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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청진기 봄이 오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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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4.0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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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성 원장(인천 부평·이주성비뇨기과의원)

▲ 이주성 원장(이주성비뇨기과의원)

완행열차는 소사를 지나고 있다. 복사꽃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다. 온 동네가 복숭아나무 천지다. 황홀 그 자체이다. 열차 안에는 고등학생인 내가 있다.

나는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타고 있다. 태릉의 배 밭에는 새하얀 배꽃으로 뒤덮여 있어 동화세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초등학생인 내가 거기에 타고 있다.

전철은 소사역을 지나가고 있다. 모텔과 높은 건물들의 벽을 통과하고 있다. 노인 석에 앉아 있는 얼굴에는 주름이 잡힌 내가 거기에 있다.

어제 밤 꿈에 보인 모습들이다. 요즘 깊은 잠을 못자고 어릴 적 풍경들이 꿈이 지나가곤 한다. 얼마 전에는 초등학교 1학년 봄 소풍 갈 때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빨간 배낭에 칠성 사이다와 삶은 달걀·김밥·센베이 과자 한 봉지를 넣고 버들강아지와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어있는 개울을 따라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재잘거리면서 왕릉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는 시간의 여행을 하는 꿈이었다. 1시간에 과거와 현재가 수차례 왔다갔다 했다. 꿈속에서는 인생이 찰나에 불과하다.

요즘 부쩍 어릴 적 풍경들이 그리워지고 꿈에서도 나타나니 24시간을 과거에 묻혀 사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봄이 오면서 더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라져가는 자연에 아쉬움과 향수를 가지나 보다.

1920년대에 쓰여 진 우리나라 소설 <빈터>에서 작가는 어렸을 때 뒷산에 있었던 솔밭이 사라진 것을 그리워하며 그 때는 시가 있었고 생활이 있었다고 했고 1800년대 초를 살았던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사라진 자연을 아쉬워하며 문명을 통렬히 비판했다.

가수 이동원이 정지용의 시 '향수'를 읽고 노래하고 싶어 작곡가 김희갑을 찾아가 곡을 받아 취입을 하는데 '향수'에 나타난 시인의 마음이 표현되지 않아 작곡가는 이동원에게 시골에 내려가 몇 달간 머물다 오라고 했다.

정지용의 고향인 옥천의 산골 마을에서 머물면서 넓은 들과 게으른 황소와 실개천·질화로·서리까마귀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와서 녹음을 마쳤다고 한다.

사람은 경험한 만큼 생각할 수 있다.

요즘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고 쓰지 않는다. 서점에는 시집들이 별로 없다. 대부분 베스트셀러는 성공에 대한 책 들이다. 시를 읽고 쓸 시간도 없고 시상도 떠오르지 않는다.

별이 사라진 도시에서 윤동주의 '별헤는 밤'이 이해되지 않고 개울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김소월의 '개여울'을 읽겠는가? 정지용의 '향수'를 읽으며 무슨 상상을 할 것인가?

우리세대는 그래도 과거에 본 별과 개울을 기억하며 시의 의미를 느낄 수 있겠지만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문제다.

돌 지난 아이들이 핸드폰을 장난감삼아 놀고 있는 시대에 이들이 커서 어떤 시어들이 나올 지 두렵다.

산업혁명 후 기계의 발전이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것을 기대하며 환호했지만 도시로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은 더욱 분주해지며 자연에서 소외됐고 저녁이 있는 삶에서 소외됐다. 인공지능시대에는 제한된 직업에서 인간들은 더욱 치열하게 살며 자연과 여유에서 소외될 것이다.

어제는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에 합격한 환자가 입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학원에 등록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해야 직장구하기도 힘들고 직장에 다닌다고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 확실한 직장이 보장되는 공무원이 좋겠다고 한다.

생존하기 위한 준비는 태어나면서 시작된다. 낭만이 사라졌고 생활이 사라졌고 시가 죽었다.

6살, 4살 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병원에 내원했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안에서 핸드폰을 갖고 논다고 한다. 올해부터 캠핑을 가려 장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연 속에서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고 여러 가지 꽃과 개울들을 보여주려 한다고 한다. 현재의 인공지능시대를 성실하고 책임 있게 살아 현재에 뒤처지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하며 정서적 환기를 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미래의 삶을 위해서 참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겨울동안 움츠리고 고개를 숙이고 바삐 걷던 행인들의 발걸음이 가볍고 시끄러워졌다.

도시에도 봄이 겨울을 뚫고 왔다. 소사의 복사꽃이나 태릉의 배꽃처럼 끝없이 피어있지는 않지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사이에서 목련과 매화와 라일락은 자신이 심겨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나타내고 있으니 고맙기만 하다. 지구의 종말에도 마지막 꽃을 피우겠다는 결심을 한듯하다. 어둡고 캄캄했던 도시가 화려해졌다. 생명이 죽음을 삼킨 것 같다.

겨울 내내 문을 닫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창문을 열고 진료를 한다. 화분들을 창가로 옮겨 놓는다. 햇볕과 바람을 맞은 나무들은 더욱 푸르게 생기를 발하고 있다. 사랑이 식어지고 마음이 콘크리트처럼 굳어가는 어둡고 캄캄한 시대에 오래 참으며 끈질기게 세상을 밝혀주는 꽃들을 보고 있노라면 반갑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르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을 살포시 젓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김영랑 '내 마음 고요히 봄 길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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