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The Doctor)
의사(The Doctor)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05.19 12:1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황건 인하의대 교수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들을 보러 테이트 브리튼 갤러리에 갔다. 언제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시인 겸 화가를 감상하지 않는다면 안될 것만 같았다.

특히 그가 단테의 <신곡>에 그렸다는 삽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역시 비를 맞고 미술관을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그의 신비한 그림에서 내뿜는 정기를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머리 속에 정령이 가득 찬 듯 멍한 기분으로 이층에 있는 그의 특별전시실을 들러보고 내려오는데 이 조용한 미술관에서 어디선가 소란스러운 말 소리가 들렸다.

시간을 정해 놓고 하는 큐레이터의 작품 설명인 것 같았다. 소리를 따라가니 19세기말 영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방이었으며, 가운데 있는 의자에 여나무명이 앉아있고 뒤에 서있는 사람도 그 정도 숫자였다.

슬그머니 뒤에 서서 보니 앞에 있는 큰 그림이 눈에 익어 반가웠다. 벌써 35년 전 소아과 첫 강의에서 고광욱 교수님이 보여주신, 루크 필즈(Sir Luke Fildes)가 그린 '의사(The doctor, 1894)'였다. 의학전문대학원의 학생 선발 때 면접시험문제로도 등장한 그림이었다. 직접 보니 그림이 크고(세로 1.7m×가로 2.4m) 색조가 매우 어두운 데 놀랐다.

허름한 방의 의자 두 개를 모아 만든 병상에 한 아이가 누워있다. 아픈 아이가 몰아 쉬는 색색대는 숨소리가 들릴 것 같다. 아이의 왼쪽에는 턱을 괴고 앉아 심각하게 아이를 바라보는 정장 차림을 한 의사가 있다. 책상 위의 반쯤 비운 찻잔과 열을 내리려고 쓰는 물그릇을 보니 환자는 밤새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 같다.

아이 아빠의 머리와 천장이 닿을 듯해 보인다. 아이엄마는 엎드려 우는 지 기도하는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오른편에 있는 창에서 방으로 새어 들어오는 새벽의 한 줄기 빛은 이 아이가 죽지 않고 회복될 수 있으리라는 암시로 보였다.

큐레이터가 마침 이 그림에 대해서도 막 설명을 시작하기에 귀 기울여 듣게 됐다.

필즈는 1869년에 창간된 <더 그래픽>지에 정기적으로 그림을 실었는데 필즈의 그림에 나타나는 어두운 사실주의에 강한 인상을 받은 헨리 테이트 경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을 했다. 헨리 테이트가 바로 이 미술관을 개설한 사업가이다.

필즈는 자신의 한 살된 아이를 잃은 개인적인 비극의 사연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데본 지방의 한 어부의 오두막에서 여러 장의 스케치를 했고, 이 오두막을 자신의 화실의 한 구석에 재현했다. 등불을 가지고 여러 번의 실험을 해 환자의 왼쪽에 등불을, 오른편의 창에서 새벽빛이 들어오도록 구도를 잡았다. 어떤 특정한 의사와 닮았다기 보다는 '당시의 의사상'을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To put on record the status of the doctor of our time', rather than to record the likeness of any one individual, The Times 17 March 1891). 자기 딸의 머리, 아들의 팔을 모델 삼아 여러 장의 스케치를 그리고 나서 구도를 완성했다고 한다.

루크 필즈의 그림 '의사'.
설명이 끝나고 일행은 다른 방으로 옮겨간 뒤에도 한참 동안 그림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수련 받을 때 환자 옆에서 밤새우던 생각이 났다. 어느 의사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며, 이 그림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에 더욱 감동을 받는 것 같았다.

어떤 노부부도 다가와서는 한참 그림을 들여다보고 말없이 자리를 옮겼다. 며칠 전 환자면담술을 배우러 일반진료소(General Practice place)에 다녀온 아들이 한 말이 생각났다. "여기 런던의 환자들은 실습 나간 학생들에게 참 잘해줘요". 백이십여 년 전에 그린 그림의 의사처럼 이곳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이 '좋은 의사(Good doctor)'를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환자들은 실습 받는 학생들이 미래에 유능하고 헌신적인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청진기가 사라지고 있는 이 시대에 국민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 의사들의 이미지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려 박사·이태섭 신부 등 훌륭한 의사가 많이들 계시는데도, 주사기를 재사용해 간염을 옮기고 성추행에 연루되는 의사의 부정적인 면만 부각되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의사와 함께 일하는 간호사의 상징은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로부터 시작됐다. 크림전쟁때 종군한 그녀가 밤에 등불을 들고 회진한 것을 헨리 롱펠로우가 시 '산타 필로메나(Santa Filomena)'에서 '등불을 든 여인을 나는 보았네(A lady with a lamp I see)'라고 하자 그 이미지가 굳어졌던 것이다.

미술관을 나오면서 우리시대의 의사를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필즈 같은 화가, 롱펠로우 같은 시인이 그리워졌다. 의사화가, 의사시인, 의사출신 언론인이라면 의사에 대해 한층 좋은 이미지를 마련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rc 2016-05-23 00:12:39
화가 필즈가 본 의사상은 지금 의료업자가 되었고 환자는 상품이 되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