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고] 인도 의료봉사기
시론 [기고] 인도 의료봉사기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3.03.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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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민 대한영상의학과개원의협의회장

지난 해에 이어 두 번째로 인도 북서부 파키스탄과 인접한 구자르트주의 잠나가시 지역에 의료선교여행을 약 2주간 다녀왔다.

가난, 가뭄과 질병, 무지, 종교분쟁, 지진, 계급사회, 혼돈과 무질서 등의 부정적인 인상으로 얼룩졌던 지난해 선교여행의 이미지를 간직한 채 서로간에 종교, 언어, 피부, 문화 등 모든 것이 다르지만 이번에는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마음의 문을 열며 대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다녀올 수 있었다.

이번 의료선교여행의 약품지원은 글로벌케어에서 하여 주었고 봉사에 참여한 의료인 4명은 MBS(MEDICAL BIBLE STUDY, 회장 김정호,연세의대 교수,영동세브란스병원)단체 소속 의사들이다. 그동안 느끼고 경험한 바를 정리하여 본다.
 
인도는 종교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억명 이상 인구 중 82%를 차지하는 힌두교도, 12%를 차지하는 이슬람교도, 2.5% 차지하는 기독교도가 있고, 불교가 생겨난 곳도 이 나라다. 이렇듯 세계의 주요 종교들이 다 모여 있을 뿐 만 아니라 종교가 사람의 생활 속에 깊숙히 뿌리 박혀있다. 말하자면 종교가 인간 외면에 형상으로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에서 그 생사를 떠맡고 있는 것이다

작년 2월 16일 약 10일간에 걸친 1차 의료선교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 온 후 약 10일쯤 지나서 우리가 의료선교 활동을 하던 지역에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에 종교분쟁이 발발하였다. 이 분쟁은 구자라트주의 수도인 아메다바드와 인근 중소도시로 퍼지면서 두 종교세력간의 충돌로 비화되었고 70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자 경찰력만으로 진압이 어려워 인도보안군의 투입으로 진정되었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아찔한 순간을 모면한 것이다.

우리 일행이 묵은 숙소, 이동차량, 진료지역 등 눈에 띄는 모든 형상은 힌두교나 이슬람교와 연관이 있다. 힌두교의 상징인 코끼리의 형상과 함께 독한 냄새를 뿜어대는 향은 어디를 가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이슬람신자를 인도에서는 '무슬림'이라고 하며 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힌두교도들보다 대체로 생활환경이 어려운 지역이다.

우리 진료팀이 이번에 진료지역중의 하나로 찾은 '조디아본가'라는 마을은 잠나가시내에 위치하고 있는 무슬렘 슬럼지역이다. 이곳에 도착하여 무슬렘사원에서 진료를 하였는데 시작에 앞서 사원에 출입금지선을 지키라든가 또는 신을 벗고 출입하라는등 이용하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조건을 제시하였고 또한 매 2시간마다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알라신을 숭배하는 요란한 음성은 진료차 방문한 우리 일행에게 매우 낯설고 진료시작 전부터 분위기에 휩쓸려 주눅들기에 충분하였다.

모슬렘사원에서 마을 주민진료.
이러한 의식은 모슬렘들을 율법에 억눌린 듯이 만들기도 하지만 가난과 질병의 고단한 삶에 찌들은 이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 같은 작용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 의료단체에서 진료 나왔다는 것에 대하여 포용하기보다는 경계의 눈초리를 느낄 수 있고 때로는 접근하는 이들의 눈빛에서 섬뜩한 감정마저 느껴졌다.

이들을 대하면서 무슨 선교니 전도니 하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으며 이들로부터 경계심을 풀어내고 이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는 이들을 섬기고 정성껏 치료하여 주어 스스로 자기들에게 도움을 주러 온 단체라는 사실을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가지고 간 선물을 마을의 족장을 통하여 나누어 줌으로써 우리 의료선교팀이 편안하고 우리의 주어진 기간동안 선교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무슬렘 사원에서 진료를 마친 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언론은 2001년 1월 26일 인도의 '경제심장부'로 불리는 북서부 구자라트주 부지시를 중심으로 강타한 지진으로 최소 10만명이상 숨지고 45억 달러 이상의 재산피해를 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진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방문하여 아직도 부스러지고 치워지지 않은 지진의 참상을 보았고, 주민을 인근 마을로 집단 이주시키고 새로 지은 집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모습을 보았다. 2년 전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그 지역은 최근 3년간 비가 한 방울도 안왔다고 한다.

2년 전 지진으로 입은 피해는 아직도 대부분 복구되지 못한 상태다. 당시 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의 잔해가 널려있다.

주위의 산천초목이 모두 뿌옇고, 저수지, 논, 밭 등 어느 곳이든지 물줄기라고는 구경할 수가 없었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생명력에 경외감 마저 느꼈다. 물이 없으니 그저 연명하기 위한 먹을 물 확보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으며, 개인의 위생상태도 엉망이었다.

빨래를 제대로 할 물이 없으니 입는 옷은 그야말로 무슨 냄새인지 모를 다양한 악취의 집합이고 이런 환자를 한 명 한 명 진료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서 다시 태어나 정말로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이 없으면 힘들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신발이 없어 맨발로 돌아다니니 발바닥이 갈라지고 굳어지고 또 원인 모를 각종 피부질환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수없이 보았다. 이들에게 병원이란 딴 세상이야기 아니 사치스런 이야기일 뿐이다.

항아리에 식수를 담아 머리에 얹고 오는 지진 인근 지역 주민들. 지진에 이어 3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가뭄으로 주민들의 건강과 위생상태는 최악이다.
 
기독교인 거의 대부분이 카스트제도의 최하층에 속해 있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사회적으로나 제도적으로도 많은 핍박과 억압을 당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크리스챤으로 당당히 살아가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실정이다. 우리가 해마다 찾은 구자르트주는 법으로 타종교의 개종을 금지하고 있다.

힌두교도들의 기독교도에 대한 핍박이 지난 50년 동안보다 최근 2~3년에 훨씬 더 심해 졌다고 한다. 1998년 주정부의 방관하에 힌두교도에 의하여 구자르트 주안에 있는 50여개의 교회가 불태워졌고, 그 2년 후에는 지진까지 일어나니 기독교도들은 일거수 일투족이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진을 통하여 여러 나라의 NGO를 포함하여 세계 각국의 여러 기독교 단체들의 도움과 위로를 받아 그들은 크리스챤으로서 힘을 얻게 되었고, 우리가 방문할 때마다 본부로 활용하고 있는 북인도 잠나가교회 역시 우리의 의료선교 활동으로 많은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 방문하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기독교인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을 현지의 목사와 상의하던 중 단기적인 대책보다도 좀 더 중장기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몇가지 사업을 구상하였다. 그 중에서 약 1만 달러 정도 가지고 있으면 조그만 초등학교를 지을 수 있다고 하는 현지 목사의 설명에 관심을 가졌고 비록 힌두와 무슬렘이 대부분인 이 지역에서 조그만 기독교 학교를 하나 짓고, 사람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기꺼이 응했다.

마치 우리 나라에서 조선말 개화기때 미국인 선교사가 들어와 이곳의 불쌍한 영혼을 구하고자 기독교 학교를 설립한 것처럼 앞으로 조그마한 초등학교를 짓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참된 복음을 가르치는 교육이 결실을 맺을 먼 훗날 이 지역사회에서 이들의 무의식 중에 쇠기둥보다 더 단단히 자리잡은 카스트제도 그 운명의 열쇠를 개혁의 열쇠로 만들어 운명이라는 고리를 풀 수 있기를 기다려 보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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