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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도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

"인턴도 사람답게 일하고 싶다"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6.03.0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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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협의회 '속풀이' 게시판, 구구절절한 사연들
욕설·모욕·성희롱...근로계약서 요구에 "그게 뭐냐"

 
하루 20시간을 일했다. 아파도 병가는 허락되지 않았다. 응급실에 전공의가 없어 간호사 지시를 받기도 했다. 병원은 각종 수당을 가로챘다. 방사선이나 항암치료를 할 때 인턴의 안전은 뒷전이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개설한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인턴들의 '속풀이' 사연들이다. 이들은 과중한 업무와 부당한 대우, 책임전가와 안전소홀 등을 지적하며 "인턴은 병원의 소모품일 뿐이다. 무슨 술기를 배우기 위해 1년간 근무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단지 사람답게 일하고 싶을 뿐이다"라 호소했다.

대전협은 인턴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월 23일 대전협 홈페이지 및 어플, 닥터브릿지 사이트를 통해 <수련병원 인턴, 어디까지 해봤니?> 익명게시판을 열었다. 이를 통해 2014∼2015년까지 잠시라도 인턴 수련을 받았던 젊은 의사들로부터 부당한 사례들을 접수받았다.

익명게시판이 열린 지 2주째인 8일엔 인턴생활의 어두운 면을 폭로한 글 30여개가 올라와 있었다. 익명처리된 곳이 대부분이었으나 실명이 거론된 병원도 있었다. 게시판을 기획한 조영대 대전협 정책이사는 "막연한 불평불만으로는 상황을 바꿔나가기 어렵다는 생각 끝에 병원 및 과를 실명으로 밝혀도 된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인턴 수당 가로채기에 안전소홀 문제까지 
게시판에 따르면, 인턴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지만 그에 맞는 대우는 받지 못했다. 어느 인턴은 오전 12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2시간 남짓 잠든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24시간을 일했다고 말했다. 60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보지 못했다는 인턴도 있었다.

병원에서 대체인력을 구해주지 않아 아파도 병가를 낼 수 없었던 건 물론 당직비 등 각종 수당 가로채기도 접수됐다. 수당과 명절상여금 및 휴가비, 연말정산환급금을 병원 측에서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레지던트들은 가짜로 당직표를 짰고 수련부는 임의로 짠 당직표대로 당직비를 일괄 지급했다. 어느 인턴은 "병원 과장이 진료 기록 시 인턴에게 본인 아이디를 사용하도록 강요해 수당을 가로챘다. 책임지기 싫은 시체검안만 인턴 아이디로 기록하게 했다"고 폭로했다.

업무 중 크게 다쳐 6주 이상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받았으나, 병가는 받지 못한 인턴도 있었다. 본인 과실이 아닌 업무 중 사고였음에도 수련부의 사과는 없었고, 해당 업무에 대한 병원 측의 조정이나 변경 조치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방사선이나 항암물질 치료 시 안전소홀 문제도 여럿 접수됐다. CT 촬영 시 조영제를 교체할 때 인턴에게는 보호구도 제대로 챙겨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여자 주치의가 항암조제 오더를 늦게 넣으면서 "자신은 가임기이며 퇴근시간도 지났으니, 알아서 용량을 확인하고 조제하라"고 지시한 사례도 드러났다.

비상식적인 의료 체계도 눈에 띄었다. 응급실에 전문의와 전공의가 없어 인턴이 교대로 24시간씩 근무하면서 당직 전공의에게 연락한다는 것이다. 응급실에서 인턴이 초진을 보고 지시를 내리며 퇴원까지 책임지도록 시키는 병원, 전공의가 없어 간호사가 지시를 내리는 병원도 여럿 있었다. 또 인턴이 환자 증상을 보고하면 자기 과 소관이 아니라며 서너개 과를 '뺑뺑이' 돌리는 현상도 접수됐다.

▲ <수련병원 인턴, 어디까지 해봤니>? 게시판에 올라온 글 목록.

임신한 여성에 대한 배려는 전무, 인턴 성희롱도
여성의 경우 특히 힘든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인턴은 임신 사실을 알게 돼 그만두려 했으나 수련부는 허락하지 않았다. 방사선을 피할 수 있는 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으나 수련부 소관이 아니라며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발뺌했다. 이 인턴은 당직을 바꿔줄 대체 인력이 없어 임신 중에도 모든 당직을 다 섰으며 24시간 응급실에서 한 달간을 일했다고 했다.

거절이 어렵다는 위치를 노린 성희롱 사태도 접수됐다. 한 여성 인턴은 "의국원들이 바빠 자리를 비울 때면 의국장이 자잘한 심부름을 목적으로 의국으로 불렀다. 의국장의 요구를 거절한 이후로 괴롭힘이 시작됐다"며 "인턴 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성희롱에 이용했다"고 밝혔다.

지방의 어느 2차병원의 경우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싶다는 요구에 '한 번도 쓴 적이 없어 서식조차 없다'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인턴은 "초진이 늦어지면 과장이 온갖 욕과 함께 굴욕감을 주는 경우도 있었고, 업무와 관계없는 일을 시키기도 했다"며  "급한 콜로 응급환자라도 생긴 줄 알고 뛰어갔는데 수술방에 놓고 온 가운을 갖다달라, 속옷을 빨래건조기에 넣어달라는 심부름이었다"고 말했다.

한 인턴은 "솔직히 1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전공의로 가기 위한 비위 맞추기용인 것 같다"며 "병원별로 수련계획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무슨 술기를 배우기 위해 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했다.

부당한 사례 표본 모아 개선점 마련할 것
대전협에서 인턴제도의 문제점을 조사하는 이유에 대해 송명제 대전협회장은 "지금까지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조사는 많았다. 반면, 인턴생활의 수련과정이 어떤지는 조사한 적이 별로 없었다"며 "병원에서 인턴이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소외받는 계층이다. 인턴도 수련의로서 교육의 질을 보장받아야 하지만 전혀 개선이 되어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전협은 3월말까지 게시판을 통해 인턴 수련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을 조사한 후 개선점을 마련해 요구할 계획이다.

송 회장은 "현재 표본을 모으고 있다"며 "인턴교육과 상관없거나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들, 가령 성희롱이나 병원 내 폭력 등을 인턴이 당했을 때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익명게시판 <수련병원 인턴, 어디까지 해봤니?>는 3월 말까지 진행된다. ▲인터넷 주소 http://secretboard.thejoy.kr/2 ▲대전협 홈페이지 PC/MOBILE/APP <전공의 광장> ▲닥터브릿지 PC/MOBILE/APP을 통해 접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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