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넛지; 그들을 향한 부드러운 설득
청진기 넛지; 그들을 향한 부드러운 설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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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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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미 원장(경기 고양·일산서울내과의원)
▲ 김금미 원장(경기 고양·일산서울내과의원)

"5분 있으면 광고 마감이에요. 이것으로 갑시다. 반응이 좋아야 할 텐데." 마감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광고를 보낸다.

1999년,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이 강제 실시됐다. 의사들의 반대가 거세지자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신문기사들은 의사가 돈벌이를 위해 편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일방적인 내용뿐이었다. 진실을 전달할 창구를 찾던 의사들은 직접 신문광고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나도 홍보팀에 합류했다. 낮에는 진료를 하고 저녁엔 광고를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많아졌다. "의보재정 파탄, 예상했던 일입니다. 국민들은 의약분업 폐지를 원합니다" 등 의약분업 시작부터 3∼4년간 50여 편의 광고를 만들어 일간지에 실었다.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의사를 이해하도록 설득하고 싶었다.

사람은 평생 가깝고 먼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살아간다.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을 보면, 상대로부터 '네'라는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을 설득과 권유, 복종과 입장정리의 연속 안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우리는 단호한 강요에 거부감을 표하는가 하면, 부드러운 권유에 나도 모르게 설득되기도 한다.

리처드 탈러는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넛지>에서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상대의 행동을 부드럽게 이끄는 힘을 '넛지(Nudge)'라고 했다.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는 강압적인 설득이 아니며,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유연한 개입을 시도해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준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학생들에게 샐러드를 권장하려면 이것을 강제로 식판에 담도록 규정해야 할까? 학교 구내식당에서 샐러드 섭취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학생들 눈에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샐러드를 위치하게 함으로써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샐러드를 담아 먹을 수 있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것이 손쉬운 넛지의 한 예이다.

"나는 담배를 끊을 수가 없어요. 금단 증세도 심하고 이것으로 위로를 많이 받거든요."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담배를 언젠가 끊어야겠다는 생각은 있으신가요? 요즘엔 40대 이후는 거의 담배를 안 피웁니다."

금연의 의사가 있는가 묻는 나의 질문만으로도 환자는 금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환자는 일주일동안 천천히 생각해본 뒤, 결심을 굳히고 다시 나를 방문해 금연치료를 시작한다.

금연 뿐 아니라 환자가 치료방법을 결정해야 할 시점에 서 있을 때 의사는 가장 좋은 방법을 결정할 선택 설계자로서, 부드러운 조언으로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며 편향된 기준을 가진다. 의사에게는 변화를 싫어하는 환자를 매일 설득해 나가야 하는 숙제가 있다.

환자에 대한 설득보다도 의사를 편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국민을 설득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환자가 뜸했던 오후, 진료실 구석에 있던 의약분업 당시 광고 파일을 꺼내보았다. 혹자는 이 광고를 계기로 의사들의 문제에 관해 잘 알게 됐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먹먹했다. 이렇게 직설적이어야 했을까. 당시 절박했고, 국민들께 진실을 알릴 기회가 없었던 의사들로서는 그 방법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의사의 표현이 직설적인 것은 불안하기 때문일 것이다. 눈앞엔 항상 힘들게 넘어야 하는 현안이 있다. 현안을 생각하면 가슴이 조여드는 조급함을 느낀다. 2000년 의약분업 강제시행 이후로 절박하지 않았던 적이 있던가. 아무도 우리를 이해하지 않는 것 같다. 신해철법이 시행되면 큰일인데…. 원격의료가 닥치면 개원가는 문 닫게 될 텐데…. 그럴수록 의사들의 홍보의 방법도 직설화법보다는 국민의 닫힌 마음을 울리는 우회도로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의사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저수가 의료 환경 안에서의 작은 리베이트도, 다양한 검사 권유도 이해가 되지만 국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누군가 우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누군가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국민의 마음을 읽는 것이 그들을 향한 의사들의 진정한 넛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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