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아 두껍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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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1.21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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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홍범식(울산의대 교수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 홍범식(울산의대 교수 서울아산병원 비뇨기과)

누군가 내일 당신 방광을 떼어 내고 소장을 바느질해서 엇비슷한 새 방광을 만들어 주겠다면 밤에 잠이 잘 오겠는가? 나는 겁에 질려있던 초로의 환자에게 나름 미소를 띠고 짤막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푹 주무시지요"
대뜸 돌아 온 답은 의외였다.
"선생님도 푹 주무시고 오세요"

그 말 속엔 자신의 집도의가 최상의 상태로 수술에 임하길 바라는 환자의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나는 환자가 시키는 대로 집에 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을 덮고'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흥얼거리니 옆에서 졸던 개가 귀를 쫑긋 세우고 컹컹거리며 따라 불렀다.

수술장의 커다란 자동문이 나를 삼키듯 열렸다. 눈 앞에 이어진 기다란 복도를 바라보며 잠시 섰다. 그것은 제한된 시야 속에 걸어 온 삶이라는 좁고 긴 터널과도 흡사했다. 암 덩이 가득한 방광은 초라한 모습으로 떨어져 나왔다.

하얀 변기 위로 뚝뚝 떨어지는 혈뇨는 한 대접 물 속에 새빨간 물감을 타 놓은 듯 그 출혈량이 과장돼 보인다.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이란 책을 정독하며 자신만의 건강비법을 고수해 왔던 이 환자 같은 사람도 일단 피를 보면 별 도리 없이 병원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내시경으로 치료할 수 없는 방광암의 경우 대개 방광을 없애고 새로운 방광을 만들어 준다. 의사에겐 부담, 환자에겐 공포다.

종 방향으로 절개해 열어젖힌 소장 벽을 맞대고 감치며 봉합해 가는 모습이 오자미 만들기와 비슷하다. 초등학교 운동회 전날, 나는 파란 모자를 쓰는 청군이었고 오자미 다섯 개를 만들어가야 했다. 어머니께선 꽃무늬 베갯잇을 오려 맞대시고는 한 땀 한 땀 기우셨다.

감치는 솜씨는 놀랍도록 정확하고 촘촘했다. 넋 놓고 구경하면서 콩은 언제 채우냐며 보채다가 콩 담은 그릇을 엎어 귀찮게만 해드렸다. 3번 바이크릴 봉합사 바늘은 맞댄 소장 벽을 용수철 모양으로 꿰매어 나갔다. 새로운 방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니는 오자미가 주머니 모양을 이루자 콩을 채워 넣으셨다.

마지막 바느질이 끝나자 손으로 오자미를 꼭 쥐면서 콩이 삐져나오는 데가 없는지 모든 솔기를 세심히 들여다 보셨다. 그렇게 운동회 전날 빛 바랜 베갯잇은 예쁜 꽃무늬 오자미로 하나 둘씩 변해갔다. 나는 다 만든 소장 방광에 관장용 주사기로 물을 가득 채워 넣고 이리저리 짜보며 새는 곳이 없는지 살폈다.

마지막 감치기 봉합을 마치고는 실 끝을 외과적 결찰로 단단히 동여맸다. 밤새 잠을 설쳤을 환자는 마취과 선생님의 자장가에 곤히 잠들어 있었고 푹 잤던 나는 그 즈음 약간의 피로감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두껍아 두껍아.'

어머니는 모래사장에 묻은 손을 살그머니 빼내며 저 노래를 부르셨다. 신기한 듯 두꺼비 집에 코를 박고 들여다 보니 하얀 조개 껍데기 하나가 들어 있었다. 그걸 꺼내려 손을 넣고 더듬자 집이 와르르 무너졌다. 짜증 내는 개구쟁이에게 어머니는 괜찮다면서 다시 노래를 부르며 더 튼튼한 집을 만들어 주셨다.

파도 하나가 해변에 그림자처럼 늘어지고 두꺼비 집은 추억 속으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4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뜻밖의 장소에서 저 노랫말을 다시 듣게 됐다. 과 야유회였다. 남한강변의 가벼운 산책을 마치고 과 식구들은 점심식사를 위해 퇴촌에 모였다.

조별로 신장이나 방광과 같은 장기 명칭을 넣어 사행시를 지어보는 게임을 했다. 한 병동 간호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나서더니 긴장된 얼굴로 좌중을 흘깃 보았다. 그리고는 목청을 몇 번 가다듬더니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며 운율에 맞추어 시를 읽어 내려갔다.

"○○아, ○○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아, ○○아, 헌 방광 줄게 새 방광 다오…."

나이 어린 간호사가 친구처럼 이름을 불러주니 기분이 좋았다. 읽어 내려 갈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는 듯해 먼 발치에서 손을 크게 흔들어 격려해 주었다. 수술이 복잡하고 입원기간도 긴 방광적출 환자들은 손도 많이 가는데다가 간호 과정에 여러 어려움이 있다.

들어도 싸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발한 사행시는 파도에 스러져가던 소년의 바닷가 두꺼비집으로 이어졌고 옛 추억 속 겨울잠 자던 두꺼비를 깨웠다. 그것은 일상처럼 반복되는 수술들과 그로 인해 지쳐있던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알을 밴 어미 옴두꺼비는 때가 되자 독기를 온 몸에 품고 늘 무서워 피해 다니던 뱀을 찾아 나섰다. 어미 두꺼비를 잡아 먹은 뱀은 독이 올라 죽었고 두꺼비 알들은 뱀을 자양분으로 건강하게 자라났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헌집은 어머니의 희생이고 새집은 자식이다. 내 이름을 두꺼비 대신 불렀으니 나더러 어머니의 손길이 되어 새집을 만들라는 뜻이었을까?

평소 병원에 대한 의심이 많았던 환자는 수개월 전부터 소변 색깔이 간간히 붉고 불편한 느낌도 받았지만 옥수수수염 차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버텼단다.

의사 만나기 세상에서 제일 쉽고 미국인도 부러워한다는 의료보험체제를 구비한 이 대한민국에서 도대체 무엇이 그에게 병원에 대한 진한 반감과 어설픈 대증요법에의 환상을 심어 주었을까? 핏덩이가 요도를 막아 근처 응급실에서 호스를 넣은 다음에야 자신만의 건강비법을 거두었다.

다리를 벌린 채 누워 방광을 들이 비추는 내시경 모니터에 떠오른 험상궂은 암 덩이들을 뚫어져라 바라보면서 엉터리 대체요법들, 그리고 인터넷에 떠도는 쓰레기 같은 정보의 유혹 속에 보낸 날들을 후회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수술을 받기로 결심한 후 그의 모든 관심은 수술과 관련된 합병증에 모아졌다.

"새로 만든 방광에 생길 수 있는 문제가 뭡니까?"
"바느질 솔기에서 소변이 새거나 방광이 파열되는 겁니다."
"뭐라고요? 방광이 터진다고요? 아니 그럼 어찌됩니까?"
"다시 꿰매야지요."

그의 물음은 길게 이어졌다. 이 만한 정도의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내 맡기는 심정으로 수술을 받기에 대체로 그와 같이 많은 질문을 쏟아내진 않는다. 자세한 수술 동의서가 입원 후 설명될 것이고 그 과정은 늘 숙연하다. 의사들 조차 교과서에 명시된 수없이 많은 수술관련 합병증들을 다 열거해 낼 수 없다.

득과 실의 싸움인 것이다. 예측된 득을 향해 예측하고 싶지 않은 실의 우려를 않고 수술대에 눕는 것이다.

그는 이제 많은 것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거렸다. 마지막 질문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몸에서 가장 자신 있는 장기가 장인데 장으로 방광을 만들면 튼튼했던 장마저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간단히 답했다.

"그럼 만들어진 방광도 튼튼할 겁니다."
그는 말없이 내 눈을 바라보았다.

다 만든 소장 방광의 위편에 양쪽 요관을 연결 한 뒤 방광 밑동에 낸 구멍과 요도를 이었다. 비뇨기 구조물 사이에 떡하니 자리잡은 소장으로 새로이 만든 방광의 모습은 이질적인 장기가 조화로이 합체된 새로운 계통이었고 인간의 몸 속에 이루어진 실체적 변모이자 희망이었다. 이제 환자는 이 계통으로 남은 생 동안 소변을 누어야 한다.

의대 다닐 때 발생학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칠판 한가운데에 하얀 분필로 속이 텅 빈 커다란 원통형 파이프를 수직으로 그렸다. 그 파이프를 입에서 항문까지의 소화기관을 단순화시킨 모습이라고 설명하면서 내배엽이라 지칭했다.

다음엔 빨간색 분필로 팔다리 뼈와 근육을 파이프에 달아 주더니 '이게 중배엽이야'하고 소리쳤다. 마지막엔 노란색 가느다란 선으로 그 모든 것을 둘러치더니 외배엽, 즉 피부라 지칭했다. 학생들이 강의실을 우르르 빠져 나갈 때 나는 칠판 위에 흰색, 빨간색, 노란색 분필로 그려진 그 해괴한 파이프 인간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내 육체가 이질적인 파편들로 와해됐다가 합체되는 반복적인 상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불어터진 채 원통형 파이프 속을 지나가고 있을 수업 직전에 게걸스럽게 삼킨 닭칼국수 가락은 과연 나의 소유인지 우주의 일부인 지 헷갈려 했다.

뱀의 아가리 속으로 기어 들어간 어미 옴 두꺼비는 어두컴컴한 원통형 터널을 숨막히듯 지나갈 때 자신의 피부를 터트려 온몸으로 뱀에게 독기를 전달하면서도 몸 속에 품은 알들의 안녕을 꿈꿨을까? 삶의 터널 한 가운데에서 나를 배고 있었을 어머니의 갈라터진 뱃살이 떠올라 움칠했다.

환자의 뱃속을 내려다 보았다. 새 방광이 꽃무늬 오자미의 모습을 하고서는 불어터진 닭칼국수 가락대신 맑은 오줌을 모아 들이고 있었다.

병동 관찰실에서 수술을 마친 환자를 만났다. 몸에 삽입된 여러 튜브의 개통성을 확인했다. 전날 겁에 질려 있었던 환자는 이제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 온 전쟁영웅의 모습을 하고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두 눈을 부릅뜨며 내 손을 꽉 쥐었다.

느껴지는 악력과 비위관 때문에 숨쉬기도 힘들텐데 제법 큰 목소리로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 환자를 보며 수술 후 상태가 양호함을 알 수 있었다.

"만든 방광은 괜찮겠지요?"
"오자미보다 튼튼할 겁니다."

나는 씩 웃으며 환자를 뒤로하고 병동 복도를 걸었다. 오랜 뱀 사냥을 마친 듯 쑤셔오는 허리를 손등으로 문지르면서 '두껍아 두껍아' 부르니 복도 저 편 끝에 공간을 가득 채우며 웅크리고 앉은 커다란 옴 두꺼비 한 마리가 나를 쏘아 보며 되물었다.

너는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했는가?
너의 바느질은 어머니의 오자미 바느질처럼 섬세하고 촘촘했는가?
너는 헌집이 되어 새집을 짓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냐?
네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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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준 2016-11-22 17:36:32
항상, 계속 이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해 주시길....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이보영 2016-11-22 15:09:42
교수님 글에 따뜻함이 뚝뚝 묻어납니다..헤세의 문장보다 섬세하게.. 밥딜런의 가사보다 더 마음깊이 따뜻하게 와닿은 수필이었습니다..

신지훈 2016-11-22 09:07:2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이 일하는 파트너로서 존경합니다.

김영훈 2016-11-22 09:07:11
환자에게 어머니같은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하시는 교수님 ^^

신성 2016-11-22 09:03:32
복잡하고 부담스런 진료 수술 현장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시다니 감동입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