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전달체계 개선과 건강보험 보상체계 개편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건강보험 보상체계 개편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6.06.07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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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석(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작년 메르스 사태의 출발은 우리나라의 부실한 방역체계 때문이었지만, 메르스 사태의 확산은 붕괴된 의료전달체계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 이진석(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환자의 자유방임적인 의료기관 선택, 열악한 중소형 병원의 급증, 매일 북새통인 대형병원과 응급실 과밀화, 무분별한 환자 문병 문화 등이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킨 원인이었다.

메르스 사태 이후, 국가방역체계와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몇몇의 대책도 시행되었다. 그러나 과연 올해 다시 메르스 환자가 유입된다면, 작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될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많은 전문가들은 올해 다시 메르스 환자가 유입되면, 작년과 유사한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한다. 물론 이런 전망이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국가방역체계와 의료전달체계 개편 작업이 완료된 것이 아니라, 한참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개편 방향이 의료계와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1. 의료전달체계 확립의 원칙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가 일이년 사이에 근본적으로 개편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을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개선에도 오랜 기간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전달체계 확립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이에 근거해서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

의료전달체계의 개념은 다양하게 제시될 수 있지만, 최근에는 ‘동네의원은 동네의원답게 제 역할을 하고, 병원은 병원답게 제 역할을 하면서, 동네의원과 병원이 상호 연계·협력하여 국민이 필요로 하는 효과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체계’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동네의원과 병원의 역할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동네의원: 지역사회에서 흔한 질환을 치료하고, 지역 주민의 건강과 질병을 관리하는 일차의료기관의 역할 수행

◦ 중소병원: 지역사회의 대다수 입원수요를 해결하는 지역사회병원 혹은 특정 분야의 전문병원의 역할 수행

◦ 상급병원(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입원진료와 보건의료인력 교육, 연구 개발의 역할 수행
이 같은 역할 수행과 기관 간의 연계와 협력을 위해서는 보상체계와 관련 제도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의료전달체계 확립 과정에서 이해당사자 중 일방의 이익과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익과 피해의 균형을 도모하는 것도 중요한 원칙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2.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뒷받침하는 건강보험 보상체계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해서는 여러 측면의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정책 수단은 건강보험 보상체계 개편이다. 현행의 건강보험 보상체계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가로막는 심각한 장애요인이다.

전반적인 저수가 구조는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박리다매식 진료와 불필요한 비급여 진료를 강제하여 양질의 안전하고 친절한 진료를 저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의사와 의료기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이런 국민의 불신은 동네의원에 집중됨으로써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전반적인 저수가 구조의 폐해와 더불어 서비스 유형별 수가 불균형도 심각한 문제이다. 동네의원의 진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박한 반면, 병원의 진료 경쟁력에 관련된 서비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후하게 보상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수가체계가 ‘원가 기준 보상’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2016년 기준으로 동네의원의 외래 초진 진찰료는 14,410원이지만, 병원, 종합병원으로 갈수록 진찰료는 커지면서,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초진 진찰료는 18,160원에 이르고 있다. 덩치가 큰 병원일수록 서비스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이를 보전해 준다는 원칙이 적용된 결과이다.

그러나 미국이나 대만은 동네의원의 외래 진찰료가 병원보다 더 높게 책정되어 있고, 일본은 동네의원과 병원의 수준이 동일하다. 동네의원의 본질적 역할은 외래진료이고, 병원의 본질적 역할은 입원진료이기 때문에 자신의 본질적 역할에 충실한 의료기관에게 더 적극적인 보상을 해 주는 것이다.

지금껏 정부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을 위한 가장 강력한 정책 수단을 활용하지 않았고, 오히려 의료전달체계 확립에 역행하도록 방치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올 1월에 출범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에서 ‘종별 기능과 진료내용의 정합성에 따라 종별 가산율을 조정하는 방안’에 대한 원칙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원칙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해서, 이런 방향으로의 개선이 쉽사리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하고, 의료계도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

3. 상급병원 본연의 역할 수행을 위한 건강보험 보상 및 재정지원체계

대형병원의 경증환자 진료가 큰 문제이지만, 이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렵다. 대형병원도 박리다매식 진료를 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구조적 조건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경증환자 진료에 대해서는 강한 패널티를 주어야 하지만, 상급병원 본연의 역할에 부응하는 진료에 대해서는 과감한 보상을 해야 한다.

작년 말에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과제의 하나로 제안한 ‘의료전달체계 가산율 제도’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외래진료를 최소화하고 입원진료 위주의 기능을 수행하는 병원에 대해서는 외래진료 감소에 따른 손실을 보상할 정도로 입원수가를 가산해 주자는 제안이다.

이런 의료전달체계 가산율이 제도화된다면, 동네의원과 병원의 역할 정립, 그리고 협력적인 관계 설정도 가능할 것이다.

보건의료인력의 교육훈련은 향후 국가보건의료체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공공성이 매우 높은 활동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영국, 캐나다, 일본 등은 전공의 수련비용을 정부 혹은 공보험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전공의 수련비용 뿐 아니라 지도전문의 인건비와 교육수련 시설비용까지도 지원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전공의 수련비용 지원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부의 가시적인 움직임은 없다.

모든 진료과목의 전공의 수련비용에 대한 지원이 어렵다면, 필수의료 분야, 그리고 일차의료와 관련성이 큰 진료과목부터 전공의 수련비용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4. 의뢰수가 신설은 의료전달체계 확립의 지렛대

얼마 전에 시작된 의뢰회송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공존하고 있다. 우려의 주된 근거는 1만원 수준에 불과한 의뢰수가에 대한 실망감, 3만원의 회송수가를 벌기 위해서 상급병원이 동네의원으로 환자를 돌려보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실제로 의뢰수가 신설과 회송수가 인상 자체가 상급병원을 향한 경증환자의 흐름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뢰수가가 급여화되면, 동네의원에서 상급병원으로 이동하는 환자의 전모가 파악된다.

이것은 향후 환자의 의료이용 흐름을 관리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것이다. 상급병원으로의 경증환자 유입이 파악되지 않고, 이 때문에 경증환자 유출 관리도 불가능한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의뢰수가가 신설되면,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

의뢰수가 신설은 환자의 의료이용 흐름에 대한 동네의원의 결정 권한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여러 우려와 실망감이 있지만, 의뢰회송 시범사업이 소정의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의료계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5. 마치며

평상시에 잘 돌아가는 체계는 비상시의 문제에도 잘 대응할 수가 있다. 평상시에 엉망인데, 비상시에만 잘 돌아가는 체계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메르스와 같은 국가적 비상 상황에 잘 대응하기 위한 별도의 의료전달체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소에 의료전달체계의 기본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국가적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메르스 사태의 교훈을 잊지 말고, 우리나라 의료전달체계의 기본을 다지는 소중한 기회로 작용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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