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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별이 빛나는 밤에
청진기 별이 빛나는 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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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9.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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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 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한 여름의 열기가 멈췄다.

금년에도 가을이 와 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긴 옷차림위에도 새벽녘에 몰래 내린 이슬에도 가을이 와 있다.

에어컨을 틀어도 겨우 잠들 수 있었던 무더운 날씨 때문에 가을을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애원하고 떠밀어도 가지 않겠다던 여름은 가고 아침이면 창문을 닫아야 하는 시원한 바람 따라 가을이 묻어 왔다. 계절의 주관자는 언제나 신실하셔서 끝까지 고집부리며 오지 않겠다던 가을을 조금 늦게라도 불러 왔다.

가을이 오면 별을 보기위해서 멀리 떠나는 병이 생긴 지 오래다. 누구나 어린 시절 별이 빛나는 밤을 기억할 것이다. 고향의 흔적을 잃어버린 나는 별들을 보며 먼 고향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고향인 '안양시 호계동'에 가도 '안양읍 호계리'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별을 보고 있으면, 앞뜰에서는 멍석위에 누워 엄마의 옛날 얘기를 듣고 뒷동산에서 그네를 타던 '안양읍 호계리'를 느낄 수 있다. 노천명·윤동주·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들이 떠오른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볼 시간이 없다. 땅만을 바라보면서 바쁘게 살아간다. 나도 그렇게 50년을 살아왔다.

어제는 별이 보고 싶어 퇴근길에 강화도에 갔다. 외포리에는 출판사를 경영하다 별을 보고 싶어 출판사를 정리하고 이곳에 내려온 이광식 씨가 16년째 살고 있다.

그는 퇴근길에 어느 집 베란다에 노란 조등이 켜진 것을 보았다.
"일하다가 어느 날 조등하나 걸고 죽는구나. 억울하겠다. 억울하지 않으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별을 보고 싶었어요."

20년 전에 나도 이광식 씨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나는 억울하게도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쏟아지는 별은 볼 수 없었지만 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안심이 됐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답답할 때는 별을 보기 위해 떠난다. 울적한 현실은 사라지고 마음에는 별빛이 와서 박힌다. 속세의 모든 감정, 사랑과 미움, 집착과 비교, 좌절이나 우울 같은 것은 흔적 없이 사라진다.

별을 볼 수 있으려면 가로등이 없는 캄캄한 곳으로 가야만 하듯이 자신을 성찰하고 우주를 느끼려면 침묵과 절대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네온의 도시, 분주함과 욕망의 도시에서는 온갖 오염이 마음을 정복해버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지 않다. 도시에서 나오는 빛들이 별을 숨긴다. 땅의 영광이 하늘을 가린다.

별을 잃은 현대인들은 경이와 신비와 영감이 사라지고 도시의 욕망만이 보인다. 별은 어둠속에서 빛난다. 깊은 묵상은 어둠속에서만 가능하다. 애통과 겸손함과 가난한 마음만이 빛을 볼 수 있다.

내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썩어질 육체를 위해 세상의 화려한 것들로 채워져 있으면 참 빛이 들어올 수 없다.

나이 들어 눈 어두우니 별이 보인다.
반짝 반짝 서울 하늘에 별이 보인다.
하늘에 별이 보이니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고
풀과 나무 사이에 별이 보이니
사람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
반짝반짝 탁한 하늘에 별이 보인다.
눈 밝아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별'/신경림

멀리 있는 별은 100억 광년 떨어진 별도 있다 한다. 빛이 100억년 동안 가야되는 거리, 엄청난 공간 속에 작은 별로서 지구는 우주에 떠 있다. 이 흙과 물 덩어리의 동그란 지구가 물이 떨어지지 않고 공간에 떠있다는 것이 경이롭다.

얼마 전 별을 보고 누워있는데 내가 내 육체 밖에서 내 몸을 바라보고 있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내 영혼이 육체가운데 일시적으로 머문다는 느낌이 들었다.

C.S.루이스는 말한다. '우리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영혼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주가 맞물려 돌아가는 사이 육체는 낡아지고 잎처럼 떨어진다. 육체 속에 잠시 머물렀던 우리의 영혼은 원래 있던 본향으로 돌아간다. 수많은 사람(soul)들이 오랜 세월 이를 반복하고 있다.

이제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잎들은 자신의 역할을 끝내고 낙엽이 되어 떨어질 것이다. 가을의 중턱에 와 있는 나의 육체는 계절의 질서대로라면 낙엽처럼 되어 바람에 날리거나 마대자루에 들어갈 것이지만 나의 영혼은 별들 사이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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