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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자율규제를 위한 의사동료평가(Physician peer-review)
의사자율규제를 위한 의사동료평가(Physician peer-review)
  •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 승인 2016.03.0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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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자율규제(professional self regulation) 권리는 역사적으로 10-15세기 유럽 길드의 형성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1518년 영국 런던대학이 주도하에 의사면허제도 확립과 함께 의료인 자율규제 도입이 확립되었다.

이후 유럽, 미국을 중심으로 의료인 면허제도와 의사협회가 주도하는 자율규제가 보편화되어왔다. 그러나 반드시 강조하여야 할 점은 의사협회 주도의 자율규제권은 국가와 시민사회 권력과의 신뢰구축과 투쟁, 의료계의 자정노력과 전문성 확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었다. 

다시 말하면 국가와 의료계의 협상과 투쟁 그리고 사회에서 선량한 의사-'good doctor'의 역할과 자정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여온 결과이다. 자율규제권은 의료계의 부단한 땀과 피의 댓가이었다.  

▲ 최재욱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소장

의사, 변호사와 성직자 등은 대표적인 전문가로서 면허와 자율규제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의사는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면허라는 특권을 부여받은 인력이다. 의료의 경우 그 전문성 때문에 의사라는 전문인력 외의 인력이 의료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적정하지도 않다.

전문인력이 자정 기능이 없을 경우에는 외부의 간섭 특히 정부의 형식적인 규제가 강화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전문성에 의한 전문가의 자율성과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도덕성에 대하여 외부의 간섭을 배제할 수 있는 자정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의료 분야에서 자율규제와 자율관리를 가능케하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활용되는 것이 동료평가(peer review)이다. 동료평가 역시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서기 9세기 의사윤리(Ethics of the Physician by Ishap bin Ali Al Rahwi (ce 854~931)) 저서에서 기술된 이래 의학의 기본적인 방법론으로 사용하여왔다.

즉, 환자진료와 예후에 대한 동료 의사들의 진료 평가를 반드시하고 그 결과를 의료인이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후 중세시대와 근세를 거쳐 동료평가는 동등한 자격과 능력을 갖춘 동료로부터 평가를 받게 하여 자신의 의료행위가 동료들에 비해 어떠한 수준인가를 인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적정 의료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 진료비 심사에서 동료심사제도는 의료제공자가 직접 심사에 참여함으로써 심사의 공정성 시비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이다.

동료심사는 전문적 자율성을 증진시키고 비판적 관점을 견지하게 하며 의료의 질 평가를 뒷받침하기 때문에 의료 영역에서 질 향상을 위한 적합한 방안으로 광범위하게 인정되어 왔다.

미국의 경우 의료의 질을 정기적으로 검토·심사하여 적정 의료수준을 보장하고자 조직된 동료심사기구(Peer Review Organization, PRO)를 두고 있으며, 그 업무는 심사와 규제만이 아니라 진료과정과 진료결과의 지역 간 혹은 병원 간 변이와 장기적인 추이를 분석하고, 그 결과는 의료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병원이나 의사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동료심사기구는 의사회가 직영하거나 지원하는 형태로서 이를 통해 의사의 적극적 협력을 얻고 있다. 또한 적절한 의료의 수행을 권고하며 크게는 국가차원의 의료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1979년 네덜란드를 필두로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시작된 Quality Circles(QCs)와 Primary Review Groups(PRGs)가 일차의료에서 중요한 질 향상(Quality Improvement, QI) 수단이 되어 왔고, 수 많은 유럽 국가들로 확대되었다.   QCs/PRGs는 환자 진료에 지속적인 질 평가와 질 개선을 목표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사들의 집단(혹은 다른 보건의료전문직이 포함된 다직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의료분야에 있어서 동료심사는 의료단체의 자율규제와 관련하여 자율징계권 확보와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의료계가 효율적인 자율규제제도를 확립한다면 의사단체에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과 윤리성 등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획일적인 행정규제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각지대를 축소하고 행정부담을 경감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즉, 규제속도, 유연성, 시장상황에 대한 민감성, 비용효율성, 집행의 용이성과 준수의 확보 등에서 장점을 가질 수 있다.

일단 전문가 집단 내에서의 일정 기준에 대한 준수가 하나의 관행으로 정착하게 되면 그것은 법적인 강제의 차원을 넘어 윤리적·도덕적 기준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전문가 단체의 자율적 규제는 이러한 실효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정부규제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전문가단체 구성원 스스로 규율을 정하거나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므로 구성원 스스로 자율규제의 표준을 적절히 설정하고 효율적으로 집행할 것이라는 전제가 충족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국외 사례로는 영국의 의사심의회(General Medical Council, GMC)를 들 수 있다. GMC는 자격을 갖춘 의사의 등록을 계속 유지하고, 적절한 의료행위를 진작시키며, 의료적절성이 의문시되는 의료인에 대하여 공정하고 엄격한 조치를 행하는 기관이다. GMC에 등록되거나 면허를 취득하지 않고 영국 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GMC의 징계는 의료인에게 그 준수를  요구할 수 있는 실질적 작용을 하게 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의사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징계를 행하는 것과 동시에 동 기준을 교육·등록(면허취득에 상당)에 이용함으로 실질적으로는 의료수준을 의사 스스로 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의료의 질 향상을 추구하며 의사 스스로 적격심사를 통해 재판에 이르는 심의를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변호사·변리사 등의 경우 국가나 사회가 구하는 공익성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전문가 단체의 공익적인 역할의 필요성에 따라 관련 개별법에서 각 단체의 자율성과 공익성 확보를 위해 소속회원들에 대한 징계권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전문가의 활동영역을 보장하여 이들의 인권보장과 정의실현에 더욱 효과적으로 기여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 단체가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받기 위해서는 단체 내부의 자율적인 활동을 통하여 자율성과 전문성을 보장받아야 하고, 스스로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자격이나 면허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예로 캐나다의 퀘백 주의 경우 전문가로서 스스로 질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도구로서 동료심사(peer review)를 시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동료의사들에 의해 자신의 진료행태와 매너, 전문성을 평가받게 되며, 평가 후 교육을 통한 계도 등이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미리 문제점에 관하여 스스로 파악, 교정하게 되므로 심각한 결격사유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평가 주요대상은 병원과 협력활동이 없는 의사, 의사사회에서 격리된 의사, 5년간 3회 이상의 소원수리가 접수된 의사 등이다. 이때 의사회의 주된 역할로는 주에 등록된 의사들에 대한 문의 등 파악, 전문가들의 자정노력 정신에 입각하여 스스로의 통제기능과 지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사들에 대한 질적 평가를 들 수 있다.

환자의 생명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의료의 경우 동료평가를 포함한 자정활동을 운용하고 집행할 수 있는 자율규제 권한을 의사단체가 확보하는 것은 의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전제이고 중요한 과제이다. 즉, 부적절한 의료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적인 규제지침을 확립하여 사전에 예방하는 활동이 전제되어야 외부의 간섭을 배제함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전문가로서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 역사적 사례를 마지막으로 들고자 한다. 자율규제와 동료평가가 아니라 사회규제 즉 비의료인이 주도하는 평가와 타율 규제가 되는 경우 역사적으로 전문가들은 탄압과 시련을 겪어왔다. 전형적인 사례가 16세기 중세시대 코페르니쿠스와 심장혈액순환을 주장하여 이단으로 재판받고 화형당한 스페인 의사 Servetus(1509~1553)들 이었다(The history of the peer-review process". Trends in Biotechnology 20 (8): 357-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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