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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서석조 박사님…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서석조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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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25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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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호 교수(순천향대부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 황경호 교수(순천향대부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매년 이맘 때면 누구나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내게는 한 가지 더 잊지 못할 분에 대한 생생한 추억이 세밑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의 영원한 스승이시자, 순천향대학병원과 순천향대학교의 설립자이신 향설 서석조 박사님이 1999년 12월 19일에 향년 79세로 영면에 드셨기 때문이다.

고인의 아호(雅號) '향설(鄕雪)'은 '고향 마을의 눈'이란 뜻이다. 박사님은 우리나라 현대의학의 선구자로서 평생 '인간사랑'의 철학을 실천하시다가, 고향 마을에 내리던 푸근하고 정감 어린 백설처럼 후학들에게 숱한 교훈과 추억을 남기고 떠나셨다.

나의 전임강사 초년병 시절, 박사님이 학교법인 동은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동기 교수들과 오랜만에 점심을 같이하려고 연락을 하고 있는데, 그 중 한명인 안과 교수가 개인적인 일로 조금 일찍 외출한 것을 알게 됐다.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외래 간호사에게 '이사장께서, 지금 몇 시인데 밖에 나가 있느냐며, 들어오는 대로 올라오라!'는 가짜 지시사항을 전했다. 뒤늦게 들어온 그는 부랴부랴 가운을 찾아 입고 한숨에 이사장실로 뛰어갔다.

"이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안과 아무개입니다."
경상도가 고향인 박사님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내가 자네를 불렀다꼬? 그런 적 없는데…."

그제야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눈치 챈 그는 허둥대고 머뭇거리다가 겨우 돌아섰다. 그 때였다.
"자네 안과제? 이리 와서 내 눈 좀 봐도! 요새 하도 눈이 침침해서 말이야."

천만다행으로 가운 속에는 진료에 필요한 기구와 안약이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박사님의 눈을 치료하고 그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까마득한 신참 교수의 위기를 짐작하시고도 그것을 도와준 박사님의 소탈함과 너그러움은 두고두고 동기생들 사이에 회자됐다.

▲ 故 서석조 박사의 생전 모습.

박사님은 애주가셨다. 그것도 두주불사 호주가셨다.
박사님에 대한 가장 잊히지 않는 기억은 임종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았던 12월 어느 토요일에 있었던 일화다.

연구실에서 논문의 막바지 정리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박사님께서 위독하시니 빨리 병실로 오라는 병원장님의 호출이었다. 급박한 응급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기관내 삽관을 하고 호흡보조 치료를 수행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박사님은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위험한 고비를 맞이했으나,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로 회복되시곤 했다. 마침내 의료진은 기관 내 튜브를 제거하기로 결정했고, 나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발관했다.

박사님은 깨어나시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시더니 수행담당 직원을 발견하고 옆으로 오라고 손짓하신 다음 귓속말로 무어라 말씀하셨다. 그 분은 박사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고 있을 때, 수행담당 직원이 누런 봉지에 무언가 싸들고 헐레벌떡 뛰어들어 왔다.

세상에! 그것은 500cc 생맥주였다.
모두가 경악했지만 박사님은 빨대로 맥주를 천천히 드시더니 느닷없이 당신의 진료기록부를 보자고 하셨다.

당시 나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혈기왕성한 소장파 의사였지만, 생과 사를 넘나들며 사경을 헤매다가 깨어나신 분이 맥주를 마시고 진료기록부를 보자고 하는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태연자약함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생사를 초월한 의연함, 즉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초인적 호방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환자는 의사가 고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고치는 것이다. 의사는 단지 이러한 하늘의 뜻을 돕는 사람일 뿐이다."

이는 박사님이 평생을 두고 후학들에게 강조했던 의사로서의 철학이었다. 그래서 병원도, 대학교 이름도 '하늘의 뜻을 따르는 고향 마을'이란 뜻의 '순천향(順天鄕)'으로 지었다.

일찍이 일본과 미국에서 선진 의학을 공부하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인 영친왕을 일본에서 직접 모셔와 주치의로서 극진히 보살폈고, 그 후에는 현대의학의 불모지였던 가난한 조국에서 불철주야 의학도들을 키우셨던 향설 서석조 박사님!

박사님의 평생 소원이셨던 미국의 메이요클리닉 같은 병원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우리 순천향대병원 교직원들은 설립자의 숭고한 뜻을 새기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 12월 18일 서석조 박사님의 16주기 기일을 맞이해 나도 흉상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려 드렸다. 잊지 못할 가르침과 추억을 회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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