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혈액투석 환자(의료급여)에게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처방했다는 이유로 모 병원에 약 1000만원의 진료비 환수 조치를 통보해 논란이 일었다.  

심평원의 환수 근거는 보건복지부 고시인 '의료급여수가의 기준 및 일반기준' 이다. 지난 2000년도에 만들어진 고시는 의료급여환자의 혈액투석 수가를 14만6120원 정액으로 묶어 놓고, 여기에 진찰료·치료대·투석액 등 투석 당일 투여된 약제 및 검사료 등을 모두 포함시켰다.

   
 

특히 혈액투석 당일날 다른 병으로 다른 진료 과목의 전문의에게 진료 받는 경우에만 급여비용을 별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투석치료와 백혈병 치료는 동일한 내과 진료인데도, 글리벡 처방을 별도 청구했으니 병원이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게 심평원의 환수 논리다.

문제는 같은 '내과'라도 소화기내과, 순환기내과, 심장내과, 류마티스내과 등으로 전문 분야가 세분화돼 있어 실제 의료 현장에선 각각 다른 전문의가 진료를 담당하는 사실상 '다른 진료 과목'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의료급여 투석환자가 혈액투석을 받고, 이왕 병원에 온 김에 평소 앓던 만성 소화불량 진료를 소화기내과 전문의로부터 받아 약을 처방받는 것은 환자나 병원 입장에서 상식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심평원은 같은 날 동일한 '내과' 진료를 받았으니 소화기 질환 진료비는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료비를 삭감 당하지 않기 위해선 환자로 하여금 다른 날 다시 오게 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거나, 둘 중 한가지 방법을 써야 한다. 이렇다보니 병원 입장에선 투석환자가 내과 계통의 다른 질병 치료를 원할 경우 딜레머에 빠진다. 치료를 해주자니 삭감 당하고, 안해주면 환자가 불편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대한투석협회는 의사 자격증만 있으면 질환의 종류에 관계없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만큼, 혈액 투석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다른 질환을 진료했다면 전문과목과 관계 없이 별도 산정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김성남 투석협회 총무이사는 "혈액투석으로 위궤양, 당뇨병 등을 치료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고시는 다른 질병 치료까지 혈액투석 정액수가 내에서 전부 해결하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약자인 의료급여 환자를 건강보험 환자와 차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석 당일 협심증, 백혈병, 소화성 질환을 진료하고 약 처방을 받으려면, 건강보험환자는 인공신장실 주치의 또는 병원내 해당 전문내과의 협진을 받으면 되지만, 의료급여환자는 다음날 다시 병원을 오거나 아예 다른 병원으로 가야한다. 현재 혈액투석 환자는 전체 의료급여 환자의 약 23%, 6만여명에 달한다.

김성남 이사는 "똑 같은 환자인데 건강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차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표방하는 '보편적 복지'에 역행하는 '차별적 복지'"라고 비판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고시 제7조 2항 '외래 1회당 혈액투석 정액수가는 진찰료, 혈액투석수기료, 치료대, 투석액, 필수경구약제 및 Erythropoietin제제 등 투석당일 투여된 약제 및 검사료 등을 포함한다' 문구 가운데 '등' 2개를 삭제하고, 3항 '혈액투석을 받는 만성신부전증 환자가 동일날 다른 상병으로 다른 진료과목의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는 경우 급여비용을 별도 산정한다'에서 '다른 진료과목'을 삭제하면 된다.

손승환 투석협회 이사장은 "고시를 바꾼다고 의사가 얻는 이득은 전혀 없다. 다른 병원 전원시 발생하는 초진료, 내일 다시 오게 해서 생기는 재진료가 사라져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에 득이 된다"고 말했다.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받을 권리 보장, 환자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진료비 삭감을 감수해야 하는 의료기관의 굴레를 벗겨달라는 의사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보건복지부의 입은 굳게 닫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