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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받은 돈까지 리베이트로 간주해서야"
"안받은 돈까지 리베이트로 간주해서야"
  • 민경철 법무법인 올흔 변호사
  • 승인 2016.03.1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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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 세계 매출액 1위를 달성했던 다국적 제약회사가 최근 불법 리베이트 혐의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제약 업계의 고질적 병폐이자 관행 중 하나인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다시금 불거진 것이다.

필자가 검사로 재직할 당시 리베이트 사건을 수사한 경험과 변호사로서 리베이트 당사자들을 변호하면서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리베이트와 관련된 몇 가지 점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제약업계는 다수의 군소 제약회사들이 자체 개발한 신약이 없어 제네릭 제품을 주력 상품으로 삼고 있으며, 제약회사는 달라도 약의 효능은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의료계는 의사 수가 급증하면서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어 운영난으로 인해 폐업하는 병원이 매년 속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지도가 낮은 일부 제약회사는 생존을 위해 의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면서까지 영업활동을 벌이는 것이고, 일부 의사들은 악화된 수익성을 보전하고자 불법인 줄 알면서도 제약회사 영업직원으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업계의 시장 상황과 구조가 리베이트의 근원적 원인인 이상 시장 상황이 호전되거나 구조가 전면적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불법 리베이트가 근절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의사가 처방한 약가의 일정 비율 만큼 영업사원이 의사에게 현금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 리베이트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하지만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까지 처벌하는 속칭 '쌍벌죄' 입법 이후 리베이트는 강의료·컨설팅·설문비용 등 여러 형태로 진화하였다.

하지만 그 형태와 상관없이 처방 유도가 목적으로 인정되고, 지급된 대가가 시장에서 형성된 정당한 수준을 넘어선다면 이 또한 불법 리베이트가 될 수 있다.

의사가 리베이트를 받은 경우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행정처분이 따르게 되며 현행 행정처분은 리베이트를 받은 총액에 비례하여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이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의 입장에서는 리베이트를 받은 액수가 매우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행 수사방식에 따를 경우 리베이트 액수가 실체적 진실과 일치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리베이트 수사의 경우 내부 고발자의 고발 또는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등으로 통상 영업사원의 영업 장부나 제약 회사의 현금 수불대장이 확보되고, 영업사원은 장부에 기재된 돈은 모두 의사들에게 리베이트 명목으로 전달해 주었다고 진술한다.

반면 대다수의 의사들은 리베이트 명목으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 얼마를 받았는지는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는데, 대체로 그것은 진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의사가 객관적인 증거로 제약회사의 장부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고 금액이 터무니없는 정도가 아니라면 검찰은 장부 및 영업사원의 진술에 기초한 금액을 리베이트 금액으로 특정한다. 

하지만 일부 제약회사는 리베이트 명목으로 비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리베이트 명목으로 비자금을 마련할 경우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의료법위반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책임자가 횡령죄의 책임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부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과 다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뿐만 아니라 제약회사의 장부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영업사원은 그 돈을 수령하여 일부만 의사에게 전달하고 일부는 횡령하는 속칭 '배달 사고'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리베이트 수수과정에서는 영수증이 작성되지도 않고 제약회사가 의사를 상대로 영업사원으로부터 얼마를 받았는지를 확인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 여건상 장부에 기재된 내용 하나하나를 사실인지 여부를 조사하여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현재도 수사기관은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업계의 관행에 비추어 장부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인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주장하는 것은 장부에 기재된 내용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이상 수사기관은 지금보다 면밀하게 조사하여 리베이트 액수를 특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사기관은 당해 제약회사의 비용구조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아 장부에 기재된 액수만큼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주더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인지 여부를 확인하거나, 영업사원의 금융거래내역 등을 제출받아 의심스러운 자금 거래 내역은 없는지 여부를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영업장부의 신빙성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그 내용을 사실로 특정하고, 의사가 장부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처분 수위를 높일 경우 자칫 의사로 하여금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을 수사기관은 간과하여서는 안된다.

결론적으로 의료 질서를 교란시키고 보험재정을 악화시키는 리베이트 관행은 궁극적으로 종식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사들이 리베이트로 받지 않은 돈까지 받은 것으로 인정되고 이에 따른 처분을 받아서는 안된다. 수사기관은 보다 많은 노력이 들더라도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임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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