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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아듀 2016

청진기 아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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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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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 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2016년 1월 7일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오후 4시 폭발음이 들리고 벽이 흔들리며 유리창이 날아갔다. 테러나 지진으로 판단한 나는 간호사들과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려는 순간 벽에 불이 붙어 번지고 있었다. 소화기의 안전핀을 빼고 불을 껐다. 조금만 늦었어도 건물이 전소했을 것이다. 소화기로 불을 꺼 본 것은 평생 처음이다.

병원 안에서 폭발물이 터져 인도와 차도에는 유리 파편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었다.

연락하지도 않았지만 소방서·경찰서·가스안전공사·한전·과학수사팀 등이 들이닥쳤다. 각 팀들의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했다. 테러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듯 범죄자 취급하는 질문이었다.

아수라장의 현장을 남기고 그들은 돌아갔고 혼자 남았다. 전기가 끊겨 캄캄한 암흑 속에서 고독을 느꼈다. 찬바람이 깨어진 창으로 몰아친다.

며칠 전 미국에 있는 작은 딸이 집에 무슨 일 없는지 꿈이 좋지 않다고 전화한 것이 생각난다. 노숙자들과 시리아 난민들 생각이 스친다. 소식을 들은 근처의 사람들이 찾아와 진심으로 위로를 해주고 걱정을 해준다.

다친 데가 없으니 다행이고 큰 폭발에 인명피해가 크지 않으니 감사하다고 위로한다. 어떤 사람은 따뜻한 차를 가지고 왔다. 집에 연락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전화를 했다.

병원에 일이 있어서 늦게 간다고 하니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다음날 예약한 환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은퇴할 것을 심각하게 생각한다. 이제 나를 나로부터 해방시켜줄 시간이 된 것 같다….'

2016년 새해 벽두에 병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TV 뉴스에도 보도됐고 인터넷에는 그 현장이 그대로 노출됐던 사건이다. 부평에 있는 비뇨기과 병원에서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나 여러 명이 다쳤다고 말이다. 대로변에 주차했던 차들의 유리가 모두 깨질 정도의 큰 사고였다.

과학수사팀의 최종결론은 병원에 있던 부탄가스가 가열된 열로 인해 폭발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쓰지 않는 부탄가스통이 언제부터인가 있었다. 가스안전공사 얘기로는 열을 가하지 않고 폭발한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나의 병원에서 처음 일어난 것이다.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고 인테리어를 다시하고 피해자들에 사과하고 배상하는 일을 마무리하며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우선 우리 병원 식구가 안전했다. 오후 4시는 병원 건물 옆 인도에는 사람들이 붐비는 시간인데 폭발당시 다니는 사람이 없어 차들이 크게 망가진 사고에 비해 인명피해가 경미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여러 명이 '유리파편 때문에 눈이 안보인다' '머리에 상처가 나고 귀가 안들린다' 등을 이유로 병원을 찾아왔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행패부리는 사람은 없었고 경찰이나 소방서에서 많이 도와주었다.

나는 일이 마무리 되자 새해에 두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2016년에는 골프를 치지 않고 TV를 보지 않기로 했다. 금년 한해를 좀 더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며 지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만물을 운행하는 절대자의 음성을 듣고 나를 내려놓는 훈련을 하고자 노력했다.

병원식구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삶을 돌아보고 각자 결단한 것들이 있다.

직원 한 명은 동네의 부모들이 계시지 않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나이는 그렇지만 대부분 학교를 중퇴한 아이들이다) 23명을 모아 금년 3월부터 검정고시를 준비시키기도 하고 악기를 가르치거나 각자 좋아하는 것을 찾아 하게 했다.

매주 도시락을 만들어 집에 배달해주고 그들이 필요한 것들이 있으면 통장을 털어서 해주고 있다. 그 중에 제일 나이가 많은 한 명이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다. 검정고시를 봐서 고등학교 2학년 나이다.

아무 희망이 없이 게임만 하던 아이였는데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3월부터목공 기술을 배우게 했는데 들어가기 힘든 H대 미대에 합격했다. 그리고 통장을 털어 입학금을 내 주었다. 세상이 아수라장인 것 같아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어 나라가 유지되는 것 같다.

연초에 폭발사고로 우리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을 결단하며 1년을 보냈다.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나를 낮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됐고 1년이 큰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다.

2016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 당시 화재로 소화기를 맞은 화초가 죽어 있었는데 끝까지 정성을 들여 돌보았더니 지금은 다시 생명을 내밀고 부활해 싱그러움을 더해 주고 있다.

화초만이 아니라 우리 병원 식구들, 우리 가족 모두가 알게 모르게 갖고 있던 더러움, 게으름, 음란함, 교만을 불과 소화기로 모두 제거해 버리고 다시 시작한 한 해가 됐다. 많이 정결해진 느낌이 든다.

지금 우리나라는 나라 전체가 폭격을 맞은 느낌이다. 비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애통을 통해 돌이키고 바닥에서부터 가난한 마음으로 인내와 절제와 기다림과 믿음을 가지고 새로운 나라를 일으켜야 한다.

2016년을 보내면서 2017년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장 3∼4절)

즐거운 성탄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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