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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올림픽 금메달 뒤엔 야전병원의 치열함이"

"장애인올림픽 금메달 뒤엔 야전병원의 치열함이"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6.04.0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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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시샘·견제에 심리적 부담 어느 때보다 컸던 대회
공황장애 호소 선수도...안정제 주며 회복시켜 '금메달'

▲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활약한 국가대표들과 김중연 원장(왼쪽).
6연승이다. 지금까지 열린 9번의 국제대회에서 우리나라는 이번을 포함해 도합 7번의 종합우승을 거머쥐었다.

금메달 14개, 은메달 8개, 동메달 2개. 3월 23∼26일 프랑스 보르도에서 열린 제9회 국제장애인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리나라의 성적표는 그야말로 눈부셨다. 2위인 대만이 금메달 5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개를 획득한 것과는 압도적으로 차이다.

쉽지 않았다. 5연승을 거두며 승리의 열망도, 주변의 기대도 커졌다.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더욱 호소했다.

2003년 인도와 2007년 일본에 이어 올해 세 번째로 장애인기능올림픽 팀닥터로 함께한 김중연 미금성모의원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긴장했다. 그동안 좋은 성적을 냈던 까닭에 다른 나라의 견제가 많이 들어왔다"고 밝혔다.

"불면증과 탈진으로 고생하는 선수가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고도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빈맥이 심해진 선수도 있어서 안정제를 주기도 했죠."

▲ 대회에 집중하는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로 컴퓨터정보통신 부문에 출전한 윤현진을 떠올렸다. 올해 신설된 이 종목에서 윤 선수는 긴장한 나머지 공황장애를 호소했다.

"대회 3일 전이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게 기억이 안 난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는다고요. 중압감이 너무 심해 없던 공황장애가 생긴 겁니다. 진정제를 주면서 '이 약을 먹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가 좋아진다'고 안정시켰습니다. 다행히 대회 시작 전에 컨디션을 되찾고 차분히 임하더니 금메달까지 따 너무나 기뻤습니다."

월등한 실력에 선수들을 향한 견제도, 심사위원간의 부당한 단합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원칙대로, 가장 좋은 작품으로 승부하자는 '정공법'은 역시나 통했다.

"경쟁국 심사위원들이 서로 짜고 우리 선수들에겐 점수를 안 주는 거예요.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원칙대로, 가장 뛰어나고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런 점이 프랑스 심사위원에게 어필했다고 봅니다. 아무리 저희 선수들을 견제해도 프랑스 심사위원들은 가장 뛰어난 작품만 고르더라고요. 그때 프랑스가 정말 선진국이라고 느꼈습니다. 한 선수의 작품을 보고선 너무 깜짝 놀라며 개인 소장이 가능할지 묻기도 했죠. 그 선수가 미용 부문에 출전한 이정화 선수인데, 금메달을 땄습니다." 
 

▲ 약을 나눠주고(왼쪽), 수액을 놓으며 진료하는 김중연 원장.
가슴 철렁한 순간도 있었다. 화훼 장식 부문에 출전한 우혜숙 선수는 대회 전 갑자기 손가락을 다쳤다. "손을 써서 작업해야 하는데 큰일났다 싶더군요. 응급도구로 처치했어요. 다쳤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마무리해서 이 선수도 금메달을 땄죠."

금, 금, 금. 총 14개의 금메달이 쏟아졌지만 선수와 관계자들이 가장 필요로 했던 건 첫째도 안정, 둘째도 안정이었다.

"대회 전날과 당일에는 선수들에게 수액제와 영양제를 놓느라고 굉장히 바빴어요. 대회장에 저희 임시본부가 있었는데 통역해주는 유학생이 갑자기 탈진하는 일도 있었고요. 링거를 놓은 채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관계자들이 보고선 야전병원이 따로없다고도 하고(웃음)."

장애인기능올림픽에 세 번을 참가하는 동안 김 원장이 본 건 아마도 긍지와 자신감.

"장애로 인한 차별이나 멸시, 무시를 극복하고 현재 위치에 오른 선수들을 보면서 몸은 불편해도 마음은 어떤 사람들보다 행복하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전문가 반열에 오르면 자신감이 생기잖아요. 어떤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걸 우리 선수들을 통해서 알았어요. 장애로 한탄하며 세월을 보내는 게 아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이들의 모습이 정말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통화 말미에 김 원장은 장애인 행복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건 '일자리'라고 덧붙였다. "일자리가 그들을 전문가로 만드는 것이니까요."

일을 통해, 진료를 통해 보람을 느낀다는 김 원장. 그래서였을까. 날씨 좋고 아름다운, 와인의 고향 보르도에 왜 더 오래 머물지 않았느냐 묻자 그는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라 답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아쉬움도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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