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꽈잠' 입기 좋은 계절
청진기 '꽈잠' 입기 좋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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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4.1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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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웅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 주웅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벚꽃잎이 흩날리고 신록이 짙어지는 계절, 만만치 않은 일교차까지 고려해서 출근길을 나서려는 순간, 선뜻 눈에 들어오는 만만한 옷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차피 출근하면 가운으로 갈아 입을 것이라고 찰나의 고민을 무시하며 대충 걸쳐 입고 나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래층 젊은이는 오늘도 꽈잠이다. 별 관심 없이 지나치는 사이였으나 세칭 명문대 꽈잠을 입은 것을 본 이후로는 이 젊은이가 달리 보인다. 이런 게 바로 꽈잠의 효과 아닐까.

단어만 읽고는 생소할 수 밖에 없는 '꽈잠'의 어원은 '학과 점퍼'이다. 학과를 뜻하는 한자 '과(科)'자와 점퍼(jumper, 일명 잠바)의 첫 글자인 '잠'자가 더해진 후, 작금의 팍팍한 삶을 반영해 임난 이후 국어 변천과정과 유사하게 된소리 되기가 일어나 '꽈잠'이 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발음을 [과:잠]으로 하면 나이를 불문하고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한다).

꽈잠에는 소속 대학 학과가 선명하게 표시돼 있고 팔 부분에는 학번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어 착용자의 지성과 젊음을 동시에 과시할 수 있다. 자신의 스펙을 대문짝만하게 붙이고 다니게 되는 이 특성 때문에 꽈잠은 세간의 부러운 시선, 높은 중고가격과 함께 속물근성 혹은 패거리 문화의 도구라는 비판도 동시에 달고 다닌다.

꽈잠을 애용하는 아래층 젊은이에게 꽈잠의 장점을 물어 본다면 필시, "편리하고 따뜻해서 좋습니다" "옷값이 오히려 안 들어요"와 같은 실용적인 대답이 들려올 것이 분명하다. 대학 서열화, 과별 우열감 같은 사회학적 이슈를 꺼내는 순간 이미 세대간의 벽이 바로 준공돼 버릴 것이 뻔하다. 그렇다 해도 이미 부장님 본능이 발동한 터라, '이보게 젊은이, 꽈잠을 입고 자신의 소속을 대중(public)에게 공개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쳐다 보는 시선이 결국 개인과 소속집단을 동일시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하게!'라고 꼭 말해 주고 싶기에 지면을 빌어 본다.

자신의 출신학교를 내세우는 모습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웠던 장면이 있었다. 영화 <암살>에서 극중 '속사포'는 말 그대로 총알이 빗발치는 싸움터에서 죽기를 각오할 때, "내가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독백한다(이 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은 신흥무관학교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며 독립투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치열한 삶을 널리 알린 공로로 신흥무관학교 기념 사업회 홍보대사로 위촉됐다고 한다).

굳이 출신 학교가 아니라도 무언가 사회적 공헌 활동이나 타인을 위한 봉사를 해내는 순간 자신의 소속을 꼭 언급하기도 한다.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소년거지 시절, 배고파 하던 동료 소년 거지 '김동해'를 구해 주고 팥죽 한 그릇을 먹인 '김두한'은 "내가 이래봬도 안동 김(金)씨야"라며 선행을 하게 한 자신의 핏줄을 상기시켜준다(안동 김씨 세도 정치에 의한 구한말의 난정(亂政)은 애들이 물론 알지 못했으리라).

꽈잠 말고도 자신의 소속이나 직업을 보여주는 복식이 몇 가지 있다. 미국 몇몇 주에서는 경찰관들이 일과 시간이 끝나고 마트에 장보러 갈 때나 학교에 애들 데리러 갈 때에 경찰꽈잠을 그대로 입고 경찰차를 몰고 갈 수 있다. 사적(私的)인 일에 공적 자원을 쓰는 셈이지만 마트 주차장이나 학교 근처에서 경찰차나 경찰관의 등장으로 인한 범죄 억제 효과가 더 큰 득이 되기 때문에 장려한다고 한다.

또 미국의 대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수술복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의사나 간호사를 볼 수 있다. 그 차림으로 지하철도 타고 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다. '저는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광고이고 자신의 이름과 MD 글자가 새겨진 수술복은 '저는 의사입니다'라는 광고인데, 우리나라 같으면 감히 할 수 없는 행동 방식이다.

우리나라 병원 아닌 장소에서 의사임을 밝혀서 환영 받는 곳은 별로 없다. 자동차 전시장이나 보험 가입 창구 정도나 의사라고 하면 반색을 하면서 '소득이 높으시니 프리미엄 급으로 하시는게 격이 맞다…'고 해줄 뿐 '낮은 수가(酬價)에 하루 하루 고생하신다…'는 말은 거의 듣기 어렵다.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방법을 속사포한테 속성으로 배워보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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