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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가볍게 날개를 펴고
청진기 '가볍게 날개를 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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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2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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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 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어느덧 새해가 밝았다.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다시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분기점이 주어진 것은 다행이다. 하루를 24시간으로, 30일을 한 달로, 열두 달을 묶어서 일 년을 만든 것은 자연을 관찰하고 순환의 규칙을 알아차렸던 인류의 조상, 그들의 지혜 덕분이다. 새롭다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한다.

새 신발, 새 교실, 새 선생님…. 학년이 바뀌고 새로 편성된 학급에 들어갔을 때의 떨리고 설레던 긴장감.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어제의 실수를 용서하고 새로운 기회를 허락하는 선물. 구획을 정해 "오늘부터는 절대로"라고 결심하고 "새해부터는 반드시"라고 계획하게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해가 바뀔 때의 기대감과 설렘이 조금씩 무디어지기 시작했다.

제야의 종소리가 들려도 아직 마무리 하지 못한 약속 때문에 마음이 무겁고, 해놓은 일도 없는데 아이들은 너무 빨리 자라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아쉬움의 축적이 때로는 무거운 자책으로 다가오기도 해서 나는 12월 31일 저녁에 더 이상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12월 31일에서 1월 1일로 넘어가는 시간이면 우리 가족은 작은 송년파티를 하곤 했다. 아빠에게는 포도주가 담긴 크리스털 잔이 우리들에게는 포도 주스나 물이 담긴 잔이 놓여 졌고 예쁜 접시에는 평소에 자주 보기 어려운 술안주 겸 간식거리들이 담겨서 나왔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전에 파티는 시작돼 지난해에 있었던 기쁜 일, 아쉬웠던 일들을 서로 얘기하고 한 사람씩 새해의 소망이나 결심을 이야기하면서 서로에게 진심어린 칭찬과 격려의 말들을 나누곤 했다.

그러다가 다섯 식구의 소망 이야기가 끝날 때면 어느덧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면서 겨우 잠자리로 들어가곤 했다.

새해 아침에는 새해 첫날부터 늦잠을 자면 안 된다는 엄마의 성화로 늘 반쯤은 눈을 감고 떡국을 먹었다. 이런 행사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에 들어간 뒤까지 꽤 오랜 시간까지 이어졌다. 나는 새해를 맞는 것이 일종의 축제여야 하며 새해가 되면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웠다.

새해의 소망이나 결심을 적었던 수첩은 엄마가 갖고 계시다가 한해가 지나면서 다시 들여다보게 됐는데 그 중에는 때로 까맣게 잊었던 결심이나 소망도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완성돼가는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될 무렵 나도 엄마처럼 이런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고 꽤 오랜 시간 반복해 이어왔지만 내 추억 속의 빛나는 크리스털 같은 시간을 만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오늘은 문득 상기된 얼굴로 새해를 축제처럼 맞았던 그 시절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내가 더 이상 해가 바뀌어도 새해를 선물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과 보내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도 적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일상의 사소한 삶이 버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옷장은 특별할 것 없는 비슷비슷한 옷들로 채워지고, 화장대는 유효기간이 임박한 수많은 화장품과 샘플들로 차 있다. 냉동실에는 오래돼 제 맛을 잃은 식재료들이, 욕실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많다. 쌓여가는 우편물과 스팸 메일은 왜 제때에 지우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비단 물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고 관심의 중심이 되기 위해 나는 지금 피곤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많은 것을 지탱하기 위해 소중한 힘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진정 아껴야 할 것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는지.

지니고 있는 것들의 무게가 새로운 시간으로 향하려는 내 날개를 잡아당기고 있지는 않은지. 삶은 더욱 더 가벼워져야 한다. 

오늘 문득 미처 버리지 못한 잉여의 것들이 축제를 축제로 여기지 못하도록 나를 막았던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실제로 비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과 머릿속일 것이다. 정리된 마음은 정리된 환경에서 나올 것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는 오늘 갑자기 먼지를 날리며 쉬지 않고 정리를 했다.

이미 2017년이 시작된 지도 며칠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겸허히 출발선에 서서 하나 두울 셋, 마음속으로 뒤늦은 구령을 외쳐 본다. 어느새 선물 같은 새해가 나에게 온 것이다. 이 반짝이는 새해에는 덜 소유하고 많이 나누어주며 좀 더 가벼운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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