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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충북대병원 교수, 그는 왜 나서야 했나?

한정호 충북대병원 교수, 그는 왜 나서야 했나?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6.01.15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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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통해 한방 항암제 비판...명예훼손·모욕죄 적용 1심서 징역형
"암 환자 되고 보니 엉터리 치료 많아...잘못된 정보 눈 감을 수 없었다"

▲ 한방 암치료제를 비판하다 징역형을 받은 한정호 충북대병원 임상교수가 13일 법률 자문을 위해 대한의사협회를 방문했다. "자숙하고 있다"고 밝힌 한 교수는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의협신문 송성철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한방 항암제의 임상적 효과에 대해 비판해 온 한정호 충북대병원 임상교수가 청주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징역 6월형(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형법을 적용, 현직 대학병원 교수에게 징역형 처벌을 내린 데 대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는 명예훼손을 형사사건이 아닌 민사사건으로 다룬다. 명예훼손을 형사사건으로 다루게 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이나 사법 당국이 법조문을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자리하고 있다.

대학병원 임상교수로서 환자 진료와 연구에만 전념하며 살 법도 하지만 그는 굳이 온라인 세상에 등장해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을까?

항소장을 제출하고, 법률 자문을 위해 대한의사협회를 방문했다는 한 교수를 13일 만났다.

"아직 재판 중이다. 자숙하고 있다"고 했다. 공식 인터뷰가 아닌 그간의 근황을 듣는 자리를 전제로 시간을 냈다. 88올림픽 때 호돌이 이야기부터 꺼냈다.

"올림픽경기 응원을 위해 단체로 모자를 구입하라는 학교장 지시가 있었나 봐요. 호돌이 마크가 달린 게 더 비쌌어요. 반 아이들과 상의한 끝에 마크가 없는 싼 것으로 신청했는데 교장실에 불려가 혼 났죠."

시장에서 김밥을 파는 어머니와 정신지체 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과 함께 단칸방에 살던 그에게 호돌이 마크가 달린 500원짜리 모자는 사치였다. 그 모자를 사라는 압력은 불의였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따로 모아놓는 특별반이란 게 있었죠. 일반 학급은 선풍기도 없는 데 여기에만 에어컨이 있는 거예요.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항의하며 특별반을 그만뒀습니다."

작은 소동이 일어난 이후 모든 교실에 선풍기가 설치됐다.

"어릴 적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바르게 살아라,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요즘은 나서면 손해 본다, 중간만 해라는 얘기가 더 많기는 하지만…."

잘못이나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치니 못하는 '바른 생활'은 습관을 넘어 '강박 관념'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요즘도 으슥한 골몰길을 지나치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다. 

▲ 한정호 충북대병원 임상교수는 는 많은 관심을 보여준 회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의협신문 송성철
"대학 4학년 때 무릎 수술을 받다 신경을 다쳤습니다. 수술하다 내성균에 감염돼 죽을 간신히 고비를 넘겨야 했죠."

5급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계단을 오르거나 쪼그려 앉아야 하는 구식 화장실을 쓰지 못할 정도로 오른쪽 발에는 영구 장애가 남았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5년, 청천벽력 같은 고환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에 이어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까지 다 빠질 정도로 독한 항암치료를 받아야 했다.

"꿈에 재발했다는 통지를 받고 울다가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암 환자를 치료하다 암 환자가 되고 보니 환자들의 고통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병상에 수북이 쌓이는 '기적의 암치료법' 유인물에 저절로 눈길이 갔다.

"하지만 암에 좋다는 치료법과 약제를 설명한 유인물을 살펴볼수록 이건 아닌 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 환자의 마음을 악용하면 안 되지 않으냐는 '강박 관념'이 발동했다고나 할까요."

지역신문과 자신의 블로그에 잘못되거나 근거가 없는 치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풍  예방주사'가 시작이었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법을 비판하는 데 있어 의학과 한의학을 가리지 않았다.

"6개월밖에 못산다는 말기 암 선고는 사형수 심정과 같습니다. 검증받지 않은 치료를 받기 위해 집을 팔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환자들이 봉지에 싸오는 검증받지 않은 약을 그냥 놔둬야 할까요? "

고환암 재발 여부를 알기 위해 요즘도 정기적으로 살 떨리는 검사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는 한 교수는 "암 환자를 비롯해 난치성 질환을 치료한다는 치료법·약제·건강식품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검증해야 한다"며 "국가가 제대로된 치료법을 검증해 줘야 환자의 선택권과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논란을 불렀던 블로그 글을 삭제하고, 페이스북 계정도 폐쇄했다.

"그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고, 원망도 많이 했지만, 결론적으로 너무도 소중하고 큰 교훈이 됐다"는 그는 "제 블로그 등의 글을 통해 너무 많은 분께 상처를 드렸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한 교수는 "앞으로 성숙한 인간의 모습으로 사실에 충실한 의학적 소견의 글을 쓰는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면서 "국민을 위한 공익 활동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했다. 많은 관심을 보여준 회원들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밝혔다.
▲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한정호 충북대병원 교수. 추 회장은 "의사이자 지식인으로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 환자를 위해 안전성과 유효성 문제를 제기한 한 교수를 협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의협신문 송성철
추무진 의협 회장은 "의사이자 지식인으로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암 환자를 위해 안전성과 유효성 문제를 제기한 한 교수를 협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며 의협 회관을 찾은 한 교수의 손을 잡았다.

추 회장은 "환자단체들도 넥시아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해 줄 것을 보건복지부에 요구했다"면서 "환자의 안전과 알 권리를 위해 국민의 행복과 건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검증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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