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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2 여우를 보내며

기고2 여우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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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2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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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며칠전 경비실에 가서 소포를 찾았다. 지난해 연말에 주문한 것이 일주일여를 넘어 도착한 것이다. 소포는 내 것이 아니라 딸아이를 위한 것이다.

생일이 12월 중순인 딸은 중학교 3학년 때 유학을 떠나 생일을 가족과 함께 맞은 적이 거의 없다. 올해도 짧은 성탄절방학을 이용해 집에 왔지만 열흘도 못 돼 신정에 차례를 지내자마자 다시 학교로 떠났다.

아이가 집에 와 있는 동안에 나는 퇴근해서 옷가지 등 필요한 물건을 사주고 싶었지만 함께 하기엔 빠듯한 시간이었다. 그런 중에도 아내, 아이와 영화관에 갔다. 딸아이와 몹시 닮은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번 영화 관람 때 예고편에서 본 애니메이션 '어린 왕자'는 딸의 어릴 적 모습과 꼭 닮은 소녀가 나왔다. 그 소녀의 눈이 어찌나 크고 맑은지 나는 딸의 어릴 때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열 손가락 중 깨물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 하지만 자주 앓는 약한 손가락은 더 소중하게 다루듯이, 건장한 두 아들보다는 아직도 어리고 연약하게만 느껴지는 딸아이와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하고 싶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바닥이나 콩자루 의자에 앉아서 관람하는 키즈관에는 처음 가보았다. 다들 초등학생 이하의 자녀를 데려왔으며, 스물 다섯번째 생일을 지낸 처녀를 데려온 이는 우리밖에는 없는 듯했다. 하지만 아무도 우리 딸을 대학생으로 생각하는 이 또한 없는 듯했다. 그만큼 아이는 앳되고 가냘픈 용모를 가졌다.

영화 속에는 외동딸을 반드시 유명 대학에 입학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싱글맘이 나온다. 엄마는 딸의 생활계획표를 세워놓고, 딸은 마지못해 따라간다. 맹모삼천지교 식으로 이사 간 집의 옆집에는 경비행기를 마당에 세워놓고 밤이면 별을 보는 별난 노인이 산다.

▲ 여우인형을 안고 있는 황건 교수.

그가 젊은 시절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만났던 어린왕자의 이야기와 그림을 종이비행기로 옆집 소녀에게 날리는 것으로 영화는 전개됐다. 노인은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길들였던 여우를 상상해 자신이 만든 인형을 소녀에게 선물로 주었다.

노인이 쓰러져 입원하자 소녀는 여우인형을 안고 경비행기를 타고 어린왕자를 찾아 그를 소행성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미완성이던 노인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내가 진작 조종사 노인처럼 친절하고 재미있게 이 아이를 가르쳤다면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의사로서의 바쁜 일상은 자신의 일만으로도 더 이상의 여력이 없는 것처럼 느끼며 살았다. 아이들의 정서 교육에 대해서는 때로는 무심하게 넘기고, 때로는 회피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 동안 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그러나 의미 있었던 수많은 실마리를 놓치고 지나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고맙게도 재미있었다고 방긋이 웃는 딸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에게 초등학교 5학년 때 제주도 테디베어 박물관에서 곰인형을 사주었던 기억이 새로웠다.

자신이 고른 그 인형을 상표도 떼지 않고 여러 해 동안 머리맡에 두었다가 유학 갈 때는 두고 갔다. 딸이 쓰던 빈 방에 들어갈 때면 손으로 들어 올려 안아보기도 하고 볼에 대며 보드라운 감촉을 느끼곤 했다.

다음 다음날 인터넷으로 '어린왕자' 속 여우인형을 주문했다. 영화에서 소녀가 안고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찾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국내에서는 제조하지 않고 외국에서 배달받느라 딸아이가 있는 동안에는 받을 수 없었고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도착한 것이다.

포장을 뜯어 여우인형을 안고 그 감촉을 느껴보았다. 부드러운 우단의 촉감이 딸아이의 머리를 만지는 것 같았다. 빈 방에 들어가 딸이 쓰던 침대에 여우를 세워놓고 책상에 있던 어린시절에 찍은 액자와 함께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냈다.

나도 안다. 의과대학에 다니는 성인이 다 된 딸에게 이제 인형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애비가 왜 이러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도.

그러나 나는 오늘 우체국에 가서 소포로 딸에게 부칠 것이다. 언제나 내 마음 속엔 어린 소녀인 눈이 크고 맑은 내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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