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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노인 100세 시대-어떻게 모셔야할까

청진기 노인 100세 시대-어떻게 모셔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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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4.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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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미 원장(경기 고양·일산서울내과의원)

▲ 김금미 원장

"김 원장, 이것 좀 봐요. 불로초를 단 돈 백만 원에 샀어." 그것은 말라비틀어져가는 나뭇가지였다. 김 할머니의 치매는 이렇게 찾아왔다. 일흔의 연세에도 대학의 평생교육원에서 젊은이들과 공부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었다. 치매는 빠르게 진행됐다.

그 분의 며느리는 교사였는데 할머니의 치매가 심해지면서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길을 잃어 집을 못 찾게 되자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런데 다른 가족들이 그녀를 비난하고 나섰다. 며느리는 나를 찾아와 괴롭다며 하소연했다. "부양을 책임지고 있는 며느님의 현실에 따라 결정하고 최선을 다하시면 됩니다." 나는 며느리에게 지지의 말을 해드렸다.

출근하자마자 급한 전화가 왔다. 90세 정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다. 아침에 시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았는데 혈변을 보셨다고 했다. 차트를 찾아 확인하니 혈액 순환제를 복용하고 있어 일단 그것을 중단하도록 하고 그래도 혈변을 보면 대학병원으로 가시라 설명했다. "기저귀 까지 직접 갈아드리시고, 힘드시겠어요." 인사를 전했다. 오히려 며느리는, "어머니가 다정하고 귀여우셔서 괜찮아요"하고 웃었다. 둥근 얼굴에 처진 눈, 항상 온화한 표정의 며느리는 반평생을 시어머니와 함께 해서 그런지 웃는 표정도 정 할머니와 닮았다.

뇌졸중으로 하반신마비가 된 최 할아버지는 24시간 할머니만 찾았다. 최 할아버지는 고집이 대단해서 할머니 이외에 그 누구의 손길도 거부했다. 할머니는 은행 갈 일이나 병원에 오는 것도 할아버지 눈치를 봐야했다. 할머니는 자신도 대상포진까지 앓게 되자, 할아버지 옆에 드러누워버렸다. 최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서너 달 후, 우아한 노년의 할머니가 진료실에 들어오셨다.

굵고 단정한 퍼머 머리, 세련된 화장에 외출복을 갖춰 입으신 할머니를 나는 못 알아볼 뻔 했다. "아주 멋있어지셨네요. 좋아보이세요." 나의 칭찬에 할머니는 "매일 요양병원에 가서 할아버지를 면회하지만, 나머지 시간을 자유롭게 쓰니 마음과 몸이 아주 편안해졌어요"라며 십 년 만에 '휴식'이라는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노인이 많아지고 있다. 나도 늙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65 세 이상 노인인구는 646만 명으로 지난 10년간 32% 증가했다. 부모를 모시는 형태도 달라졌다. 노인부양의 사회적 책임이 대두되면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작됐고, 요양병원에 부모를 모시는 경우가 늘어나 요양병원이 주를 이루는 2차 병원이 지난 10년간 2.5배 증가했다.

44년 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노인이 많은 나라가 되는 대한민국. 4월 총선에서도 노인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면서 요양보험 확대가 검토되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하는지는 누구에게나 큰 고민이다.

마음 편한 집에서 잘 지내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전문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요양병원에서 더 건강이 좋아지는 노인환자도 많다. 부모를 직접 행복하게 모시는 자식도 있지만, 남의 시선이 두려워 요양병원에 보내지 않으면서도 집에서 부모를 방치하는 경우도 있다.

"원장님, 최 할머니 오셨어요." 간호사가 나에게 미리 귀띔해주는 이유는 최 할머니의 냄새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최 할머니는 최근 상태가 더 나빠졌다. 밥만 물에 말아 드신다고 했다. 체중은 눈에 띄게 감소했고 목욕은 물론이고 옷도 못 갈아입으시는 것 같았다.

날씨가 풀렸던 2월의 어느 날, 최 할머니가 화려한 화장을 한 여성과 함께 왔다. 최 할머니의 딸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요즘 통 기운이 없으니 영양제를 놔주세요." 최 할머니의 보호자를 처음 만난 터였다. "환자분께서 기운이 없는 이유는 식사를 거의 못하시기 때문이에요. 요즘 요양병원들이 시설과 치료가 좋으니 그 곳으로 모셔서 보살핌을 받고 식사를 잘 챙겨 드시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 어머니를 어디에 모시라고요? 나는 어머니를 이틀에 한 번씩 찾아뵙고 냉장고에 반찬을 가득 채워드리고 있어요. 나는 어머니를 절대 그런 곳에는 못 보내요!" 그 후에도 최 할머니는 식사를 통 못하는 채로, 씻지 못하는 몸을 겨우 가누며 병원에 다니신다.

이제 곧 가족의 달이다. 누구나 삶의 가치관이 다르고 가족의 분위기도 다양하다. 모두에게 다가온 100세 시대이다. 사랑, 배려, 대화를 기억한다면 우리도 평온한 노인, 행복한 자식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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