을 경험한다. 특히 환자의 혈액을 비롯한 각종 가검물을 이용해 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임상 병리라는 새로운 분야를 접하게 된다.

군복무중이던 1955년 미국 정부의 초청으로 유학을 떠나 전쟁 중에 미군들과 같이 일하면서 경험했던 선진의료기술을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1958년 전역 후 당시 국내 최고 수준의 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 창설요원으로 참여해 유럽에서 파견된 의사들과 3년여 같이 근무했다.

그 후 1960년 10월 수도의과대학의 병리학교수로 부임해 1986년 2월 한양의대에서 정년을 맞을 때까지 후학양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한 교육자이자 탁월한 병원행정가였다.

한국의학계를 밝혔던 의당 선생의 발자취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한혈액학회장(1968~1970)·대한병리학회장(1973~1974)·대한임상검사정도관리학회장(1976~1980)·대한의학협회 부회장(1976~1981)·대한임상병리학회장(1980~1984)·대한수혈학회장(1985~1986)을 역임했으며 1986년 8월 대한민국학술원 정회원에 추대됐다. 의학적·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10월 제3회 대한의학협회(현 대한의사협회) 학술상을 받은 것을 비롯, 1974년 4월 국제라이온스 309-A지구 총재 표창, 1976년 4월 대통령 표창, 1980년 4월 한국화이자 의학연구상, 1985년 5월 백남학술상 의학부문상, 1985년 10월 적십자 박애장 금장을 수상했다. 의당 선생은 1986년 향년 66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며, 별세 후인 2002년 9월에는 대한수혈학회 학술공로상, 2009년 2월 대한임상검사정도관리협회 로슈공로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은 남겨진 가족들과 그의 제자들, 어깨를 나란히 했던 동료 의학자들이 그의 족적을 더 자세히, 더 많이, 그리고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시작됐다"며 말한다.

역사 속에는 빛나는 행적과 숭고한 정신적 유산을 남겼음에도 대중들에게 미처 다가가지 못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의당 선생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역사적 인물과 조우하는 즐거움을 전해줄 것이며, 다소 낯설지만 중요한 분야인 진단검사의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우리가 과거를 살다가 먼저 떠난 인물의 족적을 더듬어 조명하는 것은 그가 살아온 과거를 통해 성가를 알아보고자 함이 아니라, 바로 그의 생을 통해 현재 우리의 삶에 살아 움직이는 그의 공과와 정신을 돌이켜보아 현재의 귀감으로 삼고 미래를 바라보고자 하는 것"이라며, "의당 선생은 의학자이며, 의학교육자였다. 그러나 단순히 의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는 멀리 내다보는 눈을 가지고 학문적으로는 물론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병태생리를 의학의 한 분야로 정립해 진단검사의학의 태동을 이끌었으며, 의학교육에 있어서 기초의학교육이 취약해질 것을 걱정하며 유능한 기초 의학자를 양성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선생은 또한 탁월한 병원경영자였다. 그는 우석대학교병원장 및 한양대학교병원장을 맡아 병원을 경영하면서 당시 개념조차 없었던 '병원의 친절' 문제를 강조하는가 하면, 병원 내에 쌓여온 무사안일과 부조리의 적폐들을 과감히 개선함으로써 현대적 병원경영기법을 정립했다. 뿐만 아니라, 선생은 헌혈운동을 일으켜 이를 성공적으로 추진한 시민운동가였다. 환자치료용 혈액의 90% 이상을 전문적인 매혈꾼들로부터 사들인 혈액으로 사용하던 시절, 그는 뜻을 같이하는 인사들과 함께 헌혈운동을 일으켜 이를 전량 헌혈 혈액으로 전환시키는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4년 제정돼 뛰어난 성과를 낸 기초의학자들을 발굴해 시상하고 있는 의당학술상은 올해 24회째를 맞는다.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책은 ▲금강산의 나무는 홀로 자란다 ▲전쟁을 통해 발전한 한국의학 ▲아시아권 최고의 병원, 국립의료원 ▲수도의과대학에서의 11년 ▲한양대학교의료원을 일으키다 ▲대한민국 진단검사의학의 정립 ▲임상병리사교육제도를 확립하다 ▲헌혈운동에 바친 사랑의 정신 ▲홀연히 금강산으로 떠나다 ▲의당이 남긴 것, 그리고 남은 것 등을 중심으로 의당 선생의 삶을 좇아간다(☎ 02-3141-8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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