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부모님 같이 모시라던 선생님…
환자를 부모님 같이 모시라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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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06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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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인봉(仁棒) 송진언 교수님 추모사
강준기 가톨릭의대 신경외과 명예교수

▲고 송진언 교수
지난 11월 29일 갑자기 송진언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감을 받았습니다. 2주전 교실 동문께서 LA를 방문해 송 교수님의 건강하신 모습을 뵙고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평소 건강 관리에 철저하시고 신앙생활을 성실히 하고 계신 사부님께서는 100세 건강을 유지 하실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92세로서 타계하시게 되어 더욱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송 교수님께서는 경북의대 재학 중 한국전쟁이 돌발되어 군의관으로 입대해 한국 전쟁당시 부상한 국군장병을 위해 헌신적으로 치료하고, 군복무를 중령으로 제대하신 후 고 이주걸 교수님 밑에서 2년간 공부를 마쳤습니다.

평소의 꿈이던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뉴욕대학병원·벨브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 신경과·신경외과 수련을 마치고 미국 신경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고국의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귀국하셨습니다.

이후 계명대 동산병원 신경외과 과장으로 계시면서 돌아가신 감정실 사모님과 2남을 두시고 후학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28세의 신경외과 레지던트 2년차로 성모병원에서 수련 중이었습니다. 초대 임광세 교수께서 중대병원으로 옮기신 후 후임으로 송 교수님이 저의 교실에 주임 교수로 부임하시게 됐습니다. 원래 송 교수님의 강직하신 성격과 엄격하신 교육,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게 됐으며 당시 우리나라 뇌혈관계 질환에 대해서 가장 존경받고 실력 있는 교수님이셨습니다.

특히 뇌동맥류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직접 뇌수술을 시행하셨고, 제가 1971년, 해군 군의관으로 포항 통합병원에 근무 시 해병대 중사의 뇌동맥류 파열 환자 수술을 위해 포항해병대 사단에 방문해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저를 격려하시던 생각이 납니다. 송 교수님께서는 1986년경 대한 뇌혈관학회 초대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우리나라 뇌혈관계 질환 수술의 질적 레벨을 국제 수준까지 끌어 올리시고, 가까운 일본 신경외과 학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상호 교류 학회도 하게 됐습니다.

1969년 본 교실에 주임교수로 부임하신 후 엄격한 스파르타식 수련교육을 통해 현재 213명의 전문의를 배출하게 됐습니다. 1991년 강남성모병원에서 정년퇴임 후 성바오로병원에서 명예교수로 5년 후학을 지도하고 미국에 계신 가족들에게 가시게 됐습니다.

미국에 계시면서 본 대학 신경외과 교실의 발전을 위해 많은 충언과 조언을 해주신 부모님 같은 송 교수님께서 타계하셨다니,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 듯 허전함과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희와 함께 계실 때 항상 하신 말씀이 "환자들을 너희 부모님, 가족같이 모시고 섬기라"고 하신 말씀과 "의사는 평생 책을 머리에 베고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신 사부님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제 나이 28살의 젊은 나이에 응급환자의 머리 X-Ray 사진과 혈관사진을 갖고 새벽 2시 송 교수님의 사택을 찾아가 지시받고, 야단맞던 그 시절이 잊혀지지 않고 교수님의 가르침이 오늘의 저의 교실에 뿌리를 내려주신 것에 항시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교수님, 지금은 평온한 마음으로 하늘나라, 사모님 곁에 함께 계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가르침과 은덕을 잃지 않고 저의 교실원들은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교수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제자 강준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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