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혜안(慧眼)-슬기로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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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2.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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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웅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 주웅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올해 상반기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이 국가필수예방접종으로 지정됐다. 부인종양 전문의로서 대중이나 언론인과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받는 오해 중 하나가 예방 접종과 의사의 이해관계에 대한 것이다.

즉, 백신 접종을 통해 관련 의사들이 (작게나마)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접종을 권장하는 것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 의혹에 찬 시선에 대해 필자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국가예방접종 사업이 성공리에 진행되면 이십 년 후쯤이면 자궁경부암 환자를 찾아 보기 힘들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밝은 의사라면 예방접종을 방해하는 것이 맞겠죠."

국가필수예방접종 프로그램과 같이 질병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건강을 증진 시키는 정책이야말로 의학적, 보건학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정책이다. 아픈 사람이 애초에 생기지 않는 세상은 요순(堯舜)시대를 능가하는 지상낙원이 아닐 수 없다, 라는 흐뭇한 생각에 빠져드는 순간 갑자기 이런 우국지정(憂國之情)이 튀어 나온다.

그런데 의료산업화는?

의료산업화는 부가가치가 높은 의약품, 의료기기를 연구 개발하고 의료서비스 부문을 육성하여 고용 창출과 경제 발전을 가져 올, 우리 나라의 신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여겨지는 전략이다.

의료산업화가 우리 경제와 의료계, 국가 R&D 사업의 주요 주제가 된 것은 최근 일이 아니다. 국책과제 연구비 공모 제안요청서(RFP)에 의료산업화는 거의 빠지지 않는 성과목표가 됐다.

IMF 사태 이후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호가 급증하면서 대학입시에서 의과대학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치솟았다.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제조업·반도체를 통해 우리 경제를 견인했듯, 이제는 의과대학 출신들이 국민의 먹거리를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었다.

질병의 고통에서 인류를 해방하고 부수적으로 국민 소득까지 올리기 위해 의료산업화에 매진하려 했는데 예방이 완벽하게 실현돼 아픈 사람이 생기지 않는, 이른바 무병(無病)사회가 될 미래를 대입시켜 보니 근심이 절로 솟아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단세포적인 걱정은 혜안(慧眼) 앞에서는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의료산업화의 대상은 병든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기껏해야 유병률 수 퍼센트인 암(癌)이나 중증질환을 대상으로 의료산업화를 해 봐야 수요는 한정돼 있다. 게다가 공공의료부문의 적극적 개입이나 개개인의 노력으로 질병 발생이 점점 줄어들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 의료산업화의 대상은 유병률이 100%인 노화나 피로가 되어야 한다. 기계도 오래 돌리면 냉각을 시켜주어야 하는데 하물며 인간으로서 급만성 피로감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비타민 주사와 정맥 영양 요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물론 평생 동안 피곤한 적 없어서 주사 한번 안 맞아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노화는 피해갈 수 없다. 태반 주사, 백옥 주사, 신데렐라 주사, 줄기 세포를 이용한 항노화 치료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전 세계 인류 모두에게 적용할 의료산업화였던 것인데, 몰이해와 좁은 식견으로 그 대상을 암이나 중증질환에만 한정시켜 왔던 연구자 1인으로서 혜안을 헤아리지 못해왔던 그간의 시간이 부끄럽고, 이내 자괴감 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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