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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청진기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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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1.0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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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헌 원장(서울 강서·연세이비인후과의원)
▲ 홍지헌 원장(서울 강서·연세이비인후과의원)

 머리가 하얀 저 할머니
  무엇을 빌고 계시나
  이제 반백이 된 나는
  가족의 안녕을 빌고 있지만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중얼중얼 염불을 하며
  동그랗게 몸을 말아 절을
  올리며
  간절하게 비시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긴 세월 긴 축원에도
  약사사 돌부처님 꿈쩍도
  않으시고
  찬불가 나지막이 출렁이는
  경내를 지나
  산새소리 조용히 뒷산으로
  날아간다

강서구 개화산에 가면 약사사가 있다. 약사사는 다른 사찰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 있는데 바로 대웅전 가운데에 돌부처님을 모셔놓은 점이다. 머리에 지붕돌이 올려져 있어 갓을 쓰고 계신 듯 보이고, 두 손을 모아 꽃을 들고 계신다.

꽃은 중생들이 누구나 갖고 있는 불성을 의미하는 연꽃일 거라고 누군가에게 들은 것 같다. 머리에 올려져있는 지붕돌의 원래 기능은 불상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글공부를 많이 한 선비들이 쓰는 갓이 연상되어, 마치 대구 팔공산의 갓바위 부처님처럼 서울의 서부지역에서는 시험을 앞둔 수험생 부모들이 합격 축원을 드리러 많이 찾는 인기 높은 돌부처님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나도 몇 년 동안 부지런히 아침에 법당에 들려 돌부처님 전에 절을 하고 출근길에 오르곤 했다. 그런데 돌부처님이 모셔져있는 법당에 갈 때마다 거의 항상 눈에 띄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이분은 불상 가까이에서 쉴새없이 절을 드리고 염불을 하고 계시다가, 대웅전 좌측에 산신을 모셔놓은 삼성각에 가서 또 절을 드리며 거의 이른 아침 시간 대부분을 약사사에서 보내는 분 같았다. 속어적으로 표현하면 '약사사 죽순이' 할머니다.

어느 날은 부처님께 절을 드리고 있는 나에게로 오셔서 엉덩이를 더 낮춰야 하고, 두 발을 잘 포개라고 자세지도를 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당혹스럽기도 하여 엉거주춤 절을 중단하고 지도 받은대로 자세를 고쳐 다시 절을 했다. 만족스러우신지 보살 미소를 지으시며 지나가셨다.

그 후로는 아마 내 절하는 자세가 이홍섭 시인의 시에 표현된 바와 같이 부처님도 탄복할 만큼 공손하고 반듯해 졌다고 생각된다.

또 다른 어느 날에는 약사사 경내에 있는 삼층석탑 앞에서 합장 삼배를 올리고 있을 때 한 수 지도의 말씀을 해 주셨다.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정면에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으니 먼저 삼배를 올리고, 다음에는 산신령이 모셔져 있는 좌측의 삼성각에 삼배 올리고, 맨 나중에 오른편에 있는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에 삼배 드리는 것이 순서라고 하셨다. 맞는 말씀인지 아닌지 분별할 능력이 없는 나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그날 이후로는 그렇게 했다.

번번이 어색한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이런 인연이 있은 후 어느 날에는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가까운 곳에 개원하고 있는 의사라고 명함을 드리고 내 소개를 했더니 자신의 아들은 건물 출입구에 깔아두는 발 매트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한다고 하며 자신의 과년한 딸을 중매서 달라고도 했다.

마흔이 되도록 아직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고 있는 외사촌이 생각났지만 중매라는 것이 남의 인생에 너무 깊이 관여하는 것이라 신중하자고 스스로 달래며 참았다.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할머니가 빈 것이 바로 생전에 과년한 딸이 결혼해 가정을 이루는 모습을 보시는 것이었을까?

우리나라의 모든 종교가 결국은 구복신앙에 흐르는 것이 건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자녀가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바라는 직장을 얻고, 나이가 되면 결혼해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기를 축원하는 것 외에 평범한 사람들이 간절히 바라는 바가 또 무엇이 있겠는가. 일반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용해 종교가 너무 세속화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이제 새해가 밝았다. 모든 사람들이 제 사정에 따라 새해 소망을 빌 것이다. 아마도 머리가 하얗게 되어가는 동안 소망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축원하는 모습은 변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우리 회원 선후배님들 모두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간절한 소망 하나 정도는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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