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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1:25 (화)
인간 한계 도전 제주울트라마라톤대회 참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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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6.06.0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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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원장, 울트라 마라톤 100km 첫 출전..."완주 목표 천천히 달렸다"
'고려의대 달리는 의사들' 단체전 5명 모두 12시간 내 안착 '준우승'

▲ 김필수 본플러스병원장
고려의대 89학번 절친이자 올해부터 '한국달리는의사들' 회장을 맡은 조대연 인제의대 교수(인제대 상계백병원 비뇨기과)와 함께 제주공항에 입성했다.

제주공항엔 울트라맨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보였다. 78학번인 김학윤 원정대장(서울시 광진구·김학윤정형외과의원)이 쓴 200km 완주기가 떠올라 현수막을 보고도 울컥했다. 대회 조직위원회에 등록하고, 단체전 선수단 배번과 기념품을 받았다.

전 세계 15개 국가에서 출전한 선수단은 표정부터 무시무시했다. 마치 전쟁터에 나서는 전사 같은 시커먼 얼굴에 눈빛만 반짝거렸다.

대회준비위원장은 "완주에 의미가 있다"며 편하게 뛰란다.

그러고 싶었지만 편할 수가 없는 것이 필자(김필수·분당 본플러스병원장)는 울트라 100km 첫 출전인데다 '고대의대 달리는 의사들'은 지난 대회 우승팀으로 디펜딩 챔피언으로서 최소한 3위라도 입상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어깨를 무겁게 했다.

돔베고기·갈치 등 제주 토속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대회 출발대 바로 앞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고려의대 달리는 의사들 선수단. 임용찬(82)·남현우(81) 동문은 단체전 선수로 출전하지 못했지만 제주 원정대 준우승을 뒷바라지 했다.

울트라대회 3주 전부터 일주일에 12시간씩 피나는 훈련을 하는 동안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는 금욕생활을 해야 했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지만, 눈이 떠진 건 새벽 4시. 배번과 벨트를 매고, 복장을 갖춘 후 24시간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었다.

200km 주자들도 옆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속으로 "200km는 죽어도 못한다. 100km도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라고 혼잣말을 했다. 긴장을 풀어 보려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울트라 초보자들은 흥분해서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면 후반에 무너진다"고 귀가 아프도록 들은 터라 자제해야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했다.

현수막 앞에서 남현우 동문(서울시 영등포구·삼성마취통증의학과의원)을 포함해 6명의 전사는 소리를 지르며 결의를 다졌다. 81학번인 남 동문은 5인 출전 선수 한 자리를 친동생 남혁우 동문(90학번·서울시 중랑구·남정형외과의원)에게 양보한 채 뒷받라지를 자청했다. 오늘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악수와 포옹을 했다.

드디어 새벽 6시. 아름다운 제주 탑골공원을 출발했다. "헐! 다들 왜 이리 빠르지?" 거의 5분 페이스로 마구 달린다. 소변을 해결하기 위해 주로에서 이탈했다가 복귀하니 뒤로 많이 밀렸다. 맘 편히 뛰자는 생각에 가다 보니 '고려의대 달리는 의사들' 에이스인 절친 조대연 동문이 날 부른다. 용변보다 늦었단다.

오손도손 함께 달리기를 하다 김학윤 원정대장(78학번·서울시 광진구·김학윤정형외과의원)을 만났다.

셋이서 동영상을 찍고, 웃으며 서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조대연 동문·필자·김학윤 원정대장 순으로 찢어졌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했다는데 조금이라도 시간을 아껴야하기에 페이스 조절을 도울 여유가 없다. 단체전만 아니어도 오손도손 같이가면 좋으련만…. 이미 또 한 명의 에이스인 서서승우 고려의대 교수(82학번·고대 구로병원 정형외과)는 일찌감치 사라졌고, 막내 남혁우 동문은 부상이 심해 뒤로 쳐졌다.

10km에서 김학윤 원장대장을 앞질렀지만, 후반에 따라 잡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울트라 마라톤 주자들은 평소 각자 훈련을 한다. 연습을 할 때도 같이 잘 안 달린다. 누구나 각자의 페이스가 있기에 같이 갈 경우 누군가는 손해를 보거나, 누군가는 힘이 든다.

▲ 제주도 울트라 100km 코스. 한 바퀴를 다 돌면 200km 코스다.
날씨가 좋다. 8시부터 보슬비가 살랑살랑 내린다. 지난 4년간 악천후 속에 경기를 펼쳤다는데 오늘이 가장 좋은 날씨라고 한다.

혹독한 추위와 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고민하며 훈련했던 기억이 떠 오른다. 더위를 이기기 위해 땀복을 두껍게 입고 2∼3시간 러닝머신 위를 달렸고, 불교울트라대회 때는 폭우에 추위를 이기면 달렸다.

20km 고지를 향해 아름다운 제주 서해안 도로를 뛴다. 제주를 자주 왔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해안을 달려본 적이 없다. 날씨·경치·몸 상태 모두 최고라는 느낌이 든다.

필자는 평소 달리기를 즐기기 위해 페이스 시계를 잘 보지 않는다. 그저 느낌으로 속도를 조절한다.

초보자의 흥분을 자제하면서 천천히 달렸다. 10km마다 있는 체크 포인트(CP) 마다 수분과 양분을 섭취해야 하므로 마음 편히 편의점도 들렀다.

20km, 30km, 40km. 갈수록 예상보다 CP가 빨리 나타난다. 자원봉사자들의 박수와 함께 텐트가 보인다. 얼마나 느린지 몰라도 일단 기분이 좋다. 벌써 40km라니, 조금만 가면 반이다.

대회 공식 카메라맨이 사진기를 들이댄다. 포즈를 취해 본다. 마치 축지법을 쓰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 울트라 마라톤대회 처녀 출전한 김필수 본플러스병원장은 11시간 56분의 기록으로 100km 출전 선수 중 16위를 차지했다.
기운은 있지만 흥분해서 속도를 내면 안 된다고 자숙해 본다. 43km 지점에서 편의점 들어가 작은 음료를 하나 마시고, 작은 것 두 개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5km, 8km 시점에 수분을 보충했다.

에너지가 아직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50km. 피니시 아치를 통과하자 남현우 동문이 기다린다. 날 보더니 깜짝 놀라며 "야, 너 엄청 빨라, 아니?" 한다.

55km는 평소처럼 6시간 30분 정도로 달리고, 식사 후엔 1∼2시간 편하게 걷다 뛰다 해서 8시간, 도합 14시간 정도에 골인할 계획이었다.

천천히 뛰며 편의점도 자주 들러 시간이 오래 걸렸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웬걸 제법 빠르다. 그동안 운동을 많이 해서 체력이 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고려의대 달리는 의사들 출전 선수 5명의 뒷바라지를 자청한 남현우 동문과 사진도 한 장 못 찍고 차귀도로 향했다.

발가락에 통증이 시작됐다. 약간 두꺼운 양말을 신었는데 신발에 꽉 끼는 것 같다. 엄지발가락이 신발을 뚫고 나올 것만 같다. 너무 아파 엉엉 울고 싶다.

53km 지점에서 조대연 교수에게 밥 먹었냐고 전화를 했다. 절친은  "배가 안 고파 계속 간다"고 한다.

발가락이 너무 아파 차라리 맨발로 달려야겠다는 생각에 55km 지점에 있는 차귀도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지난해 우승팀 아니냐며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재빨리 찌개를 시키고 양말을 벗었다. 맨발에 다시 신발을 묶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수저를 내려놓고 길을 나섰다.

식사도 했고 마침 오르막이라 걸었다. 파워 워킹으로 걷다 보니 금방 추워진다. 바람막이를 꺼냈다. 행사를 진행하는 차가 쑥 지나간다. 정말 잘 기획한 대회란 생각이 든다. 준비한 손길에 감사함을 느끼며 또 걷는다.

60km 지점에 도착하자 커피를 타준다. 시간을 물어보니 오후 1시란다. 새벽 6시에 출발했으니 7시간이 흘렀다. 나머지 40km는 8시간이니 걸어도 완주는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100km 울트라대회에 참가한 입장에서 완주하는 게 목표였고, 기록 싸움을 해야 하는 선두 3명은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김학윤 원장대장이 부상으로 필자를 추월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발에 힘이 들어갔다.

후반부는 역시 힘들다. 가도 가도 쉼터는 나오지 않았다. 편의점도 없고, 여기저기 걷는 모습이 보였다. 겨우겨우 70km CP에 도착하니 자원봉사자들이 응원의 박수로 맞아준다. 초코파이와 오렌지로 요기하고 80km 지점으로 눈길을 돌렸다.

왼편으로 아름다운 삼방산이 보인다. 삼방산이 보이면 75km라고 들었다. 

갑자기 제주도 환자가 생각났다. 필자에게 무릎 수술을 받은 이 환자는 삼방 오름을 한다고 했다. 참 묘하게 생긴 삼방산은 바다와 어우러져 예쁘다. 하지만 편의점에 갈 시간은 있으면서 셀카 사진 한 장 찍을 시간이 없다. 그 아름다운 뷰 포인트에서 김학윤 원정대장은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부럽다.

편의점을 나오면서 길이 헷갈렸다. 일면식이 없는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200km 주자인데 77km 정도라고 한다. 서승우 교수와 마라톤을 자주 한단다. 마라톤을 하는 이들은 한 사람 건너 다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삼방산을 끼고 돌아 80km CP에 도달했다. 가장 힘들다는 80∼90km에 들어서니 경치도 별로 없고 귤 농장만 보인다. 앞에도 뒤에도 주자가 없다.

88km 지점에서 남현우 동문이 사진을 한 컷 찍어 준다. "이대로만 가면 우리가 우승"이라며 "엄청난 기록이 나올 것"이라고 응원한다.

90km 지점에 도착하니 "다 왔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오후 4시 후반. 막판 힘을 내면 12시간이내에 완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죽을 힘을 냈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눈물이 돌았다. 막판 99km 지점에서 순식간에 두 명의 주자를 추월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막판에 추월한 2명의 주자는 단체 1위를 차지한 제주러너스팀의 일원. '고려의대 달리는 의사들'과는 최대 라이벌인 셈이다.

드디어 결승점인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이 보인다. 오르막이지만 이상하게 괴력이 생겼다. 100m를 앞두고 옷매무새와 배번을 정리하는 여유도 부렸다.

칩을 반납하고 기록증을 받아보니 11시간 56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선두인 조대연 교수는 10시간 40분, 서승우 교수는 11시간 3분에 들어왔다고 한다.

두 대원만 무사히 완주한다면 우리에게 우승이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남현우 동문이 빌린 차를 타고 응원전에 나섰다.

남혁우 동문은 햄스트링 파열로 부상이 심했지만 장난스러운 말과 행동을 보니 충분히 완주할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체전 2등을 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10시간대에 3명의 기록을 가진 팀도 있었지만,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이 결격, 입상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시 한번 단체전은 전 대원의 완주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시상대로 향하는 마음은 너무 행복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태극기 휘날리는 파란 제주 하늘은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고대의대 달리는 의사들 파이팅!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합니다."

▲ 고려의대 달리는 의사들은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대회 100km 단체전에 출전, 준우승을 차지했다. 왼쪽부터 남혁우(90)·조대연(89)·김학윤(78)·김필수(89)·서승우(82)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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