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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반복되는 독감백신 반품분쟁 해결책은?

매년 반복되는 독감백신 반품분쟁 해결책은?

  • 최승원 기자 choisw@kma.org
  • 승인 2016.06.0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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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작성하고 관련 조항 명시해야
녹십자만 반품요구 수용입장 밝혀 주목

 
경기도 신도시에서 개원 중인 K원장은 "순간 손이 벌벌 떨렸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마치 말도 안되는 떼를 쓰고 있다는 듯이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못해주겠으니 알아서 하라"는 말만 남기고 돌아갔다.

K원장은 22년간 거래했던 A제약사의 모 지역 팀장과 담당자의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을 보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가 다르더라"며 혀를 찼다.

지난해 9월만해도 A제약사의 B담장자는 K원장을 찾아와 독감백신 주문을 부탁했다. K원장이 지난 2012년부터 A제약사 독감백신만을 주문한 이유는 다음해 6월 유통기간이 넘어버린 독감백신을 흔쾌히 반품처리해줬기 때문이었다. 남은 백신을 모두 반품처리해주는 A제약사가 고마웠고 그렇게 시작된 독감백신 거래만 5년째였다.

올해 6월 역시 유통기간이 끝나면서 남은 800도즈의 반품을 요청했는데 뜻밖에 대답에 돌아왔다. 담당직원과 함께 병원에 온 팀장이 제약사에 반품부담을 모두 떠맡기는게 어디 있느냐며 반품을 거절했다.

5년 내내 반품을 해줬던 터라 독감백신을 주문할 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됐지만 괘씸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경기도 신도시에서 역시 개원 중인 P원장 역시 접종하고 남은 백신 800도즈를 반품처리하려다 애를 먹었다. 지난해보다 2배 가량 많아진 반품량에 제약사가 곤란하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늘 반품처리를 해주던 곳이라 그러려니하면서 반품처리와 관련해 별다른 근거를 만들지 않았던 것이 후회됐다. 그래도 담당영업사원이 며칠을 뛰어다닌 끝에 인근 3개 지점에서 200도즈씩을 처리해주기로 하면서 반품처리를 겨우 할 수 있었다.

독감백신 반품 시즌...지옥문 열렸다

좋았던 독감접종 시즌이 끝나면서 6월 독감백신 반품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다. 독감백신 반품의 계절을 맞아 개원가 여기저기서 반품을 해달라는 요구와 못해준다는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독감백신 반품계절인 6월은 제약사 독감백신 담당자에게는 고난의 계절이다. B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은 "6월을 영업사원들이 '지옥문이 열린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독감백신 반품 관련 다툼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약사 영업사원 입장에서도 계속 거래해야 하는 담당 병의원 원장과 반품문제로 티격태격해야 하는 일이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매해 6월 이 지옥문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C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은 회사의 모호한 태도와 지점장마다, 그때그때마다 다른 반품처리 기준 탓이라고 말했다. 9월 독감백신 주문 시기가 되면 마치 남은 백신을 모두 반품처리해줄 듯 영업사원들을 독려해놓고 막상 반품요청이 들어오면 나몰라라하는 지점장이나 회사가 적지않다는 것. C제약사의 한 영업사원은 매년 6월이 다가오면 "회사의 이런 태도 탓에 자비로 반품을 책임져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고 한다.

한 해 300만도즈 폐기 과잉공급 탓 지적

독감백신 반품관련 다툼이 최근 커진 이유는 과잉공급 탓이다. 제약사별로 과잉공급된 백신시장에서 살아남으려다보니 일단 독감백신 접종시즌에 반품은 고려하지 않고 병의원에 백신을 넣기에만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올 시즌(2015~2016년) 독감백신 공급 규모는 2050만도즈로 지난 시즌(2014~2015년) 1863만도즈보다 200만여도즈가 더 출시됐다. 2008~2009년 신종플루 유행으로 독감백신 수요가 크게 늘면서 제약사들이 너도나도 생산에 뛰어든 탓에 2011~2012년 시즌에는 생산량 2000만도즈를 돌파했다.

하지만 독감백신 수요는 대략 1600만도즈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한해 최대 400만도즈의 독감백신이 폐기되는 배경이다. 점점 한해 폐기되는 독감백신 물량이 많아지면서 제약사가 떠안은 반품량도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교적 2010년 이후 독감백신 시장에 뛰어든 후발주자들이 계획된 판매량을 채우지 못하면서 반품량이 불어나자 이를 감당못한 지점들이 반품처리를 거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반품거부로 개원가의 원성을 사고 있는 제약사들이 주로 뒤늦게 독감백신 시장에 뛰어든 업체인 이유다.

반품처리 규정 계약서에 명시해야 보호

매해 반복되는 독감백신 반품거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잉공급을 줄여야 하지만 동시에 병의원은 백신 주문 전에 반품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K원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병의원은 반품처리와 관련한 규정을 계약서에 담지 않거나 심지어 계약서없이 주문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경권 의료전문변호사(의료법인 LK파트너스)는 "반품처리와 관련해 분쟁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반드시 주문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서에 반품관련 특약을 명시"하도록 권고했다. 반품관련 규정을 계약서에 넣지 않으면 자칫 "반품처리 요구가 효력을 잃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제약사별로 반품처리 입장을 먼저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독감백신을 공급하는 제약사 가운데 회사 차원에서 반품처리를 수용하는 곳은 '녹십자'가 유일하다.

녹십자는 "회사방침에 따라 유통기간을 넘긴 독감백신은 모두 반품처리해주고 있다"고 5월27일 밝혔다. 나머지 제약사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대체로 지점장이나 팀장의 판단에 반품처리 여부를 맡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D제약사측 관계자는 "반품량이 지나치게 많거나 자사의 처방의약품이 거의 없는 거래처의 반품요구는 거절하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해당 지점 책임자의 인식이 낮거나 그해 그 지점 독감백신 판매 혹은 수금성적이 시원치 않을 때도 반품처리가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반품처리로 골치를 썩이고 싶지 않다면 미리 계약서에 관련 조항을 명시해 분쟁소지를 없애는 것이 확실한 대비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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