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구조가 만성질환으로 전환한 지 오래지만 건강보험제도는 40년 전에 설계한 1997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병원중심의 의료공급체계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은 <이슈페이퍼> 최근호에 발표한 '의료료개혁을 위한 제한-보건의료체계 전면적인 새판이 필요하다'를 통해 이 같이 지적했다.

   
▲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

이 원장은 "OECD 국가들은 만성질병에 부합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의료체계를 지향하고 있고, 공중보건과 건강증진을 묶어 건강의 사회경제적 결정요인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공중보건은 위생·역학적 모형에 안주하고, 건강증진은 생활습관을 고치는 단순한 프로그램으로만 인식해 건강증진도 공중보건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래 전 설계한 낡은 보건의료체계로 인해 문제가 된 실제 사례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유행을 꼽았다.

"공중보건(public health)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고, 공공의료(publicly funded health care)는 개인을 대상으로 공적인 재정으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임에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공중보건을 공공의료에 포함하는 우를 범함으로써 공중보건의 기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한 이 원장은 "공중보건사업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지경이었다"고 꼬집었다.

이 원장은 "의료수가에 환자 안전관리나 감염관리를 위한 비용을 보상하지 못하다 보니 병원이 제대로 된 의료관리를 하기 어렵다"면서 "안전관리에 소요되는 시설비를 외면함에 따라 제대로 된 안전관리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제도 역시 "보험급여가 포괄적이지 못해 의료기관이 3대 비급여(일반 비급여·선택진료·상급병실)를 활용하는 영리적 활용 공간이 넓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정부 정책이 걸핏하면 의료민영화로 매도당할 소지를 만들었다"고 진단했다.

이 원장은 "행위별수가제는 서비스가 분절적으로 제공되는 급성질병에서는 유효하지만 연속적인 서비스가 요구되는 만성질병구조에서는 문제가 있다"며 진료비 지불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언급했다.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면, 의료공급자는 비급여서비스, 의약품 또는 치료재료와 같이 원가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의 공급에 집중해 의료 제공행위의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한 이 원장은 "상대가치 구조의 불균형으로 의사의 진료에 크게 의존하는 1차 의료나 외과계 의료의 위축을 초래하고 있다"면서 "상대가치가 낮은 전문 분야에는 전문의 지원이 없어 전문 분야 간 의사 공급의 불균형 문제가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공급체계의 문제점도 들춰냈다. "인구고령화와 생활습관의 변화 등으로 질병구조가 복합만성질병으로 바뀜에 따라 연속적인 서비스(continuum of care)가 필요함에도 의료공급체계는 여전히 급성기 질병에 부합하는 분절적 서비스 제공체계"라고 지적한 이 원장은 "상병구조의 변화와 인구고령화에 대비하기 위해 의료공급체계를 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체계로 전환해야 함에도 지역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공급체계는 전혀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원장은 "정부는 2000년 보건의료기본법을 제정하면서 보건의료분야의 계획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매 5년 단위의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법에 규정했으나 아직까지 5개년 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의 보건의료계획 부재에 문제를 제기했다.

"1977년 사회의료보험을 도입할 당시와는 달라진 오늘의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보건의료체계의 패러다임을 설계하지 못하면 의료 이용자인 국민의 어려움은 물론 공급자들도 비용 보상을 받기 어려워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힌 이 원장은 "과거의 틀로는 오늘의 보건의료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21세기를 지탱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