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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 '여혐'이 전부인가?
강남역 살인, '여혐'이 전부인가?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05.24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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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 가톨릭의대 교수(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엽 가톨릭의대 교수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최근 강남역 인근 남녀 공용 화장실에서 젊은 여성에 대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이 소위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여성 차별 사건으로 이를 예방하기 위해 서울시와 서초구에서 공용화장실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할 예정이며, 정치인들은 여성 증오범죄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붙잡힌 용의자가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을 가진 조현병 환자로 밝혀졌다. 살인에 대한 원인이 여혐인지 정신질환 때문인지 논란이 있는 가운데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런데 관련 보도 중 주목됐던 부분은 용의자가 8년전 처음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은 후, 5년전과 3년전 그리고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6개월간 입원치료를 받았고 퇴원 당시 주치의로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재발에 대한 경고를 받았으나, 약 2개월전부터 치료를 임의로 중단했다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조현병을 포함해 대다수의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적절한 치료 하에 큰 불편 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으나, 치료를 받지 않으면 재발률이 급격히 높아지고 재발하면 할수록 더 재발이 잦아지고 뇌기능에 대한 악영향도 커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병식 부족으로 이 사건의 용의자처럼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질환과 달리 정신보건법에 의거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필요성을 인정하고 보호의무자의 동의가 있으면 본인 의사에 반해 6개월까지 입원치료가 가능하도록 돼있다. 제도의 악용 및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의무자 동의가 1인에서 2인 동의로 강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영화 <날 보러와요> 상영 이후 인권강화를 위한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19대 국회 마지막 날 정신보건법이 개정됐다. 주요 내용은 '강제입원'을 까다롭게 만들고, 최대 입원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는 법안이다.

비자발적 입원을 감소시키고 자발입원을 높이자는 의도인데, 정신보건법 제23조 자의입원 조항은 퇴원요구를 할 경우 '지체 없이 퇴원'시키도록 명시돼 있다. 즉, 자발적으로 입원한 우울증환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퇴원을 요청해도 이를 거부하지 못하고 퇴원시켜야 한다는 제한이 존재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부동의 OECD 자살률 1위 국가인데, 이런 현실을 잘 반영해 정신보건법이 개정됐는지 우려된다. 또한, 정신과적 치료효과를 판정하기 위해 적어도 2~3개월의 기간이 필요한 경우가 많은데, 증상이 심하거나 단일 치료에 효과가 부족해 여러 치료방법을 시도해야 하는 환자에게 3개월은 충분치 않을 수 있다. 개정법안이 충분한 논의 및 대책 마련 없이 단순히 개정을 위한 개정이 이뤄졌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정신건강전문가와 환자 가족들의 많은 우려에도 파급 효과에 대한 신중한 논의 없이 법안이 졸속으로 통과된 것은 인기에 영합하는 '한건주의'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1960년부터 2008년도까지 조현병과 관련된 살인에 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초발 조현병에서 1000명 중 1.59명의 살인사건을 일으킬 위험이 치료 후에는 1000명 중 0.11명으로 감소됐다. 비단 범죄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과 미래를 위해 치료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에 무리가 없을 것이다.

소위 '정신질환 자들에 의한 묻지마 범행'에 대한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범행대상은 주로 가까운 사람들이다. 2년간 정신병과 관련된 살인 및 살인미수 벨기에 연구에서, 조현병과 망상장애를 가진 집단은 다른 집단과 달리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대상으로 범행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됐다.

소중한 생명을 잃고 누군가는 평생 살인자로 살아야 되는 불행한 일을 방지할 수 없는 것인가? 물론 인권과 자기결정권도 존중돼야 하지만, 치료를 거부하는 가족이 망가져가는 것을 지켜만 보고, 문제행동으로 고통 받으며 위협을 느낄 수 있는 보호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든다. 환자의 인권 보호도 중요하지만, 판단능력의 제한으로 치료 받지 못 하고 행려자·범죄자로 전락될 환자들의 인권과 고통 받을 환우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졸속 개정된 법안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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