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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3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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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웅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수술전날의 병실 풍경.

▲ 주웅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가족, 친지들이 병문안을 와서 위로와 격려를 하며 용기를 준다. 목사님이 방문하셔서 기도를 해 주시는 경우도 있고 계모임 멤버들이 금일봉을 전달해 주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걱정해 주지만 다음날 수술대에 올라갈 환자 본인만큼 불안하고 떨리는 사람은 없다.

문병객들이 다 돌아 가고 다인실 병실에 불이 꺼지면 침대에 누운 수술 환자의 머리 속으로 숱한 상념들이 스친다. 명의(名醫)를 찾아 불원천리 이 병원까지 찾아와서 수술을 받게 되어 안심이다.  

그런데, 수술 전날 밤늦게까지 논문을 완성하고 두 세 시간 걸리는 투고 작업까지 완료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서는 집도의의 모습을 그려 보고 있자니, 왠지 흡족하지가 않다.

그렇다. 오늘 밤 내 집도의에게 가장 바라는 모습은 그가 일찍 잠자리에 들어 숙면을 취하는 것이다! 내일 아침 몸도 마음도 상쾌하게 출근해 예정된 수술을 깔끔하게 마쳐 주는 것, 그 모습이야말로 수술을 앞둔 환자가 바라는 집도의의 완벽한 모습이다.

한편, 응급실이나 중증외상센터 방문을 앞둔 환자들이 바라는 당직의사의 모습은 어떨까? 응급실이나 중증외상센터는 예약하고 가는 곳이 아니고 누구든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므로 '환자'가 바라는 모습이라고 하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바라는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적합하다.

내가 바라는 응급실 당직의사의 모습은 제 때 식사도 마쳤고, 낮에는 낮잠도 한 숨 자 두었고, 지금은 당직실 침대에 누워 페이스북을 보며 휴식을 취하는, 그냥 놀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바라는 중증외상센터의 모습은 수술실 한 두 개는 비어 있고 의사와 간호사, 방사선사와 간호조무사, 구급차 운전사가 각각 편안한 소파에 기대고 반쯤 누워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가을 야구를 시청하는 모습이다.

산부인과의 분만실도 다를 것 없다. 언제 올지 모를 환자를 기다리며 그냥 편안하게 쉬고 있기, 진통이 시작되어 분만실로 향하는 산모와 보호자는 이것이 분만실을 지키는 사람들의 정위치(定位置 )이기를 바란다.

분만을 포기하는 산부인과 병의원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의식 있는'분들은 저출산 극복 측면에서, 임신부 고령화 추세에 맞춘 안전 분만 측면에서 산부인과 병의원의 분만포기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혀를 찬다.

하지만 분만실 운영을 위해서는 의사와 간호사, 원무과 직원, 입원식당 근무자를 24시간 가용해야 하며, 모든 구성원이 편안한 마음으로 대기하고 최선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24시간 스탠바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잘 부각되지 않는다.

바이올리니스트는 연주가 끝나면 바이올린 현(絃)을 느슨하게 풀어 놓는다고 한다. 환자와 상황의 발생에 대비해 대기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이 적절해 진다면 우리나라 응급의료, 중증외상센터, 분만실의 만족도는 전혀 딴판으로 높아질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내가 원하는 명의를 찾아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밤이 되고 교통사고가 나고 양수가 터지고 응급한 상황이 되면 명의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그 때 찾아가서 만나야 할 응급실, 외상센터, 분만실 당직의사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진료할 수 있도록 해 줘 보자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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