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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은 끝 아니다...퇴임 후 진료·교육 계속

정년은 끝 아니다...퇴임 후 진료·교육 계속

  • 이정환 기자 leejh91@doctorsnews.co.kr
  • 승인 2016.02.2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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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의대 박경아·이수곤 교수 등 7명 2월말 정년 퇴임

연세의대 학생들에게 '엄마'로 불린 박경아 교수(해부학)와, 의대 교육과정 개편에 공헌한 이수곤 교수(내과)가 정년퇴임 한다.

또 약학대학 설립과 초기학장을 맡았던 안영수 교수(약리학), 고위험임신 대가인 박용원 교수(산부인과)를 비롯해 김원옥(미취통증의학)·김충배(외과)·이정권(이비인후과) 교수도 정년퇴임을 하고 새로운 곳에서 진료 및 교육활동을 계속 펼친다.

박경아 교수는 특임교수로 송도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이수곤 교수는 올해 3월 1일부터 차의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또 봉사활동을 열심히 했던 김원옥 교수는 3월초부터 종로에 통증·다한증 클리닉을 열고, 재래시장 근처 통증환자와 전국의 다한증 환자를 진료한다. 이정권 교수는 3월부터 경인고속도로 변에 위치한 개인 종합병원인 한림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계속 이어간다.

퇴임 후에도 학생 곁에 남는 영원한 '엄마'

박경아 교수
박경아 교수는 '세계여의사회 회장'·'대한해부학회 이사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등 굵직한 직책을 맡아왔다.

박 교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엄마'로 통한다. 학생상담위원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 Learning Community를 이끌며 진정한 멘토가 되어줬기 때문이다.

의대는 박 교수의 열정과 학생에 대한 사랑을 놓칠 수 없어 퇴임 하는 것을 붙잡았다. 이에 박 교수는 특임교수로 남아 송도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예정이다. 기초의학 교수가 정년 이후에도 교육을 이어가게 된 첫 사례다.

박 교수는 학생들이 직접 투표하는 '올해의 교수상'을 3번이나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연세대학교 최우수 강의교수, 학생과 동료 교수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육자를 기리는 알렌의학교육상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인기를 독차지 한 비결을 묻자 "해부학실습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서일 뿐 특별한 것은 없다"면서도 "쉽게 강의를 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학생들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꽉 붙잡고 나가는 힘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게는 '모녀 해부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박 교수의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초 여성 해부학자였던 고 나복영 고려대 명예교수다.

진로 선택에 어머니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했지만 박 교수는 "어머니는 오히려 다른 과를 권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순전히 '뇌'에 대한 궁금증이 신경해부학자의 길로 이끌었다"며 "당시 전국에 전공자가 2명밖에 없을 정도로 Neuroscience라는 학문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도전하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의사'로서의 활약도 이어왔다. 'Women in medicine' 과목을 개설했고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 세계여자의사회 회장으로 선출돼 전 세계에서 강연을 이어오고 있다. 박 교수는 "수많은 강연을 통해 여의사로서의 역할과 여성의 힘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조금 특별한 퇴임 기념책도 발간했다. 보통 발간되는 딱딱한 기념서적이 아니라 동료들의 편지를 담고 동료가 찍어 준 사진을 담아 패션잡지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의사협회 100주년을 맞아 자선 패션쇼 무대에 모델로 서고, 플루트 연주까지 즐기는 박 교수의 넘치는 끼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박 교수는 "퇴임이 의대에서의 끝이 아니라 학생들과의 새로운 시작"이라며 마지막까지도 '교육'을 강조했다.

또 "의대의 목표는 학생을 잘 교육해 좋은 의사를 양성하는데 있다"며 "지난 30년간은 교수의 연구업적, 논문 수로 의대를 평가하는 풍토였지만 앞으로는 후학 양성을 더 중요시 했으면 한다"고 희망했다.

교육과정 개편 소중한 경험…차의과대학서도 같은길

이수곤 교수
이수곤 교수는 CDP2004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2004년부터 소그룹 토의, 의학교육실, 선택과정 등 새로운 교육과정을 연세의대에 도입했다. 이후 세계적인 흐름에 맞춰 '연구'가 강조된 새로운 의대 교육과정 CDP 2013도 성공적으로 도입시켰다.

이 교수는 "교육과정을 한번이라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두 번씩이나 교육과정을 개편한 것은 의과대학 자체의 중요한 경험이자, 교수들의 신뢰가 있어서 가능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교수가 의학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시 고윤웅 주임교수가 <The bench and me>라는 의학교육 책을 소개시켜 준 것이 계기가 됐다. 책이 뜯어질 정도로 정독했다는 후문이다.

이 교수는 류마티스학의 1세대 중 1세대다. 대학 최초로 류마티스 진료를 시작했다. 가르쳐주는 선배 교수도 없었다. 제일 많이 가르쳐 준 사람은 바로 환자였다. 낮에는 환자를 진료했고, 밤에는 환자를 위해 공부했다.

이 교수는 "학창시절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했고, 연구도 열심히 했다"며 "당시에 썼던 논문들도 지금 보면 애정이 간다"고 말했다.

이밖에 의과대학생 실습에 있어서 'bed-side teaching'라는 졸업생들이 잊을 수 없는 임상 경험을 경험하게 했다. 학생들은 환자의 증상 원인을 찾아내야 했고, 진찰하는 방법, 문진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이러한 헌신으로 2014년에 제2회 연세의대 알렌의학교육상을, 2015년에는 한국의대·의전원협회로부터 제1회 올해의 교수상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시대의 흐름은 바이오 신약, 바이오 진단기술 등 BT쪽으로 가고 있다"며 후학들에게 인기과를 선택하는 것보다는 패터다임을 바꿔 BT(Bio Technology) 산업에 관심을 가질 것도 당부했다. 또 진료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연세의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올해 3월 1일부터 차의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장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

잊지 못할 애정·사랑이 담긴 약학대학 설립 1등 공신

안영수 교수
안영수 교수는 약학대학 설립과 초기학장을 맡아 이끌었다. 그만큼 약대에 대한 애정은 크다.

약대의 설립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약대가 신설된다고 하니, 전국의 약대가 없는 대학에서 치열한 유치전이 발생했다.

결국 30명의 적은 학생 수로 연세대 약대를 시작해야 했다. 또 약학대학 신설 시점이 약대가 4년제에서 6년제로 바뀐 시기여서, 기존과 다른 새로운 커리큘럼이 필요했다. 이것은 위기이자 기회였다.

안 교수는 "기존 약대에서는 주로 화학을 많이 가르쳤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생물학(바이올로지)도 중요해 이를 커리큘럼에 넣어 교육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2008년부터 4년간 국제협력처장(구 대외의료협력본부장)을 맡아 의료원의 국제화와 해외환자 유치에 힘썼다. '메디컬 투어리즘'이 의료원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해외환자 유치를 위해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 많은 해외 연수생들을 위해 제대로 안내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했다. 2012년에는 기초의학·기초치의학·기초한의학·약학의 모든 학회를 어우르는 기초의약학회연맹의 창설을 주도하고 초대 의장으로 역임하면서 기초의약학회의 상호 정보 교환이 잘 되게 해 융합 연구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안 교수는 21세기는 바이오의 시대, 즉 바이오메디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그리고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바이오메디컬 분야는 크게 성장할 것"이라며 "바이오메디컬 분야는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할 범위가 넓어서, 의대나 약대 학생들이 진출해 제약산업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후학들에게는 의대 졸업 후 진로에 대해서 너무 경직된 사고를 하지 말고, 기초학을 선택해 좋은 연구 결과를 내는 것이 인류를 위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고위험임신 대가 박용원-봉사활동 실천 김원옥 교수

(왼쪽부터) 박용원, 김원옥, 김충배, 이정권 교수.
2010년부터 2년간 세브란스병원의 수장을 맡았던 박용원 교수의 전문진료분야는 '고위험임신'이다.

자궁 동맥과 탯줄동맥의 도플러 파형분석을 이용해 고위험 임신부의 예후를 예측, 적절한 분만 시기를 결정하고 치료법을 선택해 신생아의 생존율을 높이는 일에 주력해 많은 임상적 성과를 거뒀다.

2012년 보건복지부로부터 제7회 임산부의 날 기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2007년 생후 16일째인 560g의 여아에게 소장 일부를 잘라내는 장 수술과 폐동맥과 대동맥을 이어주는 심장수술을 동시에 시행하고 치료하는 것에 성공했다.

박 교수는 대외적으로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 회장,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을 지내며 의학발전에 기여했다.

후학들에게는 "자신의 목표와 비전을 갖고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라"고 당부했다. 연세 울타리로 들어온 지 45년이 되는 박용원 교수. 이제 인생 2막의 시작이라며, 2막은 더욱 타인을 위해 살고 싶다고 했다.

김원옥 교수는 안면홍조, 다한증 환자들을 위해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과 네이버에 개인적으로 카페를 만들어 시간이 될 때마다 온라인 상담을 했다. 외국의 중요한 논문이 나오면 번역해 바로바로 정보를 제공했다. 또 이 분야에 흥미를 갖고 논문도 쓰고 다한증 클리닉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 교수는 퇴임 5년 전까지는 통증클리닉에서 환자를 진료했다. 김 교수는 1999년에 몽골 봉사활동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김 교수는 "몽골 의료봉사를 가 본 후에 마취만 할 것이 아니라 통증환자를 돕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매주 토요일마다 통증클리닉에 가서 배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몽골(1999), 아이티 지진 긴급의료구호(2010), 이디오피아(2010), 캄보디아(2011, 2012), 필리핀 태풍 긴급구호(2013)에 단장 또는 부단장으로 적극 참여해 해외봉사 활동을 펼쳤다.

김 교수는 3월초부터 종로에 통증·다한증 클리닉을 열고, 재래시장 근처 통증환자와 전국의 다한증 환자 곁으로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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