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의비행장치
모의비행장치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10.12 12: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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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황 건 인하의대 교수
톰 행크스 주연의 '셜리-허드슨강의 기적'을 보았다. 2009년 미국에서 여객기가 새떼에 부딪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였다.

양쪽 엔진이 모두 정지하자 기장은 비상엔진을 점화하여 고도를 높였다. 부기장은 비상매뉴얼을 꺼내 읽으며 그대로 실행했다. 관제탑에서는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하라고 했으나, 기장은 자신의 경험과 직관에 의해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허드슨강에 비상착륙 시켰다.

비행기가 물에 닿는 순간 기장은 방송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brace for impact)!"

승객들은 두 손으로 앞 좌석을 잡고 고개를 숙여 머리를 댔다. 비행기가 강물 위에 정지하자 기장은 객석으로 나와 외쳤다.

"탈출하세요(Evacuate)!"

상황은 약 3분여 동안 일어났으며, 24분만에 승객 155명 전원이 구조됐음에도 청문회에서는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하지 않고 강 위에 비상 착륙한 결정이 최선이었는지를 모의실험을 통해 조사한다.

모의비행장치에는 실제 비행기와 똑같은 조종석과 계기판이 있고 조종사는 비상매뉴얼에 따라 조종하면 그 상황에서 가까운 공항으로 회항했을 경우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을지 여부를 미리 알 수 있었다. 모의비행장치의 검사관들은 새떼와 충돌 직후에 비상매뉴얼을 따라 인근 공항에 회항하는 실험했는데, 수차례의 연습 끝에 착륙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 충돌직후 비상조치를 시행하고 관제탑과 교신해 회항지시를 받는데 걸린 35초 후에 회항을 시도한 결과 착륙에 실패하는 결과가 나왔다. 청문회의 참석자들은 기장의 판단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됐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孫武)가 "장수는 전장에 나오면 비록 군주의 명령이라도 거부해야 한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멀리 있는 이의 원격조종보다는 위기에 빠진 당사자의 경험과 직관이 더 중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오래 전에 모의비행장치를 경험한 일이 떠올랐다. 요새는 과학박물관이나 놀이공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할 수 있으나, 나와 아이들은 이 사건이 나기 꼭 10년 전인 1999년에 조종사훈련소 모의비행장치에서 조종간을 잡아 볼 수 있었다.

부교수로 진급하고 1년 해외연수를 다녀온 지 1년이 지났을 때니까 한참 자신 있을 때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남자가 왼쪽 목 부위에 덩이가 생겨 진료실을 방문했다. 전날 목을 칼에 찔려 개인의원에서 치료하고 귀가했는데 하루 밤을 자고 나니 그 부위에 덩이가 생겼다고 했다.

목의 앞쪽에 있는 이 달걀만한 덩어리는 눌러도 아프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약 1cm 가량 벌어진 틈으로 스펀지모양의 지혈제가 보였다. '아 이거 혈종(hematoma)구나, 이걸 지혈만 해서 보내면 어떻게 해? 목이 눌리면 안되니 혈종을 제거해야지' 하고 혼자 생각했다.외래의 치료실에 간단한 세트를 준비해 혈종을 꺼내기로 하였다(evacuation).

환자를 치료대에 눕히고 목을 왼쪽으로 돌렸다. 1년차 전공의에게 아래쪽을 누르라고 하고 나는 환자의 머리 쪽에서 목의 혈종에 압력을 주었다. 선지 같은 암갈색의 혈종이 '퍽' 소리를 내며 시원하게 빠지며 안경 쓴 전공의의 얼굴에 덮쳤다.

그런데 뒤이어 선홍색의 출혈이 분수처럼 뒤따라 솟았다. 목동맥(carotid artery)이 칼에 손상 받았는데 지혈로 막아놓으니 주위에 혈종이 생겨 막혔던 것을 혈종을 제거하느라 압력을 가하여 다시 터진 것이었다. 거즈로 눌러 막았다. 금새 거즈가 다 젖고 환자의 맥박에 따라 피는 팍 팍 솟았다.

영락없이 ABC(airway, breathing, circulation)에 따르고 심폐소생술팀(CPR team)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환자운반대(cart)를 가져와 응급실로 데려가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했다. 언제 쇽(hypovolemic shock)에 빠질 지 몰랐다.

고개를 숙여 환자의 귀에 대고 조용히 말했다. "살고 싶으시지요? 일어나서 이 거즈로 목을 누르고 저를 따라 뛰셔요." 환자는 벌떡 일어나 나와 함께 약 40미터 떨어진 응급실까지 피를 흘리며 뛰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브이(IV) 좀 잡아요"하고 외치며 환자를 눕혔다. 상황을 알아챈 간호사가 바로 혈압을 쟀다. "60에 40인데요." 바로 수액을 달고 최대속도로 주입하기 시작했다. 응급의학과 교수가 수술실에 연락해 응급수술이 준비됐다.

찔린 곳으로 만으로는 시야확보가 안 되어 더 절개했는데도 피가 샘솟아 근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손으로 누르고 같은 과의 선배교수님께 연락 드렸다. 교수님이 들어오셔서도 출혈부위를 찾다가 못 찾으시고 나가셨다.

이제는 한쪽 목동맥을 묶어버리는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약 0.5cm 정도 목동맥이 찢어진 틈새에서 피 솟는 것을 발견했다. 그 부위에 8자형 봉합을 하여 겨우 지혈에 성공했다. 위기를 넘기고 나서야 다리가 후들거렸다. 마취과 의사의 테이블을 보니 빈 수혈 백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환자는 퇴원하며 내게 명함을 주었다. 조종사훈련소에 근무한다고 했다. 하마터면 치료실에서 죽을 뻔 했건만 그는 한사코 내게 고마움을 전하며 아이들과 함께 꼭 찾아오라고 했다. 그래서 시뮬레이터를 경험했던 것이다.

그 당시 우리 성형외과 내에서 그 환자에 대해 토의할 기회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목에 찔린 상처를 입은 환자만큼은 처음부터 수술실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17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아찔하지만 그때 환자를 당황하거나 우물쭈물 하지 않고 신속하게 응급실로 옮긴 것은 그나마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청문회에서 기장은 말했다. "비행기가 엔진을 모두 잃은 상황에서의 훈련은 아무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전 직원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도록 돼 있다. 나는 작년에 교육받았으나, 올해 가을학회에서 실시하는 심폐소생술 워크숍에 또 등록했다.

내년에 나는 만 60세가 된다. 내가 칼을 놓을 때까지 나의 과오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합병증에 빠지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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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주 2017-03-17 14:51:53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글 잼있게 긴박하게 아주 잘 읽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