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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특별법 제정'...의료계 새 역사 썼다
'전공의 특별법 제정'...의료계 새 역사 썼다
  • 이승우 기자 potato73@doctorsnews.co.kr
  • 승인 2015.12.03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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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3일 새벽 본회의 의결...의료계 노력 '결실'
병원계 반대 '우여곡절'...의협 "의권 보호 전환점"

 

▲대한의사협회는 대한전공의협의회와 함께 3월 18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전공의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2015년 12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정의화 국회의장이 우리나라 의료 역사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제정 법률안(이하 전공의 특별법)'의 가결을 선포하는 의사봉을 힘차게 두드렸다.

법안 준비부터 발의, 심사 과정 그리고 마지막 국회 본회의 통과까지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전공의 특별법이 드디어 제정됐다.

국회는 2일 저녁 11시 30분부터 본회의를 열어, 자정을 넘긴 3일 새벽 전공의 특별법과 국제의료지원법, 모자보건법, 관광진흥법,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법 등 49개 법안을 심의하고 의결했다.

의료계가 염원하던 전공의 특별법 제정으로, 의사 직능 중 가장 약자였던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조건과 수련환경 개선의 발판이 마련됐다.

전공의 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우선 주당 근무시간을 80시간+8시간(교육적 목적)으로 하고, 연속근무의 경우 36시간 초과를 금지(응급상황의 경우 예외로 40시간 초과 금지)하도록 했으며, 전공의의 수련과 다음 수련 사이에는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의무화했다. 그동안 수련병원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던 전공의 근무시간의 명확한 기준이 마련된 것이다.

여성 전공의에 대한 출산전후휴가 및 유산·사산·휴가에 관해 근로기준법을 준용토록 해, 그동안 임신한 상태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주위를 의식해 출산 직전까지 무리하게 일하던 여성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하는 기반도 마련됐다.

수련병원과 지도전문의의 법적 개념을 명확히 하고 수련환경을 구체적으로 정의했으며, 수련규칙 및 수련 계약 성실 이행 의무를 명시했다. 전공의 육성, 수련환경 평가에 정부가 예산 지원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도 마련됐다.

특히 현재 대한병원협회가 보건복지부로부터 위임받아 실시하고 있는 수련병원 신임평가 즉, 전공의의 수련조건·환경 및 처우에 관한 사항에 대한 심의·평가 업무를 별도의 보건복지부 장관 직속 '수련환경위원회'로 이관토록 했다. 특히 수련환경위원회에는 기존에 전공의 신임 업무를 위탁해 수행해왔던 병원협회는 물론 의사협회, 대한의학회 그리고 전공의 대표도 참여하도록 해, 신임기구의 독립성을 높였고 전공의 스스로가 수련환경위원회 참여를 통해 수련환경 개선 등을 직접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전공의 수련시간 제한 등 법률 위반 시 500만원 이하 과태료에 처하도록 했으며, 법 시행일은 공포 후 1년으로 정했다. 다만 수련시간 관련 규정의 경우 인력 공백에 따른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병원계 입장을 반영해 2년 유예토록 했다.

▲ 3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공의특별법 관련 입법 공청회.

눈물겨웠던 법 제정을 위한 의료계 발자취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의 노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지난 2012년 12월 열악한 근무환경에 허덕이던 전공의들이 잇따라 자살하는 사건들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추상적이고 산발적이던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목소리가 실질적인 근거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흐름으로 선회했다.

이런 의료계 내부 변화에 국회도 반응했다. 2013년 7월 17일 황우여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원이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 인권실태 및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국회인권포럼을 개최하고, 전공의 수련 여건과 수련프로그램 등을 법제화한 '전공의 수련기준법' 제정을 제안했다. 황 전 대표의원은 전공의 수견기준법에 전공의 근무시간이나 처우는 물론, 수련 프로그램과 의사양성 철학까지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 대표의 지지를 힘입어 의사협회와 대한전공의협의회는 근로기준법을 기준으로 한 전공의 특별법 제정안 마련에 착수했다. 그러나 대한병원협회의 반대와 정치권의 관심이 잦아들면서 전공의 특별법 제정 추진이 답보상태에 빠졌다.

2014년 4월 1일 전공의 연속 수련시간의 상한과 당직수당 산정방법 등을 각 수련병원에서 정해 시행하고, 이를 비치하도록 의무화한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 개정안' 정부 관보를 통해 공포되면서 의료계를 고무시켰다. 그러나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고 처벌 규정이 사실상 없는 대통령령은 실효를 발휘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전국 수련병원들은 기존 수련방식을 개선하지 않았다.

이후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위한 목소리는 또다시 파편화됐다. 의사협회 회장 선거와 전공의협의회장 선거 때마다 전공의 표를 의식한 후보자들의 단골 공약으로 잠깐 주목을 받다가 관심권에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1년이 흐른 뒤,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위한 의료계와 정치권의 노력이 본격화됐다. 그 시작은 지난 3월 12일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가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과 공동으로 국회에서 전공의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주최한 것이었다.

당시 의사협회는 "앞선 제2차 의정합의를 통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사항이 정부의 재정 지원을 토대로 진행될 것을 기대했으나, 이로 인해 형식적인 개선 참여로 전공의가 파업에 나서는 등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며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전공의 권익 보호를 위해 의협이 나섰다"고 밝혔다.

전공의협의회 역시 "전공의들의 잇따른 파업과 내과 미달사태, 불거지는 폭력과 폭행사건들 또한 당직비 소송 승소와 곧 이어질 공동소송의 전조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은 더는 미룰 수 없는 의료계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며 전공의의 수련시간 제한·수련시간 계측 방법 그리고 독립된 수련환경 평가기구 설립 등 전공의협의회가 초안한 구체적인 법안 내용을 제안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은 7월 31일 국회 전문기자협의회와 간담회를 갖고, 자신이 대표발의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안'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했다. 간담회에는 법안 초안을 마련해 제안했던 추무진 대한의사협회장, 강청희 상근부회장, 송명제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이 동석했다.

이후 의료계 지도자들과 직능·직역 단체들의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 의사협회장 재선에 성공해 지난 5월 1일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추무진 회장도 당선 직후부터 전공의 특별법 제정에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정을 위한 노력에 총력을 기울였다. 추 회장 취임 후 의사협회와 전공의협의회는 김용익 의원과 전공의 특별법 발의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구체적인 법안 조문 작업에 돌입했다.

'전공의 특별법=환자 안전법' 의료계 피·땀 서린 제정안 발의
3개월여 법안 조문 작업을 거쳐, 김 의원은 7월 31일 드디어 전공의 특별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 발의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 의원은 "전공의 특별법이 단순히 전공의에 대한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통한 환자안전을 강화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다"고 방점을 찍었다.

이어 "열악한 수련환경은 전공의의 권리 보장 및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 육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환자에 대한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 측면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전공의의 권리 보호 및 우수한 전문의료인 양성에 이바지하고 환자에게 질적으로 향상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간담회에 동석한 추무진 의사협회장은 "전공의 인권보호를 통해 환자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한 김 의원에게 감사드린다"며 "환자단체들은 물론 국민이 이 법이 단순히 전공의를 위한 것이 아닌 환자안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법안이 꼭 제정되도록 의협과 대전협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강청희 의협 상근부회장도 "이렇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법안을 의료단체가 준비해 국회를 통해 발의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법안이 반드시 제정돼 전공의 인권보호와 환자안전 확보는 물론 의료계 내 갈등 해소에도 이바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송명제 전공의협의회장도 "이 법안은 전공의에게 특혜를 주기 위한 법이 아니다"라면서 "피곤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사고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근본적으로 환자를 위한 법이라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법안이 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6월 4일 개최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방안 모색 토론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부터 본회의까지 '숨 막혔던 7일'
이번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난달 23일 이후 27일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 여야 의원들이 법안 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여, 제정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그러나 막상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전공의 특별법에 대한 법안 심사 일정이 시작되자 법안 제정에 '이상 기류가' 생겼다.

법안 심사가 시작되자, 병원협회 관계자들은 연일 국회를 찾아 전공의 특별법 저지를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법안 발의자인 김용익 의원을 법안소위 심사 중 정회시간에 면담해 법안 제정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특히 여당과 보건복지부가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제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 '국제의료사업지원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보건복지부도 전공의 특별법 통과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던 중 지난달 30일, 여야 의원실 관계자들로부터 여당이 전공의 특별법 의결해 협조하는 대신 야당은 국제의료지원법 의결에 협조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국면이 전환됐다. 국제의료지원법 처리가 절실했던 여당과 보건복지부가 전공의 특별법 심사에 협조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제정 직전까지 난항을 거듭했다. 이번 정기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 마지막 심사일인 2일까지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해, 의료계를 극도로 긴장시켰다.

2일 새벽 2시경 여야 지도부가 전공의 특별법과 국제의료지원법, 모자보건법을 묶어서 당일 내에 본회의에서 의결하겠다고 합의한 후, 오전 8시 50분경 열린 법안소위에서 야당 의원들이 공공산후조리원 설립 및 지원에 관한 모자보건법의 보건복지부 제시안이 만족스럽지 않다며 법안 심사를 거부하면서, 전공의 특별법 심사까지 덩달아 지연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는 사이 정의화 국회의장이 각 상임위원회서 심의 중인 쟁점 법안들이 의결되면, 전공의 특별법과 국제의료지원법, 모자보건법, 관광진흥법,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법 등 5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치지 않고, 직권상정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보건복지위 법안소위 법안 심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밤 9시 10분경 법안소위를 통과한 전공의 특별법은 9시 30분경 전체회의를 통과했고, 11시경 본회의에 상정돼, 최종 의결됐다.

의협 "환자 안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만들어 낸 역사적 사건" 환영
전공의 특별법 제정이 선포되자, 의사협회는 비공식이긴 하지만 환영 입장을 표명했다.

강청희 의협 상근부회장은 "전공의는 수련과정이란 이유로 그동안 인권 사각지대에 있었다. 김용익 의원의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향상을 위한 법률안이 제정됨으로써, 비로소 입법을 통한 의권 보호가 시작되는 전환점이 마련됐다"고 환영했다.

특히 "이는 의사의 권리가 곧 환자의 권리이며, 전공의 처우개선이 곧 환자 안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란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한 역사적 사건이다. 앞으로도 의협은 법에 의한 의권 회복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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