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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기우'인가 '재앙'인가
의료분쟁조정 자동개시 '기우'인가 '재앙'인가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6.07.0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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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의료계 시각차 극명...정부 "오해 풀자"
의사·환자 신뢰 저하...하위법령 진통 불가피

6월 30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분쟁법 자동개시, 의료계 진전인가 퇴보인가' 정책토론회에서는 자동개시 찬성과 반대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토론회에서는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관계자의 찬성 입장도 있었지만, 방어진료와 중환자 진료 기피를 우려하는 의료계 대표들의 목소리가 컸다. 보건복지부가 하위법령을 만들 때 각계의 의견수렴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자동개시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큰 가운데,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환자단체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의료계가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이라며 조속히 하위법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의료계는 안정적인 진료가 침해받을 수 있고, 방어진료는 물론 중환자 진료 기피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30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의료분쟁법 자동개시, 의료계 진전인가 퇴보인가' 주제의 정책토론회에서는 자동개시를 통해 우려되고 있는 중환자 진료 및 응급실 환자 기피, 그리고 의료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자와 의료진 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찾아보려는 노력이 시도됐다.

지난 5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자동개시토록 하고 있다.

이희석 상임조정위원(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최근 SNS를 통해 신해철법 괴담이 돌고 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며 "자동개시와 관련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자동개시는 한정된 부분에 대해서만 시행되는 것이고, 조정절차 자동개시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는 현행과 마찬가지로 피신청인이 조정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중재원에 통보해야 절차가 개시된다"고 설명했다.

또 "자동개시제도로 인해 방어 진료가 늘어나고, 외과·산부인과 등에 대한 기피가 심화될 것이라고 의료계가 주장하고 있는데, 현재 의료계에서는 이를 이유로 방어진료를 하고 있지는 않다"며 "의료계의 우려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오히려 "산부인과는 이용률이 훨씬 높다"며 "일부 진료과목에 대한 기피현상은 조정제도 시행보다는 진료수가 등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위원은 "의료분쟁조정제도는 자율적 분쟁해결 절차이며, 형사처벌 문제와는 무관하고, 따라서 조정이 성립되면 형사처벌 문제와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필요한 자료는 서면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부족하다고 판단한 경우 현장조사를 하는데, 이는 단순히 조사절차이지 수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조사한 내용은 일체 비공개되며, 의료기관 임직원도 대리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출석 등으로 진료가 위축되거나 방해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도 "일부에서 '중환자 기피법'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는데, 법 때문에 젊은 의사들이 중환자 진료를 기피한다는 것은 환자를 대상으로 협박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의료분쟁조정법안은 자동개시 대상범위를 제외하고는 의료계의 주장이 대부분 반영됐다"며 "자동개시 해당 부분만 의료계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안 대표는 "환자가 사망했거나 중상해를 입었다고 해서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의 조정신청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다소 성급한 추측이며, 감정부에 의료인이 2명, 비의료인이 3명으로 구성돼 있어 감정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환자단체 대표의 이같은 주장과는 달리 의료계를 대표해 참석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졌다.

먼저 이우용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의료분쟁조정법령 대응 TF 위원장)는 "조정절차의 강제개시는 자율분쟁해결의 본질적인 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조정의사가 없는 경우에도 조정절차에 참여하도록 강제한다고 해서 조정성립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또 "환자측이 신청한 모든 조정절차에 의료인이 참여해야 함으로써 진료·수술 등의 중단·차질이 발생하며, 조정절차를 강제화할 경우 의료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높은 수술 분야인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 등의 경우 조정절차 진행에 대비해 방어진료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의무이사는 "의료계가 우려하는 부분은 의료사고감정단의 구성과 권한,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 범위 및 재원 마련, 손해배상대불금의 성격, 감정서의 원용 문제 등 불합리한 조항으로 인한 의료인의 상대적 불평등 부분"이라며 "이러한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고는 아무리 강제화한다 하더라도 의료계의 적극적 협조를 통한 진정한 조정과 중재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향후 진료행위가 위축되지 않도록 조정절차 자동개시 범위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고, 조정절차 강제화에 따른 이의신청권 부여 범위를 넒힐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필수 대한병원협회 법제이사도 "조정절차 자동개시 제도는 안정적 진료환경 저해는 물론 환자와의 신뢰관계를 저해시켜 의료인의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제도로 전락하게 될 위험성이 매우 큰 제도로 현행 법률은 재검토 돼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홍상범 대한중환자의학회 총무이사(서울아산병원)는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의사들이 환자가 사망했다는 이유로 중재원에 출석하고 진료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다보면 다른 환자를 진료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무조건 자동개시를 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과실이 없는 조정중재신청을 각하해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강화하는 방안, 조정중재원의 전문성 강화방안, 불가항력적인 사고마저 '의료행위의 결과가 안좋으면 곧 의료사고다'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이 전환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제도 악용을 방지할 수 있는 견제책 마련, 낮은 조정중재 개시율에 대한 정확한 원인 분석 및 추가 대안 마련을 학회 차원에서 하위법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적극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명제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응급의학과는 직격탄을 맞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자동개시 등으로 인해 젊은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응급의학과와 중환자실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최소한도로 방어진료를 하자는 얘기들도 의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어 진료의 위축이 사실화되고 있다"며 "이같은 현상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처럼 자동개시를 놓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정영훈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의료계와 환자가 왜 대립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오해가 있는 부분을 풀다보면 퇴보가 아닌 진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정부는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있는데, 자동개시에 해당하는 사항들(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면, 1급장애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중에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앞으로 토론회 등을 통해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노력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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