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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예방접종은 음모인가
청진기 예방접종은 음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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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4.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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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전문의 소아청소년과)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오래된 의심에 대해 

지난 3월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자신이 주관하는 필름 페스티벌에서 상영하기로 했던 안티 백신 다큐멘터리 'Vaxxed: From Cover-Up to Catastrophe'의 상영을 취소했다.

▲ 최영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 사노피 파스퇴르 메디컬 어드바이저)

이 영화는 1990년대 말 영국에서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전직 의사 앤드루 웨익필스가 연출한 91분짜리 다큐멘터리로 MMR 백신과 자폐증의 인과관계를 주장하고 있다.

이 영화는 대중을 상대로 한 보건당국과 제약회사의 검은 사기극을 폭로하는 시사 고발물 성격의 다큐멘터리였던 셈이다. 그러나 사실 앤드루 웨익필스는 조작된 연구와 비윤리적 행태로 의사면허를 박탈당했던 인물로 그가 벌였던 선동과 사기극의 전모에 대해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예방접종과 안전성에 대한 논란은 백신이 17세기 말 의학의 패러다임으로 편입된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1800년대 초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 접종(variolation)을 보급한 후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안티 백신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의무적으로 예방접종을 맞도록 하는 법률이 제정된 1800년대 중반에는 대규모 반대 집회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 당시 종교인들이 주도한 안티 백신주의는 백신의 원료가 동물에서 기원하기 때문에 신의 섭리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현대 의학이 꽃피고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감염병의 범위가 넓어진 20세기에 안티 백신 운동은 과학의 탈을 쓴 프로파간다로 등장한다.

1970년대 DTP 백신 접종 후 신경학적 합병증 발생의 사례보고가 발표된 후 영국에서는 관련 언론 보도가 줄을 이었다. 1982년 발표된 TV 다큐멘터리 'DPT: Vaccination Roulette'에서는 백일해의 위험을 낮게, 그리고 DTP 백신의 위험을 과장되게 묘사한 선정적 작품으로 대중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98년 영국의 외과의사 앤드루 웨익필드는 MMR 백신과 염증성 장질환과 자폐증 간의 인과관계를 주장하는 환자 사례군 연구를 <란셋(Lancet)>지에 발표한다.

대중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MMR 접종률 감소 등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이어서 벌어진 홍역의 재유행에도 한 몫을 했다.

2000년대 중반, 영국의 의학위원회(General Medical Council)는 웨익필드가 자폐증 환아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인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은 중대한 이해관계의 충돌행위, 그리고 환자의 이익에 반하는 비윤리적 연구를 지적한다. 결국 2010년 해당 논문은 <란셋>지에서 철회됐으며 2011년 <영국의학회지(British Medical Journal)>에서는 웨익필드의 결과 조작 및 위조 등 연구 부정 행위를 고발했다.

이후 웨익필드는 영국왕립의사협회로부터 의사면허를 박탈당했고 미국으로 이주해 최근까지 안티백신운동을 이끌며 로버트 드니로의 영화제에 출품한 문제작의 감독으로 데뷔하기에 이른다.

예방접종은 다수의 건강한 사람, 특히 대부분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므로 안전성 문제에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다. 치료 효과가 커서 일부 약물 부작용을 감수할 수 있는 다른 약제에 비해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백신은 훨씬 엄격한 허용 범위 내에서의 약물 안전성 프로파일을 요구 받게 된다.

따라서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을 평가하는 3상 임상시험은 드문 이상반응(rare adverse event)까지 감지하기 위해 기대 보고율의 세배 이상(rule of three)의 목표 피험자 수를 포함하도록 설계된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 수행됐던 로타 바이러스 백신 임상시험은 제 1상∼3상에 이르기까지 약 7만 명의 소아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평가했다. 뎅기 백신의 경우 4만명을 웃도는 피험자를 모집했다.

웨익필드의 영화에서 나온 MMR 백신 접종률과 자폐증 발생률의 트렌드가 놀라울 만큼 일치하는 사실은 피해자들의 절박한 인터뷰만큼이나 강력한 백신 이상반응의 근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백신은 도입 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보고되는 이상반응 보고가 늘어난다.

이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으면서 백신 이상 반응에 대해 더 예민하게 인지하게 될 수 있으며 또 일단 보고된 이상 반응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례를 진단하는 현상에 기인한다(detection bias). 물론 이 중에서는 MMRV(홍역-유행성이하선염-풍진-수두) 백신에서 보고된 열성 경련이나 로타 바이러스 백신에서 보고된 장중첩증(intussusception)과 같이 예방접종과의 연관성이 역학적으로, 그리고 생의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이상반응도 있다.

그러나 MMR 백신 접종 후 자폐증이나 최근 일본에서 보도되고 있는 HPV 백신 접종 후의 극심한 신경계 부작용 간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인과성뿐 아니라 역학적 연관성도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현재까지 학계의 결론이다.

널리 쓰이는 백신에 대해 아직도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감염병이 더 이상 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체감하는 위험을 서로 비교할 때 예방접종으로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감염병의 위험보다 더 크다고 판단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예방접종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이 개인 수준에서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면 전반적으로 접종률이 떨어지면서 해당 감염병의 발생률이 높아지거나 유행의 위험이 증가한다. 그러면 다시 감염병의 위험을 더 크게 자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다시 접종률이 오르기 시작한다.

이렇듯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감염병의 발생률 곡선이 파동과 같은 모양을 그리며 증감을 반복하는 것은 현상은 과거완료형으로 책에 기술돼 있는 것뿐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백신의 이득과 비용을 가르는 것은 물론 차가운 과학과 경제의 영역이지만 그에 대한 개개인의 위험 인지와 선택은 커뮤니티 내에서의 소통을 포함한 사회와 문화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접종률을 충분한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 감염병을 관리하거나 퇴치하고자 한다면 백신의 안전성과 감염병의 위험에 대한 사회적 차원의 커뮤니케이션과 합의가 중요하다.

접종 후 이상반응 발생률이 0%인 이상적인 백신은 없다. 다만 올바른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를 구축하고, 사람들이 백신의 위험과 안전성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꾸준한 소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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