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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19 17:45 (화)
스승의 날에
스승의 날에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6.04.26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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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귀 전북대 명예교수

강성귀 전북대 명예교수
오월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오월, 나뭇가지마다 파란 나뭇잎들이 빛나는 햇볕을 받아 반짝이고, 꽃들도 벙긋벙긋 미소를 터뜨리는 계절, 세상 어디를 가도 향기로 가득 할 것 같은 아름다운 시절입니다.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고도 하더군요. 또한 '청소년의 달'로 정해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첫머리에 어린이날이 있고, 다음으로 어버이날이 있으며, 성년의 날이 있고, 스승의 날도 있기 때문이겠지요.

엊그제 제자에게서 스승의 날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는 15일이 스승의 날이로군요. 그래서 스승의 날과 스승에 대해 잠깐 생각에 잠겨보았습니다.

스승의 날은 세종대왕의 탄신일이라고 합니다. 대왕께선 우리 겨레에게 '한글'이라는 큰 선물을 주시어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고 그로부터 깨우침을 얻도록 하셨으니 겨레의 큰 스승이신 거지요.

스승이란 호칭은 옛날 사상적으로 불교가 지배하는 사회였던 고려시대에 사승(師僧)이라 불리던 중을 일컬었다고 합니다. 사승이 스승이 된 것이지요. 오늘날의 스승은 자신을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더하여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넘어 삶의 지혜까지도 가르치는 정신적인 선생님을 이르기도 합니다.

공자님께서도 스승에 대한 정의를 내리신바 있습니다. <논어(論語)> '술이(述而)'편에 보면 "삼인행(三人行)에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이니 택기선자이종지(擇其善者而從之)오, 기불선자이개지(其不善者而改之)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 사람이 행하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느니라. 그 착한 사람을 가려서 따를 것이고, 그 착하지 않은 사람은 고칠지니라." 이 말씀은 곧 세상의 모든 사람이 내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서가 붙습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물음은 배움의 기본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 말 역시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보다 나이가 적거나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물어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를 말합니다.

나아가 자연도 내 스승이 됩니다. 나옹선사(懶翁禪師)의 시에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청산도 창공도 우리에게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칩니다. 흐르는 물은 세월의 덧없음을 일깨워줍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은 조용히 그 어깨를 내리지만 그렇지 않고 버티던 굵은 소나무가지는 꺾이기 쉽습니다. 이런 자연현상은 겸손함을 가르치는가하면 까마귀의 반포(反哺)는 부모를 섬기는 자세를 일깨워 줍니다.

부모님 이야기가 나오니 제 부모님도 제겐 스승이 됩니다. 제 모든 성격이나 습관은 어렸을 때 부모님 슬하에서 형성된 것들이 대부분일 테니까요.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친척·친구, 심지어 내 손자에게 까지도 배우는 일이 없지 않으니 내 주위에는 스승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뿐입니까? 항상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는 돌 하나 까지도 우리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돌 이야기를 하자니 나타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이 생각납니다. 자신의 집 앞에서 보이는 산의 바위 언덕에 새겨진 전설 속 큰 바위 얼굴을 가진 사람을 기다리며 정직하게 자라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겸손하게 가르침을 받아드릴 자세로 살다보면 어느새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스승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저도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면 스승이라 칭할 수 있는 분이 많이 계십니다. 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산 세월이 이십년 가까이 되니 그 동안 머리에 지식을, 마음에 지혜를 불어 넣어주신 스승이 어디 한 두 분이겠습니까?

초등학교 때 발명왕 에디슨처럼 되라고 노력상을 주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만드는데 소질이 있어보였던가 봅니다. 사실 저는 만드는 일 보다는 부수는 일을 더 잘 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중학교 때는 물리과목에 뛰어나다 하시며 만점을 주신 선생님도 계셨고요. 예나 제나 만점을 받는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렸을 때 만난 제 스승님들께서는 제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셨던 것입니다. 고등학교 선생님께서는 의과대학으로 진로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당시에 의사가 된다는 것은 시골소년인 제게는 엄청난 꿈이었는데 말입니다. 스승님께서는 제가 그 꿈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했을 때 제 성격상 내과학을 전공하는 게 좋겠다고 이끌어주신 교수님, 대학교직을 선택했을 때엔 신장학을 연구해보라고 밀어주시고 오늘날 제가 신장학 전문의가 되게 하신 교수님! 저의 성격을 토대로 앞 길을 열어주신 그 분들의 가르침을 받아 오늘날의 제가 있는 것이니까요.

저에게 저녁을 대접하겠다는 제자가 있듯이 저도 가끔은 스승님을 찾아뵙고 대접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물론 핑계이겠지만 제가 고향과 모교를 떠나 객지에 있으니 뜻대로 하기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십여 년 전 부터는 스승의 날이 되면 은사님들께 난초 화분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꽤 많은 수의 화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화분 수가 하나 둘씩 줄어드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그 수가 확 줄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보내드릴 화분 수가 적어지는 것이 저를 슬프게 합니다. 그만큼 세월이 흘러 스승님들께서 저 세상으로 가셨고, 저 역시 칠십 고개를 넘어선지 오래되었으니까요.

요 며칠 맘속으로 스승의 날을 기다리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일 년 만에 제자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할 생각에 맘이 설렙니다. 제 스승님들께서도 그러셨을 텐데요. 살아 계실 때 좀 더 잘 해 드릴 걸 하는 후회가 밀물처럼 가슴으로 파고듭니다. 이제 생각하면 저는 참 옹졸하고 못난 제자였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제가 과연 제 제자들에게 참 스승이 되었을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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