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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2 의료계에 두고두고 부담될 '외인사' 논란

기고2 의료계에 두고두고 부담될 '외인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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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3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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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경남 함안고려의원장)

▲ 박준호 (경남 함안고려의원장)

31년전 중1때이다. 집 인근 대학교 5월 축제때 유명 가수 온다고 친구와 놀러갔다. 80년대인 당시 학교 안은 어수선했다. 피흘리는 사진이 여기저기 걸려 있었고, 총칼든 군인이 시민을 폭행하는 사진도 있었다. 죽은 사람 사진을 처음 본 순간도 그날이다.'광주사태'라 했다.

친구와 나는 그 학기 사회과목 종강시간에 선생님에게 물었다. 광주사태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시라고. 그 때 선생님이 짓던 표정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머뭇거리면서 마땅찮은 표정을….

시골의사로 살아가는 나에게 가끔 중이염이나 비염으로 방문하는 J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으로 꼬마 때부터 진료를 받다 보니 진료실이 편안한가 보다. 얼마 전에는 직업탐방이라는 학교숙제 때문에 친구들과 진료실에 들어와 몇가지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갔다.

J의 동생 진료 때 일이다. J가 갑자기 물어봐도 되냐고 하길래 말해보라고 했다.
"백남기씨는 병사에요 외인사에요?"라고 묻는다.
"하!…"

내 표정이 머뭇거리고 마땅찮았나 보다. J의 어머니가 다그쳤다. 어디서 그런 말 들었냐고. J는 스마트폰에 다 나온다고 했다. 친구들도 다 알고 있단다. 답을 말해주기 전에 J의 어머니가 스마트폰을 뺏을거라는 둥, '쪼매난게' 별걸 다 말한다는 둥, 좁은 진료실이 어수선해지며 일단락됐다.

수련생활 때를 떠올려 본다. 응급실 근무 때 두개내 출혈환자가 들어와서 병력청취 상황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보호자 또는 구급대원이 환자의 외상수상 내력을 말로 설명한다.

공사장에서 추락했다든지, 술취해 낙상했다든지…. 이런 사례를 비춰보면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은 외상수상 장면이 동영상으로 자세히 남아있는 아주 드문 사건이다. 외력에 의한 외상수상 장면이 보호자의 말보다 더 정확하게 자세히 설명돼 있다.

의과대학 들어가서 배웠던 많은 지식들, 잠 못 자며 당직호출 받으며 고된 몸으로 겪었던 수련생활 때도 우리 의사에게 요구됐던 불변의 진리는 객관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진료행위였다.

외상이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게 됐다고 보여지는 상황을 자연발생한 질병 때문이라고 말해버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니 어디서부터 다시 답을 찾아야 할지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앞으로가 더 문제인거 같다. 외상후 투병생활을 하다 환자가 사망하면 의사의 판단이 아닌 보호자나 보험회사의 의견이 사망진단서 작성에 외력으로 작용할 것 같다.

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을 전공하는 친구와 통화해보니 응급의학과 특성상 사망진단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법의학과와 상의를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는 문제가 생기면 법의학과에 의뢰하는게 아니라 보호자나 보험회사와 상의해야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앞세운다.

병력기록에 의한 객관적 판단이 아닌, 환자와 관련된 다른 사람의 이익에 진료기록이나 진단서 작성이 좌우될 수 있는 아주 좋지 못한 선례를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동업자인 동료 의사와 미래의 의료현장을 이끌어갈 후배 동업자에게 큰 숙제를 남겨 버렸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외인사라 주장하는 의협과 법의학자, 다수의 의사들과 병사라고 말하는 진료한 병원측과의 대립은 이 사건을 관심있게 보는 국민이 의료계를 불신하는 계기로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사건이며 언론을 통해 사건 전말이 보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류를 가진 사망진단서가 계속 유지될 때 많은 국민이 의료계를 향해 허탈해하고 실망할 것이다.

의사가 되고 첫발을 내딛을 때 오른손을 들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맹세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머뭇거리고 마땅찮은 표정을 짓는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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