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고등법원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회용 혈액투석필터를 재사용한 의사에게 내린 업무정처분은 적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안전성이 검증돼 선진국에서도 재사용하고 있고, 국립의료원에서도 재사용하고 있다는 항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 제9행정부는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처분 취소 소송(2016누46870)에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보건복지부는 2014년 7월 9∼10일 A의원을 상대로 혈액투석 관련 치료재료 구입 및 급여비용 청구에 관한 현지조사(대상기간 2013년 1월∼2013년 12월)를 실시했다.

보건복지부는 A의원이 일회용으로 허가된 투석필터 7940개를 재사용해 총 1억7118만원의 요양급여 및 의료급여 비용을 부당하게 청구했다며 2015년 5월 20일 82일간 요양기관 업무정지처분과 2015년 6월 15일 88일간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처분을 내렸다.

A원장은 일회용 투석필터라도 안전하게 재처리 절차를 거쳐 사용할 수 있고, 선진국에서도 일회용 투석필터 재사용은 안전성이 검증됐다며 안전하게 재사용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또한 관계 법령상 일회용 투석필터 재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고, 투석필터 산정기준에서도 일회용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A원장은 "1999년경 국내에 혈액투석필터 재처리기가 도입된 이후 국립의료원을 비롯해 다수의 의료기관이 광범위하게 일회용 투석필터를 재처리해 사용해 왔다"면서 "보건복지부는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거나 단속한 사실이 없으므로 의료인 전반에 일회용 투석필터의 재사용을 허용한다는 견해를 묵시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더 좋은 치료효과를 얻기 위해 저가의 일회용 투석필터 대신 고품질의 일회용 투석필터를 안전한 재처리 과정을 거쳐 재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고법 재판부는 "급여비용을 청구할 때 투석필터를 일회 사용했는지 또는 재사용했는지 여부를 구분토록 하지 않은 것은 일회용으로 허가받은 투석필터를 재사용할 경우까지 대비해 별도의 청구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며 "일회용 투석필터를 재사용하고도 마치 새로운 일회용 투석필터를 사용한 것처럼 급여비용을 청구한 것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에게 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앞서 열린 1심(2015구합71686, 2016년 5월 26일)에서는 "일회용으로 허가를 받거나 신고한 의료기기를 재사용하는 것은 이를 처벌하거나 제재하는 명문의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허가·신고의 범위를 벗어난 사용행위로서 허용될 수 없다"면서 "투석필터의 재사용이 의학적으로 안전한지 등에 관계없이 사위 기타 부당한 방법으로 급여비용을 지급받은 경우에 해당한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1심 재판부는 "혈액투석 1회당 투석필터 수가 2만 1560원보다 많은 2만 7484원을 지출했다는 원고의 원가분석보고서는 내용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고, 설령 이를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이 사건 처분의 요건과 무관하고, 처분의 위법성 여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국립의료원을 비롯한 다수의 의료기관에서 일회용 투석필터를 재사용해 온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일회용 투석필터의 재사용을 허용한다는 공적인 견해를 묵시적으로 표명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2016년 5월 29일 개정 의료법에 따라 일회용 주사 관련 의료용품을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위반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법령이 올해 3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일회용 의료기기를 재사용해 중대한 위해가 발생한 경우 징역형 처벌을 할 수 있도록 의료법 처벌조항이 신설됐지만 일회용 의료기기를 합법적으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은 미비한 실정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2009년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에 관한 연구결과를 통해 적절한 일회용 의료기기 관리체계 마련을 주문했다.

NECA는 당시 체계적인 문헌 고찰과 평가보고서를 종합, 일회용 의료기기 종류별 근거를 통해 혈액투석막(Hemodialysers)을 "재사용이 안전하며 효과적이라고 결론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며 'A'로 분류했다.

하지만 현행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에 관한 법적 근거는 의료기기법 시행규칙이 유일하다. 의료기기법 시행규칙 제43조(첨부문서 기재사항)는 '멸균 후 재사용이 가능한 의료기기인 경우에는 그 청소, 소독, 포장, 재멸균방법과 재사용 횟수의 제한내용을 포함하여 재사용을 위한 적절한 절차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