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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하는 한국, 원인은 역시나 무한경쟁체제?

'욱'하는 한국, 원인은 역시나 무한경쟁체제?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6.03.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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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취업·직장생활 등 언제나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홧병
극단적인 분노조절장애형 범죄에는 '삼진아웃제'의견도 제시돼

▲ 의협과 변협 공동 주최로 열린 분노조절장애형 범죄 관련 심포지엄.ⓒ의협신문 박소영

한시도 쉬지 못하는 한국의 과도한 경쟁문화가 스트레스성 분노조절장애형 범죄를 일으킨다는 주장과 함께, 이를 개선하려면 국가적 차원의 제도 및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다툼과 살인, 보복형 운전, 묻지마 범죄 등 '욱'하는 마음을 참지 못해 저지르는 분노조절장애형 범죄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러한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현대인의 분노,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심포지엄을 17일 오후 3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었다. 이를 통해 분노조절장애형 범죄의 의학적 원인을 다양한 전문가의 입장에서 바라본 후 이를 위한 해결책을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 추무진 의협회장. ⓒ의협신문 박소영
이날 추무진 의협회장은 축사를 통해 "누구나 살면서 억울하고 분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지만 이를 표현하고 해소하는 건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고 내면화시킴으로써 홧병을 호소하는 예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분노를 참지 못하고 홧김에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또 분노는 잠재적 범죄 피해를 내재하고 있기에 시민들은 언제 어디서 범죄를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공동 심포지엄은 의료계뿐 아니라 사회 각계 전문가들과 함께 분노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법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현 시점에서 분노조절 장애의 원인을 점검하고 그 해결법을 찾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변협 역시 분노조절형 범죄의 원인이 규명되면 법조계에서 관련 입법을 추진하는 등 예방과 처벌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창우 변협회장은 "이번 심포지엄은 현대인의 분노조절 장애 문제가 더 이상은 방치되면 안 된다는 심각한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오늘 심포지엄을 공론화해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의협에서 분노조절 장애의 원인분석이 이뤄지면 법조계에서는 입법 등 관련 제도 마련에 적극 힘쓰겠다"고 말했다.

정신과 치료 병력 있으면 실손보험 가입 거절되는 제도부터 개선해야
이날 토론에서 김철중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분노 자체가 폭력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반복적인 분노조절장애형 범죄를 일으킨 경우 법에 의해 치료받는 제도를 도입할 때라 생각한다"며 "삼진아웃제를 적용해 아주 극단적인 케이스부터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은 대개 청소년기 이전에 형성된다. 그 시가가 지나면 근본적인 조절이 어렵다는 연구가 있다"며 "학교에서 화를 제대로 잘 내는 법을 인성교육 차원에서 시킬 필요가 있다. 또 직장에서 과도한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사상 불이익 조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안용민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의협신문 박소영
권일용 경찰청 과학수사센터 경감은 정신보건법과 간련된 일부 법령 개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으며 관련 연구도 진행 중이라 밝히며 "제도 개선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권침해 문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전문가 그룹과의 논의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또 "충동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물론 이 범죄의 형태도 유형화돼 있지 않아 제도 개선 및 마련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예를 들어 어떤 범죄가 '묻지마 범죄'인가에 대해서도 아무런 개념화가 돼 있지 않은 상태다. 개별적 유형을 파악한 후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 말했다.

안용민 교수(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역시 분노조절장애는 관련 자료 및 임상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공감했다. 그는 "정신장애나 조현병, 우울증 등은 명확한 분류가 어렵지 않지만 간헐적 폭발성 장애 같은 분노조절장애는 임상에서 본 적이 별로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신과를 방문할 경우 실손보험 가입이 거절돼 치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보완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7∼8세 어린이가 ADHD로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면 실손보험사에서 이를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절한다"며 "학회 차원에서 10년 넘게 개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연구진들 "늘 '전쟁 같은' 한국인의 건강상태가 범죄 원인 아닐까" 
이날 모인 연구진들은 한국의 과도한 경쟁문화가 스트레스 형성에 기여해 이로 인한 분노조절장애가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사회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일치했다.

박영민 교수(인제대 정신건강의학과)는 "어렸을 때부터 과도한 경쟁과 선행학습, 결과 중심의 훈육은 아동·청소년기에 세로토닌 이상 분비를 만들어내 자기조절을 어렵게 할 수 있다"며 "세계 최고의 음주량과 최고의 노동시간, 최저의 수면시간을 지닌 한국인의 인생에 쉼표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박영민 인제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의협신문 박소영
또 "성인이 돼서도 주거비나 자녀 교육비 등으로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부부갈등, 취업문제와 직장에서의 갈등 등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상황이 부지기수로 많다"며 "한국에서만 유독 입시전쟁, 구직전쟁, 귀성전쟁 등 '전쟁'이란 단어를 굉장히 많이 쓴다. 이러한 무한 생존 경쟁체제에서는 '남보다는 내가 먼저'란 의식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준법정신이 결여되고 피해의식이 증가하게 되는 준 전시상태가 된다"며 사회 전반적인 통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용민 교수 역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분노를 통제하는 방법을 교육적·제도적으로 체득하기 때문"이라며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케이스는 원인부터 체계적으로 조사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민간차원으로는 접근이 어려우니 국가 정책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오은경 변협 사무차장은 과로사를 하나의 사회 문제로 간주해 대책을 마련했던 일본의 사례를 들었다. 오 사무차장은 "일본에서는 과로사를 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해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고자 했다. 2014년에는 관련 법률도 제정됐다"며 "단순히 과로사로 사망한 사람들에게 산재보험을 더 보장해주자는 차원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법일지 몰라도 조금 더 큰 차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참석한 추무진 의협회장은 "군대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면 정신과 병력을 체크한다. 공무원 채용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최근에는 의료인들에게도 이러한 잣대를 들이대려고 한다"며 "적어도 직장에서만큼은 정신과 병력 조회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보험 시장이 커져가는 만큼 실손보험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해서 가입이나 갱신 거절 등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하며 "쉼표가 있는 한국인의 삶을 위해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번 절주 캠페인을 제안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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