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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의 '모를 권리' 존중해야 하나? 현행법 아직은...

환자의 '모를 권리' 존중해야 하나? 현행법 아직은...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6.08.23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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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은 인권론적 정당성 VS 의사 설명의무 '충돌'
의료법학회 16일 학술발표회 "의사 배려의무 차원서 접근해야"

<사례> 23살 비키는 2012년 9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크리스마스에 스템 셀 이식수술을 받은 비키는 2013년 4월 관해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9월 백혈병이 재발했다.

비키는 부모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고, 희망을 잃고 싶지 않다면서 그게 자신의 희망이라고 이야기 했다.

부모는 주치의에게 환자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설명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주치의는 환자가 생존하게 될 희망이 그다지 많지 않고, 본인이 사실을 알아야 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서 부모의 요구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2013년 11월 주치의는 비키에게 30분에 걸쳐 그래픽 자료와 함께 자세한 예후를 설명했다.

비키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투병을 포기하고, 병상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크리스마스를 2주 앞둔 2013년 12월 10일 사망했다.


▲ 석희태 의료법학회 상임고문.ⓒ의협신문 송성철
대한의료법학회는 최근 성균관대학교에서 월례학술발표회를 열어 환자의 모를 권리와 주치의의 설명의무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환자의 모를 권리와 의사의 배려의무'에 대해 주제발표한 석희태 연세대 보건대학원 초빙교수(대한의료법학회 상임고문)는 "환자의 자결권 포기와 환자에 의한 의사 설명의무 면제 논리 그리고 적극적 설명의 역기능 논리만으로 해명할 수 없는 위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면서 "환자의 모를 권리 관념은 의사에게 요구되는 설명행위의 의무론적 정당성과 환자의 알고 싶지 않은 인권론적 정당성의 충돌을 범규범적으로 조화시키기 위한 개념적 출발점"이라고 화두를 던졌다.

환자의 모를 권리와 관련해 석 교수는 1981년 채택된 리스본선언(환자는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자신의 명시적 요구에 의해 정보를 제공받지 아니할 권리를 가진다)과 1997년 세계보건기구의 '의료유전학 및 유전자 서비스 제공에서의 윤리적 과제에 관한 국제 방침안'(유전자 검사 결과등 유전자 정보를 알고 싶지 않은 모든 개인과 가족의 희망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신생아 혹은 어린이의 치료 가능한 질병에 관련한 검사의 경우는 예외이다)을 소개했다.

현재 실정법에서는 자신의 의료상황에 대해 알 권리를 포기한 경우 의사의 보고성 설명의무를 면제할 수 있다. 또한 다음 단계의 진료에 관한 동의권과 거절권을 포기한 경우에도 의사의 기여적 설명의무를 면제할 수 있다.

이러한 환자의 행위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었을 때 적법하며, 이 경우 의사가 설명을 하지 않았더라도 위법행위가 아니므로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의료관계에서 의사가 부담하는 의무는 ▲급여의무(보고성 설명의무·의료시행의무·진료기록부 등 열람 허용 및 제공 의무) ▲부수적 의무(의료시행상의 기술적 주의의무·요양지도성 설명의무·전원의무 및 전원시 정보제공의무·경고의무·설득의무·진료기록부 등 자료의 작성 및 보존) ▲보호의무(의사결정 기여적 설명의무·비밀준수의무) 등이 있다.

급여의무를 불이행하면 손해배상채권 및 계약해제권이 발생한다. 부수적 의무를 불이행한 때에도 손해배상채권 및 계약해제권이 발생하지만 위반의 결과가 급여의무 이행에 아무런 장애가 없으면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호의무를 불이행 하는 경우에는 동의권 또는 모를 권리 등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 채권 발생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환자의 평소 언행이나 가치관·인생관·투병자세 등을 통해 환자 본인이 추구하는 무지법익을 인식할 수 있고, 의료 상황이 매우 엄중해 악화를 방지할 가능성이 없는 때에는 설명이 법익(이익)교량상 위법하다고 평가할 만하다"고 지적한 석 교수는 "이때 의사에게 강조되는 행위는 배려의무의 진지한 고찰"이라고 강조했다.

석 교수는 "비키 주치의의 과도한 설명행위에는 법익교량상 배려의무 위반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고, 사망시까지 평온의 파괴·희망의 상실·죽음의 공포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위자할 책임이 있다"며 "환자의 모를 권리를 의사의 배려의무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의료현실에서 의사에게 요구되는 알권리와 모를 권리의 조화, 설명의무와 배려의무의 조화 노력은 천사의 외줄타기와 같은 것"이라며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라는 데 무게를 실었다.

김천수 대한의료법학회장은 "불설명이익이 더 크다는 것이 명백한 경우인 상황에서  환자의 명시적 의사와 함께 제3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전제아래 보호자의 적법한 동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익교량의 주체는 가장 많은 정보를 갖고 있는 의사가 판단해야 하지 않냐"는 견해를 밝혔다.

학회 참석자는 "법원은 의사의 설명의무에 대한 책임을 과도하게 묻고 있다"면서 "환자의 모를 권리를 법이론적으로 확립한다면 과도한 설명의무 위반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될수도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른 참석자는 "현행법에서는 포괄적인 위임에 대해 의사의 설명의무를 면제해 주지 않고 있다"면서 "설명의무 여부는 물론 정도와 대상에 대해서도 명시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의료법학회는 법조계를 중심으로 의학계·병원계 인사들이 참여, 1994년 출범한 학술연구 단체.

의료분쟁·의료제도를 비롯한 의료관련 법현상을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월례학술발표회·세미나·워크숍·학술대회·학술지 <의료법학> 발간 등을 통해 의료법학 발전과 의료환경 개선에 공헌하고 있다.

문의(☎02-534-9200 이동필 총무이사·법무법인 의성 대표변호사).

▲ 의료법학회 월례학술발표회가 16일 성균관대 법학관에서 열렸다. 의료법학회는 법조계를 중심으로 의학계·병원계 인사들이 참여, 1994년 출범한 학술연구 단체다.ⓒ의협신문 송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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