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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내려 놓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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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5.0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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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 이주성 원장(이주성비뇨기과의원)

개업초기부터 30년 동안 전립선 비대증으로 내원하시는 97세 할아버지가 계신데 요즘은 계단 오르기를 힘들어하신다. 눈도 잘 안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지만 할아버지의 얼굴은 언제나 평온 그 자체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큰 바위 얼굴'처럼 겸손과 진실함으로 채워져 간다.

오실 때마다 대기실에서 눈을 감고 기도를 하시고 진료실에 와서도 기도를 하신다. 내가 30년 동안 큰 문제없이 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 할아버지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나환자셨다. 전염력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60년대 초에 소록도에서 인천으로 강제 이주됐고 당시 정부에서는 땅을 불하해 주어 정착하게 됐다. 

의료보호 환자로서 정부에서 주는 월 30만원으로 살고 있지만 얼굴에는 항상 평화와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에게도 그 행복감이 전염돼 할아버지의 방문을 기다리게 된다.

내가 재정이 힘든 자선단체를 소개하면 어김없이 할아버지는 그 곳에 후원금을 보내시곤 한다. 무슨 돈이 있어 그렇게 하시는지 모르지만 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할아버지를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때 소록도에 있는 모든 나병환자들에게 정관수술을 시행했기 때문에 자식은 없고 할머니와 두 분이 소꿉장난 하듯 사신다. 몸이 편찮으시면 서로를 걱정해주는 모습이 애절한데 먼저 죽으면 남은 사람이 너무 슬퍼할까봐 죽지 못하겠다고 한다.

40년 전 자신의 문지방에 갖다놓은 갓 태어난 아이를 자식처럼 키웠는데 지금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 곳에 취직해 있다. 수소문해 낳은 부모를 찾아줬지만 할아버지를 진정한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다.

그 아이가 잠시 한국에 들렀을 때 할아버지와 함께 만나봤다. 이미 훌쩍 커버린 서른 살의 처녀는 남을 배려하는 행동거지가 할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누구와 함께 사느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나도 후손들을 위해 할아버지처럼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버릴 것은 버리는 삶, 그것이 여유로움과 평화·기쁨의 원천임을 알게 된다.

우리 병원의 환자 중에는 또 다른 97세의 할아버지가 다니셨는데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이 분도 소록도에서 같은 시기에 인천으로 이주한 분이다.

그 당시 불하받은 땅값이 오르자 그 곳에 건물을 지었다. 집세만 한 달에 수 천만 원씩 받는 알부자이지만 더 소유하려는 집착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할아버지였다.

약도 주는 대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약을 적어가지고 와서 많이 달라며 고집을 부리는 분이다. 의사를 힘들게 하는 환자 중에 한 분이다.

첫 번째 부인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지금의 아내와 재혼 했는데 행복해 보이지 않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랫 동안 중풍으로 얼굴은 더 일그러지고 걸음도 자연스럽지 못했지만 소유에 대한 집착은 여전해 치켜뜬 눈과 꼭 다문 입술, 꽉 쥔 손에서 세상 것에 대한 집념을 엿볼 수 있다. 돌아가신 후 남겨진 많은 재산으로 조카들 사이에 싸움이 길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비움은 채움의 전제조건이 된다.

우리가 욕망과 소유를 내려놓는 이유는 기쁨과 평화와 신령함으로 채우기 위함이다.

동 시대에 태어나 비슷한 환경에서 살면서 한분은 나눠주는 삶으로 자신도 자유하고 이웃에게도 그 기쁨을 나눠주고 있다. 또 다른 분은 내려놓지 못해 무거운 짐을 지며 다른 사람도 힘들게 하고 죽음 후에도 후손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된 것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주 이사 다니는 것에 힘들어하는 아내의 호소에 작은 아파트를 분양받으면서 이 결심은 깨지고 말았다. 그 후에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며 살아왔고 그만큼 마음도 무겁다.

아내와 두 딸이 나의 마음에 동조해준다면 모두 훌훌 털고 살고 싶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생각하지 않으려면 일용할 양식과 옷 한 벌로 만족하게 사는 단순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

자가용도 필요 없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거나 지하철이나 자전거를 타면 되고 택시를 타면 된다. 집도 작은 집을 교외에 전세로 살면서 2년에 한번 살고 싶은 곳으로 이사하면 될 것이다.

비 오는 주말 밤이다. 도시의 네온 속으로 차들은 무언가 얻으려 무섭게 질주하고 나도 그 행렬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소유욕에는 끝도 없고 주말도 없다. 그저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발버둥치는 우리들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당신의 쉴 곳 없네/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 하덕규 <가시나무 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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