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의사의 연애
청진기 의사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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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3.1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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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웅 이화의대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 주웅 교수(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 전국민을 공감하게 한 대사가 있다. 우윳빛깔 비주얼의 송혜교와 송중기, 이른바 송송 커플이 연애 초반부 '밀땅'(밀고땅기기)을 하면서 나눈 수작(酬酌)이다.

"의사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
"군인이면 여친 없겠네요. 빡세서."

절묘한 댓구는 물론이고 각각의 직업에 대한 함축적인 페이소스, 그리고 상대방이 솔로임을 은근히 추정, 압박하는 전략적 대화법까지가 군더더기 없이 담겨 있다.

제작진과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의사는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이미지라는 것인데, 한밤 중에 응급실을 찾았던 기억이나 모임 도중에 갑자기 연락 받고 뛰어 가는 의사 친구의 모습, 의학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만성 수면 부족 캐릭터 등등을 연상해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는 의사의 전형이리라.

그런데 실제로도 과연 그럴까?

군인으로서의 삶에는 필자도 경험이 일천하므로 군인의 로맨스에 대한 강모연(송혜교 扮)의 멘트에는 한 사람의 시청자로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다년간의 의사직 경험에 비추어 "의사는 바빠서 연인이 없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유시진(송중기 扮)의 멘트에 대해서는 고개가 약간 갸웃거려졌다.

해마다 보도되는 전공의 지원 인기 과에 대한 기사를 보면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혹은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이 최고 인기과로 거론된다. 전문 과목 선택 시 개원 가능성이나 소득에 대한 전망 등이 고려됐음이 분명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바로 전공의 과정과 전문의 자격 취득 후의 삶의 질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바빠서 남친이 없을' 정도로 삶의 질이 열악한 진료 과는 젊은 의사들이 점점 선택을 기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과계의 몇몇 메이저 전문 과목들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전공의 미달로 과 운영에 상당한 애로를 겪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역으로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는' 의사(전공의)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남친이라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삶의 질이 보장되는 과목의 전공의가 되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 하고 이 경쟁의 시작은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의 내신 성적이다.

따라서 극중 강모연이 의대생이었고 유시진이 "의대생이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라고 했다면 우리 나라 현실에 조금 더 들어 맞는 대사가 됐을 수 있다.

의대가 아니고 의전원이라면 어떨까?
"의전원생이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

전반적으로는 의대생을 상정한 대사와 거의 같긴 하지만 이 대사 역시 현실에 잘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전원생은 모두 학부 4년을 거쳤고 그 4년은 의대가 아닌 다른 단과대와 비슷한 확률로 연애도 하고 남친이나 여친을 만난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전원생 중에는 결혼하고 2세까지 키우고 있는 어엿한 '어른'들도 종종 있다.

그러면 당직이 많고 수술이 많은 과의 의사들은 바빠서 정말로 연애를 할 수 없을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바빠도 연애는 가능하다.

바쁜 의사(전공의)라도 나름대로 연애하는 요령이 있는데, 그 요령의 핵심은 '빵꾸내지 않기'이다. 의대생 때부터 귀가 닳도록 배운 '판단(decision making)'에 따라 더 중요한 일을 빵꾸내지 않으면 뿌듯하고 당당하게 다음 순위의 일을 할 수 있다.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우선 순위는 보통 다음과 같이 매겨진다. 환자의 상태 파악 및 처치, 교수가 시킨 일, 선배가 시킨 일, 루틴 일, 아랫년차나 인턴 단속, 발표 준비, 화장실 가기까지.

우선 순위의 일이 해결 되고 나면 바로 연인과 이야기하고 눈빛을 나누는 달콤한 시간이 찾아 오게 되는데, 이 시간은 보통 빠르면 밤 10시 늦으면 밤 12시경이 된다. 이 순위는 당직 아닌 날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당직인 날에는 응급 콜이 최우선이 된다.

물론 회식이 있는 날은 당연히 회식이 우선 순위에 들어 간다. 과 분위기에 따라서는 회식 자리에 연인을 동석시킬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연인 만난 후에 다음 순위로 씻기·먹기·잠자기·개인 공부하기 등을 추가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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