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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그곳에 가고 싶다

청진기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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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8.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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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 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김훈의 <자전거 여행>에는 마암분교 아이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김용택 시인이 근무하는 임실군 마암면에 있는 시골 학교다.

김용택 시인은 우리의 뿌리이면서 이제는 낯선 풍경이 돼버린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어나는 시와 산문들을 써왔다.

김훈도 여러 글에서 잃어버린 순수를 찾는 열정을 보여준다. 나보다 조금 선배인 이 분들의 글들을 좋아하고 나도 일찍 문학을 했다면 비슷한 글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

섬진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마암분교는 아직도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고 작은 운동장과 낡은 교실의 시골학교지만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곳이란다.

김용택 시인과 친구인 김훈은 그곳에서 얼마간 머물면서 아이들과 친해졌는지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얘기를 풀어놓는다. 몇 명 안 되는 작은 분교의 아이들이 어떻게 서로 돕고 공부하고 노는지. 그러면서 이렇게 적었다.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 향기도 난다. 아이들은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자란다. 이 아이들을 끌어안아보면, 아이들의 팔다리에 힘이 가득 차 있고 아이들의 머리카락 속에서는 고소하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 이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아이들 키우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도회 사람들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냥 크도록 놔두지 못하고 재촉하고 이끌고 통제하고 부모의 불안한 마음이 애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한다.

스스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다. 물론 부모는 안전한 테두리가 되어주어야 한다. 언제라도 의존할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다. 그래야 애들은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다. 애들은 부모가 걱정하는 것만큼 불안한 존재가 아니다.

김훈은 아이들의 일상을 이렇게 쓰고 있다.
학교로 오는 아이들의 손에는 커다란 양동이가 하나씩 들려있는데 아이들이 점심때 밥 먹고 남은 찌꺼기를 이 양동이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간다고 한다. 집집마다 돼지와 개들이 이 아이들이 가져 오는 밥을 기다리고 있단다.

돼지밥통을 들고 집으로 가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내용은 이렇다.
"우리 집 돼지는 요즘 통 먹지를 않아서 걱정이야./ 야 무슨 돼지가 안 먹고 그러냐./ 병원에 가봐야 하나./ 돼지가 무슨 병원에 가니 우리도 안 가는데."

아이들의 관심은 스마트폰 게임이나 학원의 숙제가 아니다. 먹지 않는 돼지가 걱정이다.
김용택 시인은 아이들에게 시를 쓰게 한다. 이들을 모아 시집도 냈다.

오늘 학교에서
창우형의 자크가 열렸다.
나는 웃겼다
너무 웃겼다
창우형은 그것도 모르고
막 놀았다.

2학년이 쓴 시는 어떤 가식도 현란함이나 난해함도 없는 순수한, 눈부신 햇살 아래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의 마음이 전해진다.

여름방학 내내 중랑천에서 발가벗고 물속에서 놀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방학이 끝나면 염소처럼 새카맣게 탄 얼굴을 하고 학교에 간 기억이 난다. 마암분교 아이들처럼 놀았을 것이다.

그런 순수한 시절을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에는 가난과 슬픔이 있고 경쟁과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마암분교 아이들은 김용택 선생님의 헌신으로 경쟁과 모순들을 느끼지 못하는 공동체를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지도자 한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오늘은 원형탈모증과 아토피가 심한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가 엄마와 함께 병원에 왔다. 어딘가 찌들고 불안해하는 모습으로 앉아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엄마의 표정도 불안하기는 만찬가지다.

"숙제하고 학원에 다니기 때문에 병원에 올 시간이 없어요. 전교에서 1등하다가 2등으로 떨어졌어요. 약을 많이 주셨으면 합니다."

아이의 건강보다는 학원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경쟁에서 낙오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아이가 마암분교에서 학교를 다닌다면 원형탈모증과 아토피로 병원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2008년 정년퇴직하고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마암분교 아이들에 대해서 쓴 글도 오래전의 글이다. 지금은 마암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고 문명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암분교 아이들도 졸업하고 경쟁적인 세상에 나왔겠지만 세상의 악과 문화에 용해되지 않고 세상과 인간의 모순들을 이해하고 그런 세상을 자신의 어릴 적 놀던 순수한 세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고뇌를 짊어진 어른들로 되어 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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