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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준대로라면 정신과 의사 100% 기소될 것"
"검찰 기준대로라면 정신과 의사 100% 기소될 것"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6.11.05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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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즉시 서류제출 조항은 어디에도 없지만 검찰은 무더기로 봉직의 기소
조사하던 수사관 "의사면 잘 살겠네, 집은 몇평? 차는 뭡니까?" 비아냥도

▲ 지난달 29일 발족한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에서 연설하는 김지민 회장
"미흡한 법과 기준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하루라도 서류 제출이 늦었다면 모두 기소했다. 이대로라면 전국 모든 정신과 의사들은 범죄자가 된다. 장담컨대 100% 기소될 것이다."

지난달 29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가 발족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김지민 전문의(서울시립 축령병원)는 1일 본지와 전화 인터뷰에서 기소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사건은 최근 경기도 의정부지검이 관내 정신과전문의 53명을 무더기로 기소한 데서 출발한다. 사유는 '정신과환자 입·퇴원시 서류 미비'. 여기에는 정신병원에 근무하는 봉직의 39명도 포함돼 있었다. 

불합리한 검찰 조사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은 지난달 29일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를 발족하고 창립 총회를 열었다. 현재까지 협회에 가입된 회원은 320여명.

김지민 봉직의협회장은 "환자를 치료하려던 의사를 순식간에 범죄자로 내몰았다. 협회 비대위를 통해 향후 법적 대응에 나서는 한편 진료가이드라인 제정 등으로 진료환경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대응 의지를 드러냈다.

검찰은 병원이 아닌, 일개 의사인 봉직의를 기소했다.
이번 사건의 특이한 점이 병원장(기관장)이 아니라 봉직의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정신의료기관 관계자가 환자를 담당하며, 기관장의 권한이 정신과 전문의에게 위임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봉직의가 원장 권한을 대행하는 병원은 어디에도 없다. 법에도 그런 권한 조항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설령 서류제출 권한을 누군가에게 위임한다 해도 그 대상은 병원 원무과이지, 봉직의가 아니다.

이번 사건을 보며 '병원은 환자로 돈을 더 벌고, 보호자는 간병의 힘듦을 피하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란 시선도 있다.
정신과 의사들이 가장 답답해하고 분개하는 부분이다. 봉직의 입장에서는 환자 입원으로 인한 경제적 이득이 전혀 없다. 당연하지 않은가, 월급 받는 의사인데. 보호자들은 물론 간병에 지칠 수 있다. 만일 서로간의 이득을 위해 작당한 후 환자를 입원시켰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서류를 입원 당일날 바로 갖추는 게 어려운 힘든 상황에서 모든 정신과의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게 안타깝다.

검찰이 문제로 삼았던 서류미비건. 이것이 '관행'이 돼버린 이유가 뭔가.
응급환자를 데리고 온 보호자에게 "서류가 없으니 돌아가세요"라고 보낼 순 없다. 말 그대로 응급환자다. 환자 상태가 심각해 보호자가 경찰과 함께 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를 되돌려 보낼 수 없으니 관행이 된 것이지 악의적인 의도가 들어간 건 아니다.

서류 구비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가.
야간이나 주말에 응급 입원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돼 있더라도 부족한 점이 많다. 일단, 무인발급기는 본인확인이 돼야 한다. 인터넷 민원24도 시간제한이 있거나 본인이 직접 해야 가능한 경우가 있다. 환자 본인이 서류를 떼올 수 있을 만큼 상태가 양호하면 보호자가 강제입원을 신청하겠는가.

검찰은 법을 문제 삼았지만, 이도 명확하지 않다. 정신보건법 시행규칙 제14조 3(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신청 등)을 보면, 보호자 2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부득이한 사유로 입원동의서를 입원 시까지 제출하지 못했다면, 환자가 입원한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제출하라는 조항이 있다. 그러나 법 어디에도 입원 즉시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의사 입장에서는 서류보다 환자 치료가 우선이니 일단 입원시킨 후 정신보건법 시행규칙 제14조에 근거해 길면 일주일의 시간을 준 거다. 법 자체도 미비하거니와 언제나 응급환자를 다루는 우리로써는 그 법을 지키고 싶어도 어렵다.

그런데 이미 2012년도 자료부터 조사 중인 검찰은 하루라도 서류 제출이 늦었다면 모두 기소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전국의 모든 정신과 의사들은 범죄자가 된다. 장담컨대 100% 기소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정신보건법이 미흡하기 때문인가.
강제입원의 경우 환자 의사에 반해 입원 결정이 내려지는 건 확실하니 그걸 보호해줄 장치가 필요한 것도 맞고, 허점이 있으니 악용도 있을 수 있다. 정신과 환자의 입원 필요성은 의사가 결정하는데, 강제입원 결정의 주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의사 등에게 맡겨놓은 것이다.

서양에서는 사법부가 입원을 주도하는 사법입원 제도가 정립돼 있다. 이게 이뤄지려면 인적, 물적 인프라가 많이 든다. 국가에서 이를 운영하기 힘드니 의사와 보호자 2명에게 그 책임을 떠넘긴 게 아닌가. 이제와서 의사와 보호자를 '짜고치는 고스톱'처럼 치부해버리니 어이가 없다.

수사 이야기를 해보자. 피의자로 조사받는다는 걸 언제 알았나.
조사받으러 가던 날까지도 내가 피의자라고는 생각 못했다. 참고인인줄 알았다. 당시 병원에 압수수색 나왔을 당시 퇴원 불이행으로 수색을 나왔고, 조사받던 중 서류미비 및 대면진료 건으로 의사를 소환해 조사하라고 했다고 한다. 내 경우 원무과를 통해 '언제까지 출두하라'는 말만 들었다. 조사받으러 가던 중 뭔가 이상해 확인해보니, 그때서야 검찰은 내가 피의자 신분임을 알려줬다. 사전에 알았다면 변호사를 대동하든 준비를 했을 텐데 전혀 통보가 없었다.

검찰 조사는 어떻게 이뤄졌나.
진술서를 이미 다 작성한 상태에서 같은 내용을 우리한테 물어보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면 "그러고도 의사냐, 그게 말이 되냐"라며 그들이 준비한 대답을 강요했다. 핵심 사안을 '인정하라'고 강제하는 식이었다. 그들이 구상한 '시나리오'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쓰여진 진술서를 바탕으로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수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 않은 행위를 "안 했다"고 하면 "그게 말이 되냐"며 집요하게 물었다. 검찰은 의사의 직업적·도의적 책임을 들며 "너희 책임이 아니냐"고 물었다. 다른 봉직의 선생님들 중 환자 입원과 치료는 의사 책임이 맞다는 생각하에 "그렇다"고 대답한 분들도 있을지 모른다. 환자를 돌보는 건 의사의 직접적·윤리적 책임인데, 검찰은 이를 형사적 책임이 있는 것처럼 교묘하게 몰고 갔다.

검찰 조사가 처음인 우리는 형사적 책임이 뭔지 모른다. 유도심문에 넘어간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검찰은 우리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너네가 의사인데, 입원시킨 환자를 책임지지 못하면 병원장 혹은 원무과더러 책임지라는 것이냐"고 했다.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러고도 의사 자격이 있냐"는 비난이 반복됐다. 

조사는 한 차례, 한 시간 정도 이뤄졌는데 본인들이 인정하라는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강요했다. 내가 오죽하면 "원무과 직원이 서류를 줬을테니 그 직원에게 물어보라"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진술을 거부할 생각이나 추후 조사받을 생각은 없었나.
조사 시작할 때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진술을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서류를 보여주면서 "확인했으면 사인하라"라고 하는데, 진술을 거부하거나 변호사를 대동해 다음에 다시 조사받겠다고 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 경우 조사 시작 당시 수사관이 본인 신분도 밝히지 않았다.

마지막에는 진술서를 보여주며 "수정할 내용이 있으면 하라"고 주는데, 수정하려고 하면 윽박지르듯 이야기했다. "다시 날짜를 잡고 조사받을 것이냐"란 말도 들었지만 조사 받으러 간 입장에선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욕설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강압적인 조사라고 느꼈다.

조사와 전혀 관계 없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했다. 
"의사면 잘 살겠네요", "집은 몇 평이에요?" 같은 비아냥까지 들었다. 날 '돈만 밝히는 의사'처럼 몰기도 했다. 다른 봉직의 선생님들에도 "차가 뭐냐", "집이 몇 평이냐" 이런 질문을 던져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했다. 협회 비대위는 이런 내용이 담긴 진술서를 받아놓은 상태다. 

협회와 접촉한 변호사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가.
기소 자체가 '성과 부풀리기용'이란 의견을 들었다. 무리해서 기획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일부 정신병원에서 환자 퇴원명령을 불이행한다'는 제보로 이번 사건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10여군데 정신병원을 조사해보니 건수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서류미비 및 대면진료 건으로 방향을 튼 게 아닐까'란 해석을 들었다. 물론 추측일 뿐이다.

향후 봉직의협회의 계획은 무엇인가. 
이 사건과 관련해 10여개 로펌에서 수임제안을 받았다. 현재 약식기소가 된 상태인데, 12월 중 약식명령이 떨어지면 불응하고 정식재판을 하겠다고 밝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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