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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임신과 감염병

청진기 임신과 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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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2.29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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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전문의(소아청소년과 사노피 파스퇴르 메디컬 어드바이저)

▲ 최영준 전문의(소아청소년과)

지난해 말부터 지카바이러스(Zika virus)에 대한 공포가 전세계의 임산부들을 위협하고 있다. 브라질에서 인지된 소두증 사례수의 증가의 원인으로 지카바이러스가 지목되고 있고 최근 몇 년 사이 에볼라바이러스병과 메르스(MERS)의 전파를 경험했던 전세계는 분주하게 대응 지침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직 지카바이러스 감염과 소두증의 발생에 관한 인과관계는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산모가 감염됐을 때 태아의 치명적인 신경계 기형을 초래할 수 있는 바이러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영화 '거울 살인사건(1980)'에서는 심한 기형으로 아기를 잃고 우울증에 빠졌던 여배우(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기함)가 한 열성팬을 독살한다.

이 열성팬이 임신 중인 줄 몰랐던 여배우에게 가벼운 키스로 풍진을 옮긴 것이 그녀를 괴롭힌 고통스러운 사건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풍진은 건강한 소아에서 가벼운 발진과 발열·림프절염 정도의 증상을 일으키지만 임신한 여성이 걸릴 경우 태내의 아이에게 난청·백내장·소두증 등 선천성 풍진 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다.

18세기부터 독일 의학서에 기술되기 시작한 풍진은 유사한 임상 증상으로 인해 독일 홍역(German measles)으로 불렸으나 증상이 위중하지 않고 전파력이 낮아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1941년 호주 시드니의 소아안과 의사 노먼 그렉(Norman McAlister Gregg)은 평소보다 선천성 백내장을 가진 신생아가 많다고 느끼던 중 어느 날 진료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신생아 백내장을 앓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인 두 여성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두 여성은 대화 도중 둘 다 임신 기간 중 풍진에 걸렸던 것을 알고 놀라와 했다. 그렉은 진료기록과 추가 조사를 통해 그 동안 진료를 했던 78명의 선천성 백내장 소아 중 68명이 태내에서 풍진에 노출됐을 것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그 해 10월 호주 안과의학회지에 "독일 홍역(풍진)에 이환된 모체에서 출생한 신생아의 선천성 백내장"이라는 당시로써는 논쟁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미국·스웨덴·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는 풍진 유행 수개월 후부터 선천성 풍진 증후군 보고수가 증가하는 시간적 선후 관계, 풍진 노출군과 비노출군 간의 발병빈도 간의 비교위험도, 결과의 반복성, 사산한 태아에서 풍진바이러스의 분리 등 인과성을 추론할 수 있는 보고가 이어졌고 이는 백신의 개발을 촉진시켰다.

1960년대 개발돼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풍진 백신은 소아 및 성인의 감염과 선천성 풍진 증후군의 감소에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한때 연간 10만명의 감염과 1만 명의 선천성 풍진 증후군 사례가 보고됐던 미국에서는 최근에는 거의 사례가 보고되지 않고 있으며 필수 예방접종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역시 보고 건수가 연간 십 수 건 이내로 감소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풍진을 홍역과 함께 관리하며 퇴치 대상인 감염병으로 설정했고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어떤 특정 병원체가 태아에게서 기형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연구의 첫 단계는 임상 관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 또는 사례군 조사 연구 단독으로는 병원체의 노출과 선천성 기형 사이의 연관성 및 인과성 여부를 입증하기에 불충분하다.

따라서 환자-대조군 연구나 코호트 연구 등 관계를 탐색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 또 임신부에서의 최기형성(Teratogenicity)에 대한 연구는 여기에 몇 가지 추가적인 어려움을 더한다. 산모와 태아의 상태에 대해 전수 조사가 어렵다는 것, 즉 노출군의 분모를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임신부와 태아는 대표적인 취약 집단으로 무작위 연구 대상으로 모집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환자가 분석을 위해 충분히 발생할 때까지, 혹은 충분한 연구 대상이 모일 때까지 아무런 조치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가혹한 일이며 윤리적이지 않다.

과학적 인과관계를 입증하고 근거에 기반한 보건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차가운 연구뿐만 아니라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책무성이 필요하다.

지카바이러스의 원인적 연관성이 충분히 입증될 때까지 온갖 의심의 눈초리와 불안에 시달릴 사람들은 비단 임신부들뿐만은 아닐 것이다. 선천성 풍진 증후군과 비슷한 맥락에서 엄중한 과학적 잣대가 필요한 선천성 소두증의 원인적 연관성에 대한 평가는 아직 간단히 답할 수 없다.

비록 지카바이러스 감염의 병태생리나 생물학적 기전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전 예방의 원칙을 적용해 지금까지 관찰된 자료를 근거로 최대한 안전하고 유효한 보건 프로그램의 도입과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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