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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9 06:00 (금)
시론 [기고] 의료의 공공성 비판
시론 [기고] 의료의 공공성 비판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3.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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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호진(충북 박호진내과)

 들어가면서
 최근 보건의료의 공공성 혹은 공익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의료계는 원론적 입장을 견지하며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의료서비스는 공공재가 아닌 사용재이므로 천재지변 변란 등의 국가적 재난 혹은 응급환자 등을 제외하고 사용재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견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재로서의 의미를 받아 들이고, 정부 등이 의료기관을 비경쟁적으로 설립하고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묵과할 수 없는 주장이 제기되어 이에 의료계는 다시 주목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발표한 연구보고서(보건의료의시장개방에 대비한 보건의료체계 공공성 강화방안 연구. 연구기관: 김용익 2002.11.7)가 바로 그 문제의 핵이다. 위 보고서는 많은 오류와 논란의 소지를 담고있어 객관적이고 공정치 못하다. 이 보고서는 국민건강에 도움이 못되며 더 나아가 국회 차원에서 정책의 수립을 위한 참고 자료로 쓰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 이에 필자는 위 보고서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대한의사협회는 정책적 차원에서의 실패를 막기 위해 '의료의 공익성'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보고서를 발표하기를 촉구한다
 이 글에서 논의의 대상은 위의 보고서로 국한하기로 한다. 그러나 양봉민의 저서 는 보고서에 많이 인용되고 있으며 주장이 일치하여 부득이 포함시켰다. 앞으로 '김 등' 은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연구원들을 말하며, 보고서라 함은 위의 보건복지위원회의 보고서를 말한다.

 1.공공성 인식에 대한 비판
 가)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 서양에서의 공공성은 궁극적으로는 공익(성)을 뜻하며 이 논의는 오랜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공익의 개념은 서구 문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개요는 아래의 인용문으로 대신한다.
 - 중국에서 공익이란 단어는 20세기 초에 비로서 등장하며, 그 이전에는 공(公)의 개념 밖에 없다. 전통적인 동양 사회의 공은 정치 권력자 혹은 정치적 지배 기구를 의미한다. 윤리적 의미로 사용시에는 평분(平分)을 뜻한다. 반면 사(私)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공평무사(公平無私) 등이 그 예이다.
 - 조선시대는 '사'를 '공'과 대립되는 비윤리적인 것으로 여겨온 성리학의 영향 아래서 '공'이 정치권력이나 국가권력을 의미하는데 반하여, '사'는 국가나 법률의 허락을 받지 않은 '탈법적' 이라는 의미로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사도(私屠),사시(私市) 등이 그러하다.
 - 한국의 공익성의 개념은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근대 국가가 출범하면서 제도적으로 도입된다. 그러나 성리학의 영향으로 인해 정당한 사익은 부정되고, 정부의 권능만이 정통성을 가지는 인식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 남아 있다. 이런 결과 독재 정권의 탄생을 부추기게 된다.
 - 어느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익만이 중요하다는 인식 역시 자기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사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는 정치권력의 독점과 횡포를 막을 길이 없다. 그 결과 정치 질서가 억압적인 권위주의로 타락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개인들은 모두 수동적인 신민(臣民)으로 전락하고, 정치 공동체를 스스로 이끌어간다는 자율 의식은 감추게 된다.]
 [공을 국가권력으로만 인식하는 한, 시민들의 건전한 사익과 공적 덕성은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모든 정책과 의사 결정이 과도하게 국가나 관 주도로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건전한 사익에 대한 주장마저 공익을 해치는 것으로 치부되고, 따라서 모든 사익의 추구는 지하로 숨어들어 탈법적,비합리적인 것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다. (중략)이런 점에서 '윤리적 정당성을 획득한 다수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온 전통적 공익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남아있다.]
 나) 일부 인사들이 주장하는 공공성
 - 양봉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보건의료는 사회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특이한 재화에 해당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이러한 보건의료의 특이성을 실체화하고 여타 재화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의미를 가지며, 의료수혜를 상술이 아닌 인술로서 규정짓는 선언에 속한다. 2000여 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선서가 무의미하다고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듯이, 보건의료가 재화로서 갖는 공공성은 보건학도, 의사, 정부관리, 간호사, 학자 그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도 이러한 보건의료의 특성이 무시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련되어야 하며 (중략)]
 첫째, 우선 공익성이 무엇인지 저자의 견해가 없다. 그러면서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하여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당위론을 내세우고 있다. 모든 재화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있다. 단순히 특이한 재화 에 속한다고 공익성을 당위론으로만으로 주장할 수 없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의료계는 공익의 기능을 무시하고 존재해 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이 없다.
 둘째, 인술을 상술과 대비시켜 의업과 상업을 차별하고 있다. 오늘날,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시혜와 수혜'의 관계에서 '제공과 이용'의 관계로 바뀐 지 오래이다. 히포크라테스를 운운하며 수혜와 인술 을 논하는 것은 다원화된 현대사회에 맞지 않는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차별이 심하던 조선시대를 연상케 한다. 그 당시 진정 한 의료는 지배계층만을 위하여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의료는 보편성을 가지고 수평관계로 사회 속에 자리매김을 하기 위해 의사집단이 노력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 '김 등'은 보고서에 선종근과 임양근을 인용 하여 공익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공익의 존재 자체는 인정되며 공익은 사익의 대척점에 놓여 있으면서도 사익과 전혀 무관하거나 사익의 단순 총합에 불과하다고 볼 수 없으며 "당대에 보편화된 가치와 외연성(externality)을 지닌 공통 이익으로,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이익을 제공함과 동시에 그 양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규정된다.]
 위 선종근의 논문을 확인한 결과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생명,재산,자유와 같은 사익 보호를 전제로 하고 있다. 사익을 무시한 공익이란 어떠한 형태로던 존재할 수 없다." "공익은 사익과 별개의 것은 아니다."라고 결론 짓고 있다. 그 다음 공익이란 사익에 근거한 공통적인 '그 무엇' 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의미전달을 위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아쉽다. 위의 인용문은 '그 무엇'을 학술적인 용어로 기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김'은 공공성에 대하여 출전을 밝히지 않고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공공성(=공익성)이란 간단히 말하자면, '한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이 아니라, 일반 사회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성질'을 의미한다. 즉 다수의 공익을 위한 것이며, 사익에 대칭되는 말이다.]
 [<과제 7> 민간부문의 공공성 확보 방안으로 단기적으로는 병원 경영에 노조 및 지역주민의 경영 참여가 필요. 장기적으로는 소유 형태 자체를 사회적 소유로 소유 형태의 전환이 필요.]
 '다수가 좋으면 공익'이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위의 '그 무엇'과는 의미가 틀리다. 사익과 공익을 실체적인 개념 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공익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아니다. 더구나 양자의 관계를 대립의 관계로 접근하는 것은 공공성에 대한 강조가 '공익일방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위의 주장은 사유재산 제도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고의 틀은 나중에 논의하게 되는 기본권의 문제에서 다시 확인된다.
 - 다음의 그림 을 제시하고 있다.
 ① 공익과 사익을 대립적 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② 공익에 무게를 줌으로써 공익 우선을 강조하고 있다.
 ③ 공익은 '국민건강증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 사익은 구체적인 사례들을 열거하여 같은 기준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을 같은 저울위에 올려 놓고 있다.
 ④ 공익은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사익은 억제할 대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가치재 왜곡에 대한 비판
 가) 양봉민은 보건의료 서비스를 우량재(merit good)로 분류하고 있다. 저서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는 우량재(merit good)에 해당한다. 국민 누구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보건의료 서비스를 향유할 권리가 있으며 헌법에 명시된 건강권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교육(education service)이 그러하듯이 보건의료 서비스 역시 소비를 통해 국민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도 장기적 편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하에 기본적인 서비스의 제공이 이루어져야 한다. (중략) 보건의료부문에의 국가개입의 당위성이 존재하며, 보건의료 서비스의 생산,소비,분배를 막연히 시장경제에만 맡길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저자는 다음에 답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우량재(merit good)는 양봉민의 독창적인 학설이 아니다.
 - 우선 재화나 서비스의 분류는 일반적으로 공공재 와 사용재로 나눈다. 공공재는 주로 정부에 의해 공급된다. 이 공공재를 제외하고 시장의 기능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 사용재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료 서비스는 사용재이다. 그러나 사용재임에도 국민들이 고루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지에서 '정부가 생산해 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우량재라 한다. 주택공사가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거나, 국공립 병원을 세워 진료하는 것이 이에 속한다.
 - 저자는 merit good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저서의 참고 문헌에도 인용된 원전이 없다. 그렇다면 양봉민의 우량재는 저자의 독창적인 이론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결과 merit good은 머스레이브(Musgrave)의 이론이다. 저자의 의도는 다음에서 보다 명확해 진다.
 둘째, "의료서비스는 우량재로서 국가의 책임하에 제공이 이루어져야 한다." "국가 개입의 당위성"을 주장한다. 이 부분이야 말로 merit good에 대한 중대한 왜곡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merit good의 존재 자체에 회의적이다. 머스그레이브는 비록 merit good의 존재를 인정하나 국가에 의한 과도한 가치판단이 소비자의 선택과 다를 수 있으며, 가치재 개념이 자원 배분의 주된 원칙이 되어서는 안되며, 국가의 전제적 권한 남용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의 책임과 최소한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 책임의 범위와 방법 등 구체적인 내용에 설명이 없다. 이는 merit good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사용재는 시장의 기능에 의해 공급되며 정부가 공급하는 merit good도 역시 시장의 기능에 의해 공급되는 것이다.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학자는 '김 등'과 양봉민뿐이다. 결국 merit good이란 정부개입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셋째, 교육을 예를 들어 의료와 동일시하고 있다. 헌법에 교육은 국가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 라고 규정하지만 건강권은 저자의 말대로 기본권일 뿐이다.
 나) 김재용 외 5인의 연구보고서 에 나타난 원전에 대한 왜곡
 다) '김 등'의 재인용 문제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공공재의 특성은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기준에 따른 순수공공재 또는 순수민간재는 거의 없다. 공공재가 재화나 서비스 자체의 독립적인 특성에 의해서만 규정되는 것이 아니며 공공적으로 생산된 집합재는 공공재라는 방식으로 공급 자체에 의해 역규정되기도 한다. 머스그레이브는 시장기구를 통해 공급할 수 있음에도 현실적으로 정부가 공급하는 서비스(공공주택, 학교급식 등) 또는 그 반대의 경우를 설명하기 위하여 우량재 혹은 가치재(merit good)라는 중간개념을 제시하고 소비자가 (중략)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또는 정부)가 지도(guidance) 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의 본질에 어긋나지 않는다.]
 [(중략) 같은 맥락에서 보건의료 서비스는 소비를 통해 국민 개인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도 장기적 편익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하에 기본적 서비스의 제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우량재로 간주되기도 한다.]
 - 전체는 '김 등'의 보고서이고, 첫 부분은 김재용 등의 연구보고서이다. 의료 서비스가 사용재 혹은 공공재인지 언급이 없다. 그러나 의료서비스는 순수 사용재 이고 순수공공재에는 경찰과 국방서비스가 있다. 공공재라는 방식으로 공급 자체에 의해 역규정되기도 한다는 것은 무슨 이론인가? 원전을 밝히지 않아 개인의 주장으로 밖에 볼 수 없다.
 - 머스그레이브가 '중간개념'으로 우량재를 제시하였다라고 했다. 정반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확인하였다. "merit good의 문제는 (중략) 사용재와 공공재의 구분과는 절대로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must not be confused with that between private and social goods.)". merit good은 공공재와 사용재의 중간개념의 재화가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이다. 중간개념으로 주장한 저자들은 원전을 왜곡하고 있다.
 - 정부의 '지도(guidance) 역할'과 '민주주의의 본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원전에서 guidance란 단어와 민주주의 본질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찾지 못했다. 정부의 지도역할은 양봉민이 주장하는 '정부의 책임'과 다르지 않다. 원전에는 merit good가 개인의 대한 선택권에 강요, 국가의 과도한 가치 판단과 권한남용 등을 경계하고 있다. 그럼에도 merit good이어서 정부의 개입이 당연하다는 이론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머스그레이브는 심지어 플라톤과 모택동이 주장하는 '공동체의 욕구'에 대하여 인민 모두가 스스로 받아 들인다 해도 개인욕구와 집단의 욕구는 같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신조는 분명히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단언하였다(This tenet is clearly inconsistent with our views of democracy; nor can it be defended by arguing that "in the end" all preferences are socially conditioned.).
 - '김 등'은 merit good에 대하여 김재용 등의 연구보고서를 재인용 하였으나, 원전을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재인용하는 것은 '김 등'의 신뢰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더구나 인용한 문헌은 많은 왜곡을 담고 있다. 보다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만 했다. 국회 차원의 보고서로는 커다란 문제점과 무책임을 내포하고 있다.
 - 우연인지는 모르나 마지막 세 줄의 내용은 양봉민의 저서의 내용과 일치한다. 위의 저자들은 민주주의 운운하며 보건과 의료에 국가의 개입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문제는 보고서의 인용이 양봉민이어야 함에도 이준구이다. 이는 원전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3.기본권 우열에 대한 비판
 보고서에 기술된 아래의 인용문은 '김 등'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이다.
 [(중략) 우리가 유의해야 할 점은 일반적인 공익에 대한 강조가 사익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시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①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바처럼 공익의 우선성이 사익에 일정한 제한을 가할 수는 있으나, 공익 우선의 정당성은 ②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함이 없이, 오히려 국민 ③대다수의 기본권적 사익과 공익이 일치함으로써 확보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건강에 대한 권리가 ④가장 원초적인 기본권적 측면을 가지며 보건의료는 한 사회가 건강권을 보장하는 유력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보건의료 분야의 여러 주체들의 다양한 사익에 대하여 국민의 건강권 보장 내지 보건의료의 공익 내지 공공성 보장 우선의 원칙은 정당성을 갖게 된다.]
 ① 헌법 제37조 를 인용하여 사익을 제한하고 공익의 우선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법률가의 일반적인 견해는 전혀 아닐 것이다.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본다.
 ② 공익의 우선을 위해 '국민 대다수의 기본권적 사익과 공익의 일치'를 가정하고 있다. '국민 대다수의 기본권적 사익'이란 표현을 바꾸어 말하면, 공익을 위해서 소수 국민의 기본권적인 사익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사익이란 무엇인가?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들을 예로 들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지적 혹은 물적재산권이다. 중국도 최근에 사유재산을 인정하였다. 이는 공산주의체제가 통제경제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사익을 무시한 공익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③ 이것이 '김 등'이 생각하는 공익우선의 정당성인지는 몰라도, 일부 국민은 기본권을 누릴 수 없다는 탈헌법적인 발상이다. 소수는 누구를 말하는가. 보건과 의료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뜻한다면 이들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일반론으로 논하자면, 공익을 우선시킨다면서 양자를 일치시키려는 논리적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 하려면 사익과 공익 중 하나만이 존재하는 사회 즉 극단적 자유방임,방종주의, 전체주의 혹은 공산사회주의 외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전례가 없다.
 ④ 헌법에는 많은 기본권들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건강권이 왜 가장 원초적인지, 또 여러 기본권 중 건강권이 왜 우선되어야 하는지 설명이 없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이 없다면 이 보고서는 가치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권을 우선시한다면 기본권 상호 간에 우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윤리 철학이나 법학에서는 기본권 상호 간의 우열이 있다는 것은 일반상식으로 부정되고 있다. '김 등'이 주장하는 '건강권 우선의 원칙'은 다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4.시장실패 등에 대한 비판
 보고서와 양봉민은 경제학 용어인 '시장실패와 정부실패'를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실패에 비중을 두어 사실상 정부의 개입을 촉구하고 있다. 시장실패의 원인으로 우량재론, 정보의 비대칭성(환자의 무지), 외부효과와 불확실성을 들고 있다.
 첫째, 우량재론은 이미 논한바와 같이 원전에 대한 왜곡 등 근거가 없음을 밝혔다.
 둘째, 정보의 비대칭성 혹은 환자의 무지를 가장 근본적인 이유로 들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제공자의 도덕적 해이에 의하여 혹은 수요자의 무지에 의해 필요 이상의 의료수요가 창출된다는 것이다. 이를 유난히 부각시키는 것은 시장의 기능을 부정하고자 하는 저자들의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정보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너무 과장되게 일반화하거나 제기하려는 유혹은 떨쳐버려야 한다. 말하자면 "보건부문에 정보문제가 존재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반드시 다른 시장보다 악화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라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정보의 문제는 모든 경제 분야의 일반적인 현상이지 의료만의 특성이 될 수 없다. 또한 시장실패가 있을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지, 당연히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정부의 개입이 좋은 의도에서, 그리고 올바른 방법으로 시도한다 해도 민간부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교란시켜 효율성에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 의료의 현장은 정부실패이다.
 셋째, 외부효과와 불확실성에 대하여 구구한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들도시장경제의 일반적인 현상이지 의료 분야에만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으로 볼 수 없다.
 '김 등'은 주장하기를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보건의료는 시장의 실패가 일어나는 조건으로 알려진 거의 전부를 충족시키는 예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가격/품질 경쟁이 일어나지 않아 시장기능 만으로는 사회적으로 자원 배분이 불가능하며'라고 했다. 위에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의 개입을 강화시키기 위한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따라서 의료에 대한 각종 규제를 푸는 것이 해결의 열쇠이다.

 5.종합적 비판
 이상에서 살핀바와 같이 보고서는 기본적 오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위의 저자들은 전체주의적인 논리의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있다. 이제는 7만 의사들 보고 함께 빠지자는 말인가? 모두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겸허한 언어로 답해야 할 것이다.
 ① 의료 서비스가 국민들에게 어떻게 제대로 정의롭게 제공되느냐 하는 점에서 배분(distributive justice)의 문제이다. 그들은 보건의료 서비스의 공평한 배분을 주장한다. 배분에 대해 머스그레이브나 이준구 같은 재정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다. [경제학의 방법론이 객관성과 엄밀성을 자랑하고 있지만 공평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무력함을 노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평한 분배의 실체가 무엇인가라는 본원적인 물음은 결국 철학적인 방법에 의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재정학에 대한 신뢰감을 더 해준다. 우리나라의 보건학자들이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공평한 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그리 쉽게 주장하고 현실에 반영하기에 너무 어렵다는 말이다.
 ② 형평성(Equity)이 중요하다면 적어도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한다. 보호받아야 할 계층은 당연히 제도적으로도 차별 받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일부 국민이 해외에서 원정진료를 받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 들일 것인가? 이 또한 지금의 제도가 만들어 놓은 차별인 것이다. 빈자나 부자의 통증을 구별하는 것은 옳지 않다.
 ③ 예방 사업에는 추가재원이 들지 않는가? 2~15배의 편익이 있다고 하였다. OECD 국가는 예방을 잘하고 있음에도 국민의료비가 GDP의 10% 육박한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대로라면, 예방을 통해 의료비를 더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5.3%에 지나지 않는다. 이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의사와 국민들의 인내임을 알아야 한다.
 ④ '사회민주적 통제', 이윤동기의 최소화, 진료비 지불방식의 변경, 영리법인과 민간의보의 반대 등등이 곳곳에 열거된 방법론이다. 나름대로 객관성을 과시하기 위해 언어의 유희를 보이나 궁극적인 내용은 사익의 배제이다. 또한 '의료결정' 등 개념이 불분명한 용어와 비문(非文)이 많아 실망스럽다.

 나가면서
 보고서의 첫 구절에 '무정부적'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렇게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단어를 처음부터 바탕에 깔고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다.
 전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보건의료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개입'과 '사적요소의 철저한 배제'이다. 저자들의 공공성 강화론은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소위 '실용적 개혁'을 내걸고 건강권 우선의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논지는 "공공성은 접근 방법의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공통 기반으로 판단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공익과 건강권의 우선'은 잘못된 것임을 논하였다. 문제는 공익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심지어 일부 급진주의자들은 의약품의 공공성과 자본주의의 사유재산제까지 이의를 주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공익'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고, 과욕을 부려 공익 일방주의 혹은 그 이상으로 잘못된 주장임을 보고서에서 확인하였다.
 시장실패를 들어 정부의 개입을 촉구하고 있으나 살펴본 바와 같이 근거가 없다. 의료보험이 시작된 지 26년이 지났다. 오늘의 현실은 시장실패가 아니라 정부실패인 것이다. 이는 보험자의 통합, 낮은 복지 예산과 보험요율, 진료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의사들에 대한 규제정책, 준비안된 의약분업, 건보재정 적자 등등이 원인이자 결과들이다.
 문제의 해결 방향은 규제완화와 자율성의 확대 등을 통해 시장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 정부의 예산 증액과 올바른 사용 외에 대안이 없다. 더 이상의 잘못은 재앙을 초래할 뿐이다.
 노무현정권의 당면과제는 이러한 보고서에 의한 정책 입안보다는, 지난 정권에서의 조급한 정책들을 반성하고 보완하는 일이다. 7만 의사 모두가 어떻게 공익의 적일 수 있다는 말인가? 국민, 의료계, 정부의 관계에서 새로운 정삼각형을 찾아야 한다.
 이에 정부는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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