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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HPV 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 도입에 부쳐
청진기 HPV 백신의 국가필수예방접종 도입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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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7.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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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전문의 소아청소년과)

HPV 백신이 국가필수예방접종(NIP)에 포함되면서 새삼 백신 안전성에 관한 보도가 늘고 있다. HPV 백신 안전성 논쟁은 몇 년 전 일본에서 시작됐다.

▲ 최영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 사노피 파스퇴르 메디컬 어드바이저)

당시 일본 NIP에 도입된 HPV 백신을 접종 받은 890만 명 중 전신 위약감·무력감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176명을 언론에서 놓치지 않았고 백신의 위해성을 지적하는 전국적인 성토가 이어졌다. 이러한 압박에 못 이겨 2013년 6월 일본 후생성은 HPV 백신 접종 프로모션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백신의 이상 반응을 평가하는 입장에서 볼 때 176명의 환자들은 아직 백신과의 인과관계가 평가되지 않은 잠정적 사례군이라 할 수 있다. 이 확률은 접종 10만 명 당 1.9, 즉 0.0019%의 '이상반응 보고율'로서 백신의 잠재적 위해성을 시사하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백신 전문가들은 백신 접종과 무관한, 평상시에도 1% 내외의 유병률을 보이는 만성 피로 증후군, 또는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신체화 장애(somatization)' 사례들로 보고 있다.

2000년대 중반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수행된 대규모 역학연구에서는 HPV 백신을 접종 받은 약 100만명의 여성들을 접종 180일 후까지 전향적으로 관찰했고 자가면역질환이나 신경학적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 여성 20만명을 대상으로 한 HPV 백신 예방접종 관찰연구에 따르면 접종 당일의 실신과 2주 이내의 피부감염 외에는 만성 신경병증 또는 다른 만성질환의 발생위험 증가를 시사하는 이상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평가 결과와는 관계 없이 일본에서의 사례군 보고는 의사들의 백신 접종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2014년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발표 이후 의사 가족들의 HPV 백신 접종률이 크게 낮아졌다.

어떤 의사들은 HPV 백신 접종 후 말초신경병증이 발병한 44명의 소녀들에 대한 사례군 연구를 통해 병과 HPV 백신과의 연관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학계에서의 선정적인 소식들은 전세계 안티백신주의자들의 환호를 받기도 했다.

어떤 사건이 다른 사건보다 먼저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흔히 보는 오류다. HPV 백신과 신경학적 이상반응 간의 인과관계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적 선후관계뿐만 아니라 반사실적(counterfactual)상황에서의 인과성 확인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사람이 만성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신경병증(CIDP)을 앓게 됐고 그 원인이 HPV 백신 접종 때문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것을 증명하려면 반사실(Counterfactual)로써 동일한 환자가 같은 시기에 HPV 백신 접종을 받지 않았을 경우 CIDP가 생기지 않는지 관측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최대한의 근사치로 임상시험과 역학적 검정을 통해 반사실적 상태를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깝게 추론하고 있다.

인체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통해 접종군과 위약 또는 활성 대조군의 안전성 데이터를 비교 평가하며, 허가가 이뤄지면 시판 후 조사를 통해 현실에서의 인구집단에서 나타날 수 있는 드문 이상반응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안전성 평가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십 수년간 누적되고 공개돼 있는 임상 데이터들은 HPV 백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에서 경험했듯이 새로운 백신이 도입되면 안전성을 의심하는 괴담이 한동안 횡행할 것으로 예상한다.

사실관계가 왜곡된 잘못된 위험 정보가 넘쳐나고 이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요즘, 우리가 사는 이곳이 게르트 기거렌처가 말하는 '위험 문맹자를 양산하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진료실에서의 소통이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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